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나무 위의 군대' 기자간담회(최희서) 2023.06.27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나무 위의 군대' 기자간담회(최희서) 2023.06.27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여자의 역할은 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아우르면서 흐름을 알려주고 상관과 신병의 상태도 알려주는 해설자이자 그 이상의 나무의 혼령과도 같은 역할을 담당해요" 

 

9년 전 연극이 너무나 하고 싶어 배우 손석구와 각자의 통장에서 각각 100만원을 모아 대학로 무대에 섰다는 배우 최희서. 비록 5일의 공연이었지만 재미나게 열심히 무대를 누렸다고 웃음지은 최희서는 연극 '나무 위의 군대'에서 '여자' 역을 맡아 상관과 신병 사이의 관계를 대변하며 때론 유쾌하게 만들고 극 전체의 흐름의 맥을 짚어준다. 


작품 배경은 태평양 전쟁의 막바지인 1945년 4월 일본 오키나와다. 일본 패전 사실을 모르고 1947년 3월까지 약 2년간 나무 위에서 숨어 생활한 두 병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목숨 건 저항인 '옥쇄'를 강요받았으나 죽음이 두려워 나무 위로 숨어든 상관과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의문을 품고 동거하는 신병의 갈등을 다뤘다. 일본 문학의 거장으로 국내에는 소설 '나는 강아지로소이다'로 잘 알려진 고(故) 이노우에 히사시가 집필 도중 사망하자 극작가 호라이 류타가 뒤를 이어받아 완성해 2013년 4월 일본 도쿄에서 초연했다.

 

연극 '나무 위의 군대'의 무대인 독립국가였던 류큐국(현 오키나와)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 의해 폐지되어 오키나와현으로 병합됐고, 일본 본토와 비교하여 2등 국민 취급을 당했다. 2차 대전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10~15만명의 민간인이 학살되는 아픔을 겪은 이곳의 아픔을 연극에서는 다큐멘터리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지난달 27일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최희서는 "나레이션도 나레이션이지만 무대 위에서 어떻게 서 있느냐가 더 큰 걱정이었다. 결과적으로 어떤 표정이나 몸짓으로 뭘 전달한다기 보다는 '내가 이 이야기를 왜 해야하는지' 나무 위 삶의 터전인 섬을 지키고자 하는 청년과 자기의 체면, 본분을 지키고자 하는 상관이 2년 동안 나무 위에서 보냈던 이야기를 '왜 해야하는지'에 대한 의지를 생각하며 캐릭터에 접근했고, 무대 위 신비로운 제스처는 나무의 혼령이다보니까 초인간적인 형태로 이야기를 끌어갈 뭔가를 연구하다 보니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연극 '나무 위의 군대' 기자간담회(최희서) 2023.06.27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나무 위의 군대' 기자간담회(최희서) 2023.06.27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상관과 신병의 대화 사이에 여자가 무덤덤하게 짧게 던지는 말한마디에 관객들은 빵빵 터지는 웃음요소를 안고 있다. 최희서는 "극을 가볍게 하려는 의도는 아니고 원문과 그대로 각색없이 써 있는 부분이라 아마 일본 관객이라도 웃었을 것"이라며 "저희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훨씬 뿌리가 깊어 후반부 묵직한 주제를 거쳐 엔딩으로 가기 위해 좀 더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일본 두 번째 공연에서는 여자가 오키나와 민요를 부르며 일본 특유의 토속성을 관객들에게 주지시킨다. 입고 있는 옷 만 봐도 오키나와 사람이고, 부르는 노래 역시 오키나와임을 암시한다. 오키나와의 한이 서린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 일본의 정서라면 2023년 서울에서 공연되고 있는 '나무 위의 군대'는 이런 요소들을 배제하고 있다. '여자'는 좀 더 스토리텔러 역할에 맞춰져 관객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인간의 수치심을 목격하고, 번뇌를 목격하며, 간절한 믿음을 목격하는 것들을 현대적인 언어로 소개한다. 

 

최희서는 작품 안에서 일본을 상기시킬 수 있는 기모노나 유타카를 입지 않는다. 시대나 국가를 알 수 없는 의상을 입고 영롱한 음악효과로 신비로운 위상을 나타낸다. 이는 전쟁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을 상징할 수도 또는 오키나와에서 희생당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그는 배우로서 여러가지 감각들로 '여자' 역을 구축했고, 극 전개에 있어 빠질 수 없는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연극 '나무 위의 군대'는 인류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나무 위의 맞물리지 않는 두 병사에게 투영하며 감각적이고 솔직하게 그려낸다. 관객들은 전쟁의 배경이 된 본토와 오키나와의 관계를 비롯하여 갈등과 분열, 신념과 생존, 대의와 수치 등 다각적인 접근과 공감을 하게 되고, 전쟁의 무익함을 깨닫는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성찰할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작품은 8월 12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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