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프레스콜(몰리나 역 이율, 발렌틴 역 차선우) 2024.02.0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프레스콜(몰리나 역 이율, 발렌틴 역 차선우) 2024.02.0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두 남자의 치명적이고 슬픈 사랑을 다룬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가 6년 만에 새로운 캐스팅 라인업으로 관객들을 맞고 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 마누엘 푸익(Manuel Puiq)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1976년 소설로 처음 세상에 공개되었으며, 1983년 희곡 작품으로 선보여졌다. 1985년에는 월리엄 허트(몰리나)와 라울 줄리아(발렌틴) 출연으로 영화화되었고, 1992년 동명의 뮤지컬로 웨스트엔드에서 첫 선을 보이고, 1993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라 토니어워즈 베스트 뮤지컬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는 2011년 초연 이후 2015, 2017년 삼연까지 매 시즌 호평을 받으며 정성화, 박은태, 최재웅, 김주헌, 김호영, 정문성, 김선호 등 수많은 스타 배우들이 거쳐가며 관객들로부터 큰사랑을 받았다. 

 

작품은 이념과 사상이 전혀 다른 두 인물 몰리나와 발렌틴이 감옥에서 만나 받아들여가는과정 속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인간애와 사랑을 다룬다. 자신을 여자라고 믿고 있는 낭만적 감성의 소유자 몰리나역에는 전박찬, 이율, 정일우가 냉철한 반정부주의자 정치범 발렌틴 역에는박정복, 최석진, 차선우가 함께한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프레스콜 (박제영 연출) 2024.02.0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프레스콜 (박제영 연출) 2024.02.0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지난 2일 서울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열린 '거미여인의 키스' 프레스콜에서 박제영 연출은 "1976년 아르헨티나에서 쓰인 작품이 오늘날에도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이 발렌틴과 몰리나처럼 우리도 언제든 사회적으로 억압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 것 같다. 다수의 편견으로 소수의 존엄성이 무너지는 일이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질 수 있고, 살면서 삶이 감옥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이런 부분을 작품에 담아내고 싶었고,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사랑하고 베풀며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면서 "각색을 함께 맡았기 때문에 살을 붙이고 싶은 욕망이 피어올랐고, 소설에서 재미있게 본 내용들을 넣고 싶었지만 희곡 본연의 매력에 집중하자고 결정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두 인물이 너무나 상반되는 인물이다. 감옥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몰리나는 감옥을 나가기 위해 발렌틴에게 자신의 영화 이야기로 뭔가 캐내려고도 하고 친해지려고도 하고 또 사랑이라는 감정도 올라온다. 발렌틴 역시 몰리나에게 자신의 사상을 부탁하고 싶은 심리적인 상태에서 그가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게 돕고 싶다는 마음에 자신의 이상을 조금씩 주입해간다. 그런 충돌 지점들이 서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하면 잘 살아날 수 있을까를 여섯 명의 배우들과 함께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거미여인의 키스'는 동성애를 하나의 성도착증으로부터 터부시해 온 관념과 여성과 남성을 여성상과 남성상의 대비로 가둬두는 성 이데올로기를 문제삼고 있다. 몰리나와 발렌틴이 각각 여성과 남성을 대표하는 듯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진정한 이해와 애정이 싹트고 결국 성적인 합일에 이르게  되면서 관념의 허구성을 나타낸다.

 

박제영 연출은 "처음 고민했던 지점은 (배우가) 어떻게 하면 여성으로 자신을 발 받아들을 수 있을까 였다. '어떤 행동으로 여자처럼 보여야지'가 아닌 '난 그냥 여자야 손짓이든 움직이든 모든 것에 선입견 없이 우리 막 움직여보자'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이 부분은 프리 프로덕션 과정에서 성소수자인 몰리나를 표현하는 게 고민돼 브로드웨이에 가서 작품 10개 정도를 보고 왔다. 느낌 점은 '(표현에) 굉장히 거침없었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고 말하고 걷고 호흡하는 모든 것이 여성을 표현하기위한 노력이 아니라 그냥 여자여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배우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여자로 표현할까'에 신경쓰기보다 말투가 어떻든 행동이 어떻든 나는 여자'라는 느낌으로 연기해달라고 주문했고, 그래서 각자의 매력이 더 도드라지게 나온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을 여자라고 믿고 있는 낭만적 감성의 소유자 몰리나 역에는 전박찬, 이율, 정일우가 함께한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프레스콜 (몰리나 역 정일우) 2024.02.0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프레스콜 (몰리나 역 정일우) 2024.02.0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매체와 무대를 오가는 연기를 해온 정일우는 '엘리펀트 송' 이후 5년 만에 연극 무대로 복귀했다. 정일우는 "워낙 유명한 작품이어서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처음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발렌틴이 더 매력적이라고 느꼈지만 오랜만에 연극에 복귀하며 어떤 캐릭터를 선택하면 좋을까 생각했더니 몰리나 역에 욕심이 났다. 저에게도 도전이었고,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것이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아직 찾아가는 중이고 형들이나 연출님께서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하게도 공연에 잘 임하고 있다"라며 작품에 합류한 소감을 전했다. 

 

"몰리나 대사 중 '나는 내가 슬프다고 느끼면 올거야'라는 대사가 크게 와 닿았다. 몰리나와 정일우가 가진 색깔들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몰리나의 유약하면서도 섬세한 부분을 최대한 포인트로 잡아서 살려보려고 했다. 유리알처럼 깨질 것 같이 약해 보이면서도 자신의 감정이나 마음에 굉장히 솔직한 캐릭터로 잡았던 것 같다. 저는 가면을 쓰기도 하고 내성적이라 감정을 잘 못 드러내는데, 몰리나의 가장 큰매력이 이런 솔직함인 것 같아요"

 

정일우는 "싱크로율은 당연히 100%에 맞추려고 준비했던 것 같다. 몰리나에게는 사랑이라는 주제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유리알처럼 섬세한 친구여서 손동작이라든지 앉아 있을때, 걸을 때라든지 모든 것을 여성스럽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목소리 또한 인위적으로 만들려 하지 않았고, 어떤 톤에 어떤 목소리를 내는 게 가장 몰리나와 비슷할까를 정말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정일우는 "연극무대 만의 긴장감, 관객과의 소통이 매력적이다. 한 작품을 서른번도 넘게 공연하며 깊이 알고, 배우로서의 배움도 늘어가는 것 같다. 기회만 된다면 평생 연극무대에 서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프레스콜 (몰리나 역 전박찬) 2024.02.0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프레스콜 (몰리나 역 전박찬) 2024.02.0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2막 3장에서 두 사람이 육체적인 저녁을 보내고 서로에게 느낀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안전하다'는 감각을 언급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키워드 같아요"

 

전박찬은 "먼저 몰리나라는 인물이 쉽지 않게 다가왔다. 성소수자 중에서도 트랜스젠더냐 트랜스섹슈얼이냐 라는 논쟁도 있었는데 규정할 수 없었던 것 같고, 그래서 중점적으로 접근한 부분은 '객석에 당사자가 앉아 있을 수 있다'라는 생각 하나로 접근했다"면서 "관객들이 이 작품을 단순히 성소수자와 정치사상범의 로맨스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는 맞지만, 2024년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혐오와 차별, 억압, 그리고 우리 역사의 운동과 관련 있는 작품이다. 우리 여섯 배우분들의 색깔이 다 다르고 그 재미가 다양해서 보고 또 봐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프레스콜 (몰리나 역 이율) 2024.02.0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프레스콜 (몰리나 역 이율) 2024.02.0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이율은 "(몰리나) 발랄함에 맞춰 연출님의 방향성에 맞추려고 했다. 2인극이다보니 호흡을 잘 맞춰야 해서 염두에 두면서 연습했다. 공연을 하며 몰리나에게 '괜찮아'라고 말하며 토닥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극중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는 박정복 배우와 마찬가지로 '2막 2장'을 언급했다. 그는 "이 장면을 제일 좋아한다. 몰리나가 유일하게 자신의 속마음, 본심을 얘기하는 부분이라 감정이입이 많이 된다"라며 동의했다.

 

냉철한 반정부주의자 정치범으로 감옥 안에서 처절하게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의 혼란을 겪는 발렌틴에는 박정복, 최석진, 차선우가 연기한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프레스콜 (발렌틴 역 차선우) 2024.02.0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프레스콜 (발렌틴 역 차선우) 2024.02.0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지난해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프린지'에 참여, '헬로, 더 헬: 오델로'로 성공적 연극데뷔를 마친 그룹 B1A4 출신 차선우는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냉철한 발렌틴으로 완벽 변신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차선우는 "무대에 있는것을 좋아한다. (데뷔작인) 오델로는 피지컬적인 부분이 많아 연기보다 몸을 많이 쓰는 느낌이었는데 무대에서 그동안 했던 음악이 아닌 내가 해보고 싶은 연기를 하고 싶었는데 마침 이렇게 좋은 작품을 만나게 돼서 요즘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면서 "연극이 처음이다 보니 쉽지만은 않은 작업이었다. 톤, 발성, 몸동작, 연기의농도, 그런 것들도 잘 모르겠고, 많이 헤맸던 것 같다. 그게 많이 압박으로 다가오기도 했는데, 다행히 좋은 연출님과 형들 덕분에 캐릭터를 잘 만들어 갈 수 있었고, 내가 가진 게 부족해서 형들의 연습을 보면서 많이 흡수하려 했다. 그러면서 나만의 발렌틴을 어떻게 더 끌어내 볼 수 있을지 욕심이 났다. 열심히 노력하며 공연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프레스콜 (발렌틴 역 박정복) 2024.02.0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프레스콜 (발렌틴 역 박정복) 2024.02.0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지난 시즌에 이어 다시 발렌틴으로 돌아온 박정복은 "이 작품을 워낙 좋아하고 행복했던 기억들이 많았다. 발렌틴 역을 준비하면서 이전 시즌과 크게 다른 건 없었던 것 같다. 우리 셋이 텍스트로 많이 공유하고 토론하면서 그냥 이 텍스트가 가진힘, 이 인물이 어떻게 가고 싶은지에 중점을 뒀다"고 전했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는 '2막 2장'을 꼽았다. 그는 "두 사람이 되게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하던 때 어떤 사건을 계기로 멀어지고 그 멀어짐을 통해 더 단단해지는 과정들이 재밌습니다"라며 "이번 시즌에서 제일 재밌고 다이내믹한 것 같다"고 했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프레스콜 (발렌틴 역 최석진) 2024.02.0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프레스콜 (발렌틴 역 최석진) 2024.02.02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최석진은 "나만의 뭔가를 찾으려 애쓰려 않았던 것 같다. 대본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 발렌틴이 중점을 둬야 할 것, 표현해야 할 것 들을 셋이 공유하며 하다 보니 선우나 정복이 형의 발렌틴에 정말 좋은 점들이 많아서 나는 중간에서 잘 섞기만 하면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뇌경색 진단 후 복귀한 최석진이기에 이번 작품은 그에게 남다른 감회로 다가온 듯 했다. 그는 "쓰러지고 복귀하기까지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고, 다시 무대에 서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때 이 대본을 봤고, 어쩌면 발렌틴이 겪는 어려움과 나의 어려움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무대에서 잘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겁내지 말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해보자는 생각으로 접근했던 것 같다"라며 "뇌경색이 완치 개념이 없어서 지금도 꾸준히 약을 먹으며 재활 치료도 하고 있다. 그리고 제일 무서웠던 건 '포용적 예술'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내 무대를 보면서 '많이 아팠잖아, 아팠던 것 치고 괜찮아' 라는 식으로 예술 그 자체로 보는 게 아니라 포용하는 마음으로  본다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이 악물고 더 준비를 많이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해나갈 생각"이라는 심정을 밝혔다.

 

서로 다른 두 남자가 전하는 인간애의 진한 울림을 통해, 현대사회에 꼭 필요한 인간 존엄성의 묵직한 가치를 전하는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3월 31일까지 대학로 예그린씨어터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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