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비Bea' 공연 사진(캐서린 역 강명주, 비역 김주연). 제공 크리에이티브 석영
연극 '비Bea' 공연 사진(캐서린 역 강명주, 비역 김주연). 제공 크리에이티브 석영

[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죽음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얻고 싶었던 비Bea. 어릴적 누군가 죽음으로부터 삶에 대한 간절함을 배운 간병인 레이, 누구보다 비(Bea)를 사랑하지만 혼자 감당하기 힘든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예민해진 엄마 캐서린. 

 

연극 '비Bea'는 이 세 사람이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다. 

 

연극 '비Bea'는 영국 내셔널 시어터 출신의 극작가 겸 연출가로, 사회적 이슈를 무대로 옮기는 것에 능한 '믹 고든'(Mick Gordon)의 대표작이다. 2010년 런던 소호 극장에서 초연을 올린 이후 캐나다 몬트리올, 토론토, 퀘벡과 그리스에서 연이어 화제를 모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국내에서는 2016년 초연 이후 2019년 재연, 그리고 5년 만에 세 번째 시즌으로 관객들을 맞고 있다. 

 

연극 '비Bea'가 논하고자 하는 뚜렷한 메시지는 죽음과 그 과정에 따른 존엄성이다. 그 과정 속에 '안락사'가 등장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불치의 환자에 대하여, 본인 또는 가족의 요구에 따라 고통이 적은 방법으로 생명을 단축하는 행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으로 이에 따른 위법성에 관한 법적 문제가 야기되는 경우가 있다. 

 

연극 '비Bea'가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안락사의 옳고 그름이 아닌 안락사를 택해야만 하는 어느 젊은 여성 '비'를 통해 죽음에 대한 존엄성, 삶의 질에 대한 선택의 고민일 것이다. 

 

연극 '비Bea' 공연 사진(레이 역 강기둥, 비 역 이지혜). 제공 크리에이티브 석영
연극 '비Bea' 공연 사진(레이 역 강기둥, 비 역 이지혜). 제공 크리에이티브 석영

비와 캐서린의 연결고리 간병인 레이(Ray)

'비'는 정확한 병명도 모른 채 만성 체력 저하증으로 8년째 침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탁월한 공감능력을 가진 동성애자 간병인 레이(Ray)가 운명적으로 찾아온다. 

 

연극 '비'는 어두운 방 침대에서 일어난 레이가 선글라스에 벌(Bee)을 상징하는 노란색 잠옷에 빨간 구두를 신고 신나는 락음악에 맞춰 침대에서 신나게 노는 경쾌한 오프닝으로 시작한다. 8년 째 만성 체력 저하증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체력이 팔팔한 오프닝이었다. 

 

이후 등장한 레이. 레이의 쉴 새 없는 수다스러움과 엉뚱발랄한 매력에 '비'는 이내 마음을 뺏기며 그의 새로운 간병인으로서 마음속 낙점한다. 하지만 이런 밝은 분위기를 뒤로 하고 연극 '비Bea'는 이내 연극의 주제인 죽음에 대해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레이에게 "나 죽고 싶어"라는 대사를 한 '비'를 통해 연극은 삶과 죽음의 심오한 주제를 본격적으로 끄집어 낸다. 

 

'비'는 자신의 방 침대 밖을 8년 동안 나가본 적이 없다. 또래들이 하는 모든 행동들 클럽 가서 놀기, 데이트, 여행, 심지어 섹스도 8년 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고백에 레이는 잠시 당황하고 엄마 캐서린에서 전하기 위한 '비'의 진심이 담긴 편지를 대필한다. '비'가 죽음을 원한다는 사실에 레이는 처음에는 놀라지만 이내 '비'의 마음을 이해하며 특유의 익살스러움과 친화력으로 '비'를 간병하기 시작한다. 

 

연극 '비Bea' 공연 사진. 제공 크리에이티브 석영
연극 '비Bea' 공연 사진. 제공 크리에이티브 석영

무대는 '비'의 방으로 꾸며졌다. 중앙에 놓인 커다란 침대, 그 옆 트레이에 쌓인 약들, 그리고 귀걸이 공예 조각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비'가 8년 동안 방안에서 취미로 만들어 걸기 시작한 800개가 넘는 귀걸이 공예 조각들이 반짝이는 모습이 아름다울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론 고통이 사라진 뒤 이것 밖에 할 수 없는 '비'의 간절함이다. 

 

'비'를 애칭 '붕붕이'라 부르며 일과가 끝나면 딸을 정성스레 간병했던 캐서린에게 레이는 처음에는 달갑지 않은 간병인이었다.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면접에서 네 가지 조건을 걸고 간병을 허락했지만 이내 마찰이 생기고 만다. 하지만 그런 이슈도 레이의 거절하지 못할 친화력 앞에 서서히 마음의 벽이 무너진다. 오랜 간병에서 온 경직되고, 무표정한 차가움 속 레이를 대했던 캐서린 마음 한 켠에도 서서히 그 벽이 무너짐을 그녀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잠시 레이가 '비'를 떠나 있는 사이 딸 '비'에서 레이가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를 자각한 캐서린. 결국 '비' 생일날 캐서린은 '비', 레이와 함께 파티 복장에 선글라스를 끼고 신나는 음악에 맞춰 노래 부르며 춤을 추는 놀라운 반전을 보여준다. 나아가 레이에게 내건 규칙 1 음행에 관한 룰을 스스로 깨고 짖궂은 농담으로 레이를 당황케 하며 신나는 하루를 보낸다. 

 

연극 '비Bea' 공연 사진. 제공 크리에이티브 석영
연극 '비Bea' 공연 사진. 제공 크리에이티브 석영

하지만 레이는 이내 '비'의 곁은 떠나게 된다. '비'처럼 아픈 누나에게로 간병인이 필요한 요양원으로 가게된다. 레이는 떠나기 전 자신이 왜 간병인이 되었는지 담담하게 고백한다. 소년원에서 누군가 천을 매달아 자살했고, 그 순간 똑같이 죽겠다는 생각보다 살아야겠다고 다짐했고, 간병인이 되는 선택을 한 것. 

 

떠나간 레이의 영향을 받은 캐서린은 마침내 '비' 옆에 누워 딸의 마음을 진정으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딸이 그토록 원하던 죽음을 맞게 해준다. 딸이 많은 알약과 함께 물을 마시도록 하고 딸을 안아주며 '비'의 마지막을 함께 한다. '비'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준 레이에게 용기를 얻고 엄마 캐서린의 도움으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던 자유를 얻은 것이다.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던 '비'는 비로소 침대 밖을 나서며 두 발을 내디뎌 걷고 뛴다. 무대가올라가며 뒤로 푸른 안마당이 보이고 어릴적 올라가 놀았던 사과나무 주위를 마음껏 뛰어다니는 '비'의 모습에서 그토록 원했던 구속 받지 않는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을 보며 흐믓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연극 '비Bea' 공연 사진(레이 역 김세환, 비 역 김주연). 제공 크리에이티브 석영
연극 '비Bea' 공연 사진(레이 역 김세환, 비 역 김주연). 제공 크리에이티브 석영

진정한 삶과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가. 

연극 '비Bea'는 죽음을 말하지만 그 죽음 속에 우리가 사는 동안 얼마나 진정성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되겠다는 메시지를 레이와 '비'를 통해 자각하게 한다. 또한 누구나 한 번 쯤은 무의식적으로 행했을 '마음 맹인'이라는 단어를 통해 타인을 공감해 주지 못한 행위에 대해 뒤돌아 보게 해준다. 이는 자신의 속내에도 남모를 고충이 있지만 타인의 아픔을 존중하고 공감하며 정성껏 보듬어줌으로써 병든 마음을 조금이나마 치유해준 레이의 선한 영향력은 아닐지 모르겠다. 

 

안락사를 선택함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얻고자 한 젊은 여성을 통해 인간의 공감 능력과 한계에 대해 밝고 경쾌하게 이야기하는 연극 '비Bea'는 방은진·강명주, 이지혜·김주연, 강기둥·김세환이 출연하며, 3월 24일까지 LG아트센터 U+ 스테이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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