임영주 작가의 '괜찮아'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 심리적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증상 외에 또 다른 괴로움을 호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주변인들이 함부로 건네는 조언이다. 위로랍시고 무심코 꺼내는 다음과 같은 말들은 오히려 비수가 되어 우울증 환자의 마음을 찌른다.

“다 마음먹기 나름이야. 긍정적으로 생각해.” “너보다 더 힘든 사람들도 다 견디며 살아.” “힘을 내려고 노력해 봐.” 등.

우리는 뭔가 위로를 하고 싶을 때 조언을 하곤 하는데, 조언은 대체로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조언’은 서로의 평등한 관계를 설정하기보다는 상대방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으로서 우위를 점하는 자세의 말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방법을 몰라서 보다는 방법을 알아도 마음이 그야말로 마음대로 되지 않기에 어쩔 수 없이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대부분의 조언은 오히려 불필요한 상처를 남기게 되는 것이다.

 

나만 모든 일이 꼬이고

나만 불행하고 나만 아프고

왜 나만 힘든걸까

왜 나만 우울한 걸까

그래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어

그런데 말이야

누구나 조금씩은 나처럼

우울할 거야 

-임영주 작가의 작가노트 중에서 

 

            임영주, 우울해도 괜찮아. 72.7x72.7,oil on canvas. 2023
            임영주, 우울해도 괜찮아. 72.7x72.7,oil on canvas. 2023

 

대학과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미술치료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다시 취득한 임영주 작가는 그런 면에서 아무도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던 신선한 위로를 작품으로 전한다. ‘우울해도 괜찮아’, ‘게을러도 괜찮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 라고.

임영주 작가는 일곱 살이 되던 봄의 어느 날, 낯선 유치원에 입학을 ‘당’했고 처음 보는 선생님과 낯선 아이들 사이에서 하루 종일 얼음처럼 꼼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날 이후 몇 날 며칠을 조르고 졸라 기어이 유치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엄마의 허락을 받아냈지만 그 조건은 엄마랑 언니가 저녁에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혼자서 점심 챙겨 먹고, 울지 않고, 집 잘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고 한다.

 

         임영주, 아무것도 안해도 괜찮아. 72.7x72.7. oil on canvas. 2023
         임영주, 아무것도 안해도 괜찮아. 72.7x72.7. oil on canvas. 2023

 

그날 이후 나의 하루는 무척이나 길어졌다. 조용한 집안에서 책 읽기가 지루해질 때쯤이면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서 바라본 하늘은 참으로 넓었다. 그리고 무척 푸르렀다. 그리고 비행기 소리.... 우~웅 자장가 같은 비행기 소리에 나는 스르륵 잠이 든다. 한바탕 하늘을 자유롭게 날다 보면 엄마가 돌아올 시간이다. 용기를 내어 대문을 열고 나가 큰길 한가운데에 쪼그려 앉는다. 저 멀리 엄마의 모습이 보일 때까지 나는 또 얼음이다.

-임영주 작가의 작가노트 중에서-

 

임 작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 무기력의 근원을 찾아내었고, 어린 시절 기나긴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하염없이 바라보던 하늘과 구름은 이후 늘 작품 한켠을 차지하는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그리고 부정적인 감정이 들면 왠지 죄를 짓는 것 같아 되도록 밝은 작품을 그리며 밝은 표정을 짓던 작가는 미술치료를 공부하면서 부정적인 감정도 감정일 뿐, 제대로 느끼지 않은 감정은 누적되어 더 큰 상처로 이어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1년 여간 그린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라는 동화적 작품들을 위로의 짧은 글과 함께 내보이는 치유적 전시를 열게 되었다. 

 

                임영주, 실패해도 괜찮아. 72.7x72.7 oil on canvas 2023
                임영주, 실패해도 괜찮아. 72.7x72.7 oil on canvas 2023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만나면 재빨리 긍정적인 감정으로 바꾸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인 치유가 아니다. 커튼을 치고 어둠속에서 누워있는 우울증 환자에게 커튼을 걷고 햇빛을 쐬라고 하는 건 때로는 폭력이다. 부정적인 감정이든, 생각이든, 내가 잘하고 있든, 잘못하고 있든지 간에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근본적인 치유의 출발점이다.

주변에 누군가가 인생의 시련 혹은 우울이나 불안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저 침묵하거나 혹은 조심스럽고 진정어린 마음으로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내가 너와 함께 있을게.”

 

*임영주 개인전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2023.10.27.-11.9 분당구 매화나무 두 그루 갤러리.

 

백지상 프로필

서양화가. 상담심리학 박사. 치유예술작가협회(HAA)부회장

단국대학교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호주국가공인 예술치료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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