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베토벤' 프레스콜(루드비히 반 베토벤 역 카이). 2023.01.1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DB
뮤지컬 '베토벤' 프레스콜(루드비히 반 베토벤 역 카이). 2023.01.1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DB

[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K-뮤지컬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한 EMK뮤지컬컴퍼니가 새롭게 선보인 뮤지컬 '베토벤;Beethoven Secret'(이하 '베토벤')이 지난 1월 12일 나흘간의 월드 프리미어 프리뷰 공연을 마치고 본격적인 공연의 막을 올렸다. '베토벤'은 지난 2019년 미하엘 쿤체(Michael Kunze)와 실베스터 르베이(Sylvester Levay)의 공동 기자간담회를 통해 처음 공개되며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후 EMK뮤지컬컴퍼니와 함께 7년 간의 제작 끝에 한국에서 전 세계 월드 프리미어로 초연하게 되었다.


뮤지컬 '베토벤'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베토벤 사후 그의 유품 중에서 발견된 불멸의 연인(Unsterbluche Geliebte)에게 쓴 편지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되었다. 베토벤은 1770년에 출생해 1827년 사망했고 뮤지컬은 그의 57년 인생 중 1810년부터 1812년을 배경으로 한다. 이 시기 베토벤은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청력 상실의 위기를 맞은 40대의 베토벤이 안토니 브렌타노를 만나며 모든 경계와 제약에서 벗어나 내면에서 끌어올린 음악을 만들어내는 '인간 베토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뮤지컬 '베토벤'은 전 세계 중 한국에서 초연으로 많은 뮤지컬 마니아와 클래식 마니아들의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공연의 막을 올렸지만 지금까지 관객들의 평가는 극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다.


캐스팅 라인업을 보자면 루드비히 반 베토벤 역에 박효신, 박은태, 카이 이 세 배우가 출연하는데 개인적인 티켓팅 파워로 공연 티켓 판매량은 어느 정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박효신 배우 티켓팅 파워는 놀랍다. 베토벤의 연인 안토니 브렌타노 역에는 조정은, 옥주현, 윤공주가 열연하고 있다. 베토벤의 동생 카스파 반 베토벤 역에는 이해준, 윤소호, 김진욱 배우가 토니의 동생 베티나 브렌타노 역에는 전민지, 최지혜 배우가 출연하고 있다.

 

뮤지컬 '베토벤' 프레스콜(카스파 반 베토벤 역 김진욱, 루드비히 반 베토벤 역 카이) 2023.01.1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DB
뮤지컬 '베토벤' 프레스콜(카스파 반 베토벤 역 김진욱, 루드비히 반 베토벤 역 카이) 2023.01.1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DB

관객들 사이에서 가장 큰 불평이 나오는 있는 부분은 역시 음악이다.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라고 평가받는 교향곡 3번 Op.55(영웅 교향곡), 교향곡 5번 Op.67(운명 교향곡)을 비롯해 피아노 소나타 8번 Op.13(비창), 피아노 소나타 14번 Op.27-2(월광) 등이 차용되어 무대 위에서 재현되고 있지만 클래식 원곡의 주는 풍부한 화성감을 뮤지컬 무대에서 다 표현하기란 어쩌면 처음부터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베토벤' 이기에 갖는 기대감을, 출연하는 배우들의 팬심때문에 그 어려운 티켓팅을 뚫고 공연을 보는 것인데 기대감을 실망감으로 바꿔주는 음악적 불만에 실망감이 터져나오고 있는 것 같다 ... 이 점은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들 '안나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모차르트' 등도 마찬가지로 원곡이 주는 음악의 감동을 뮤지컬 넘버에서 온전히 가지기란 힘든 부분이다. 

 

뮤지컬 '베토벤'의 음악은 기악곡을 뮤지컬적 음악으로 풀어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악기의 소리를 주로 하는 기악곡이 악기의 특성을 살려 곡을 전개해 나가야 하는 반면, 뮤지컬 음악은 극 중 인물의 캐릭터를 악기가 아닌 배우가 연기와 가창을 통해 표현해야 하므로 장르적 특성상 악기가 아닌 배우의 목소리가 중심이 되는 전혀 다른 형태를 지니게 된다. 작곡 및 오케스트레이션을 맡은 실베스터 르베이는 베토벤의 음악 중 강렬하고 짧은 모티브를 중심으로 새로운 멜로디를 삽입하고 이를 가창이 가능한 뮤지컬 넘버로 전환시킨 것이다.

 

하지만 베토벤의 아름답고 숭고한 선율이 좀 가볍게 뮤지컬 넘버화 되어 무대 위에서 불러지는 것에 대한 팬들의 속상함이 불만족을 낳고 있는 모양새다. 결정적으로 52개의 넘버 중 팬들의 뇌리를 때리는 결정적인 것이 없다는 것도 한 몫 하고 있다.

 

뮤지컬 '베토벤' 프레스콜(루드비히 반 베토벤 역 박은태). 2023.01.1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DB
뮤지컬 '베토벤' 프레스콜(루드비히 반 베토벤 역 박은태). 2023.01.1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DB
뮤지컬 '베토벤' 프레스콜. 2023.01.1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DB
뮤지컬 '베토벤' 프레스콜. 2023.01.1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DB

스토리도 대부분 베토벤의 음악 창작에 대한 고뇌와 청력 상실의 두려움보다는 토니와의 사랑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 있어 역시 가벼움을 지울 수 없다. 애초에 1810년~1812년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연서에서 시작되었으니 이 점은 뮤지컬을 보는 관객들이 어느 정도는 감안하고 봐야할 듯. 불륜적 사랑이지만 그 사랑마저도 현실의 벽 앞에 허락되지 못한 베토벤의 가혹한 운명에 주목해 보면 좋을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이 토니에게 빠질 수 밖에 없는 결정적 이유가 애매모호하다. 콘서트 취소라는 위기 속에 토니가 자신을 변호해 줬다는 이유로 한 눈에 사랑에 빠지는 베토벤의 설정. 한마디로 베토벤이 '금사빠' 로 변신하는 모양새라 좀 어리둥절 했다. 베토벤과 토니가 왜 서로에게 끌려야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서사가 부족한 부분이었다. 뭐 사랑은 예고없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까우뚱.. 


베토벤이 어릴적 아버지로부터 음악적인 학대를 받는 장면도 얼핏 한 두 장면 나오는데 그 앞뒤 전개의 개연성이 부족했다. 피아노 앞에서 고뇌할 때 나오는 혼령(신지혜, 김홍일, 조해인, 최영제, 김지혜, 차규민)들의 창작적 안무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결국 베토벤 곁을 맴도는 음악적 혼령은 사랑을 쟁취하지 못하고 청력을 상실해가며 느끼는 절망감 속에서도 베토벤에게 창조적 음악을 강요하는 악마의 신인 것 같아 잔인함의 미학을 안무로 잘 표현한 것 같았다.

 

​뮤지컬 '베토벤' 프레스콜(안토니 브렌타노 역 옥주현). 2023.01.1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DB
​뮤지컬 '베토벤' 프레스콜(안토니 브렌타노 역 옥주현). 2023.01.1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DB

베토벤 생애의 어려움과 음악적 고뇌, 청력을 잃어가는 것에 대한 개인적 고뇌에 대한 신도 관객들에게 설득을 주기에는 충분치 못했다. 귀가 멀어가는 시기의 고통과 감정, 외로움이 음악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서사가 갑자기 토니와의 사랑으로 연결되고 베토벤 음악을 기초로한 선율 속에 배우들의 휼륭한 연기와 노래, 웅장한 무대와 조명, 무대 장치로 커버되는 듯 하다가 다음 신으로 넘어가는 것에서도 부족함을 느꼈다. 

 

내가 두 번째 관람했던 날의 캐스팅은 배우 카이와 조정은 커플이었다. 카이 배우는 성악 전공자다운 풍부한 성량과 정확한 발음으로 가사 전달력이 좋았다. 물론 가창 실력도 최고. 박은태 배우와는 다른 느낌. 첫 번째 관람 때의 박은태 배우는 모든 배역에 최적화되어 있는 내 최애 배우이기는 하지만 이번 베토벤에서는 무게감이 틀렸다. 박은태 배우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개인적으로 카이 배우가 좀 더 베토벤에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파워풀한 성량의 배우를 선호하기는 하는데 이번 베토벤의 창작 배경이 1810년부터 1812년의 편지에서 유래되었다는 점을 감안해 토니가 가지는 내면의 아픔을 애절하면서 섬세하게 감정을 표현한 조정은 배우의 톤과 성량은 잘 조절되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감탄했던 점은 토니의 동생 베티나 역의 최지혜 배우였다. 정확한 발음과 파워있는 목소리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많은 신이 없었다는 점이 아쉬울 정도였다.

 

뮤지컬 '베토벤' 프레스콜(안토니 브렌타노 역 조정은). 2023.01.1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DB
뮤지컬 '베토벤' 프레스콜(안토니 브렌타노 역 조정은). 2023.01.1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DB

전체적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 부분은 무대장치와 조명일 것이다. 나 역시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불멸의 사랑을 유기적으로 표현한 무대 디자인과 영상 디자인을 연출한 오필영 무대 디자이너가 박수 받아 마땅한 충분한 이유일 것이다. 1부와 2부 마지막 장면 하이라이트 신에서 무대 전체를 활용하는 구성도 좋았고 무대 전환과 음악의 타이밍은 전체적으로 잘 맞아 떨어져 좋았다. 무대의 배경인 강한 대비적 색채감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색 대비라 집중도 높았고 디테일한 또한 눈에 띄었다. 비오는 날 바닥에 떨어져 튀기는 물방울을 표현하는 티테일도 좋았고 조명과 번개, 천둥, 하늘에서 내려오는 나무 세트와 불꽃놀이 같은 특수효과도 극의 몰입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작품의 서사와 합일되는 동시에 섬세함이 돋보이는 아름다운 조명 디자인으로 환상적인 무대를 구현한 구윤영 무대 디자이너, 극 중 캐릭터의 심연까지 담아낸 의상 디자인으로 250 여 년 전 베토벤 시대를 이끈 조문수 디자이너, 헤어와 메이크업 디자인을 책임진 김유선 디자이너와 조윤형 소품 디자이너 등은 대작의 품격을 한 단계 높였다 생각한다.

 

뮤지컬 '베토벤' 프레스콜(안토니 브렌타노 역 윤공주). 2023.01.1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DB
뮤지컬 '베토벤' 프레스콜(안토니 브렌타노 역 윤공주). 2023.01.19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DB

뮤지컬 '베토벤'은 클래식의 거장이며, 세기의 천재, 그리고 악성으로 불리는 작곡가 베토벤의 음악가적 면모보다는 인간 베토벤의 내면에 집중하고 있다. 음악으로 온 세상을 구원한 위대한 예술가지만 정작 자신은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마음을 나누는 방법을 깨닫지 못했던 베토벤. 그런 베토벤에 비해 평범하지만 자유롭고, 인생의 빛이 되는 진정한 사랑을 찾아 소박한 행복을 누리는 동생 카스파의 인생과 대조되며, 그의 재능은 신의 축복이기보다는 음악에의 신성한 의무를 다하기 위한 도구이자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유리시킨 족쇄로 그려진다. 심연의 고독을 헤매던 베토벤의 폐쇄된 세상은 세상 속에서 부드럽고 단단하게 자신을 이야기 하는 그의 불멸의 사랑 안토니 브렌타노를 만나 비로소 새로운 빛을 만나게 된다. 

 

뮤지컬 '베토벤'을 관람하는 관점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배우에 초점을 맞춘다면 만족할 것이고, 베토벤의 음악에 맞춘다면 실망할 지도 모른다. 전체적인 스토리 역시 2년(1810~1812년) 동안에 쓰여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연서에서 창작된 스토리라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면 무난할 것이고 더 넓은 의미로 클래식 거장 '베토벤'의 전체 생애를 생각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대, 조명, 의상 등은 지금의 시대에서 250 여 년 전 베토벤의 시대를 공감하기에 충분했다고 본다.

 

비싼 티켓값에 각자가 생각하고 기대했던 관점이 달라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악성 베토벤이 아닌 인간 베토벤 생애에서 한 줄기 빛이 되었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던 안토니 브렌타노와의 불멸의 사랑. 죽으면서 마지막에 부르는 '자유는 나의 운명'이라는 말은 죽음을 통해 자유를 찾을 수 밖에 없었던 잔인했던 운명의 예술가 베토벤의 마지막 절규가 아닐까 생각한다. 뮤지컬 '베토벤'은 3월 26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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