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무용단 '묵향' 전막 프레스콜. 2023.12.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국립무용단 '묵향' 전막 프레스콜. 2023.12.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말에 적합한 한국춤의 잠재력을 전세계에 알린 국립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 '묵향'이 초연 10주년을 맞아 4년 만에 국내 관객을 맞는다.

 

지난 10년간 10개국 43회 공연을 하며 꾸준히 완성도를 높인 '묵향'은 정갈한 선비정신을 사군자를 상징하는 매·난·국·죽에 담아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낸 작품이다. 윤성주 전 국림무용단 예술감독이 고(故) 최현의 '군자무'에서 영감받아 안무하고, 간결한 양식미로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해 온 정구호 연출이 세련된 무대미학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무용의상음악 등 작품을 이루는 요소는 최대한 전통 양식을 유지하면서, 극도로 세련된 무대 미학으로 동시대 한국춤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 

 

한국춤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제시한 '묵향'은 관객과 평단의 호평에 힘입어 초연 6개월 만에 재공연했으며, 이듬해 세계 무대로 진출했다. 한국무용으로서는 이례적으로 10년간 장기공연을 이어온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겸비한 작품이다. 최근에는 캐나다(국립예술센터)와 미국(존 에프 케네디센터)을 찾아 북미 관객과 평단의 환호 속에 한국무용 한류에 앞장서는 '묵향'의 위상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13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묵향' 전막 프레스콜이 진행되었다. 전막 시연후 윤성주 안무가, 국립무용단 김미애, 정관용이 참석했고, 정구호 연출은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했다.

 

국립무용단 '묵향' 전막 프레스콜(안무가 윤성주-국립무용단 김미애, 정관용). 2023.12.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국립무용단 '묵향' 전막 프레스콜(안무가 윤성주-국립무용단 김미애, 정관용). 2023.12.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안무가 윤성주는 "이 작품이 10주년을 맞은 것은 저만의 힘으로는 힘들고 의상·무용·춤 등 국립무용단원들의 노고가 함께해 지금의 작품이 완성되었다. 지금까지 43회 공연은 국내 공연으로는 보기드문 경우인데 감사하고 이후 10년 그 이후 10년도 지나도 우리 춤이 세계속에 K 댄스로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묵향' 초연 때부터 국립무용단 무용수로 작품에 참여했고 이번 작품에서는 지도를 겸하고 있는 김미애는 "10년 동안 한 작품에 출연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떨리는 마음으로 초심을 잃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것이 감격스럽고 행복한 순간이다. 모든게 다 인연의 시작과 끝이 연결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10년 전 '묵향'에서 매화란 파트에 출연하면서 굉장히 고심했던 인연의 시간이 지금 또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제가 얼마만큼 성숙하게 이 작품을 대하고 있는 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 되어 많은 관객분들께 선보여 줬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라며 참여 소감을 전했다. 

 

정관용은 "엊그제 공연한 것 같은데 벌써 10년이 지나 놀랐고 함께한 이 시간이 영광이고, 20년 후에도 이 자리에서 다시 인사를 나눴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묵향'은 총 6장으로 구성된다. 서무와 종무는 먹향을 품은 백색과 흑색으로 2~5장은 사계절을 상징하는 매화·난초·국화·대나무를 화려한 색채로 표현한다. 무대를 압도하는 강렬한 색감과 세련된 비주얼은 매 순간 한 폭의 그림을 보는듯한 명장면을 탄생시킨다. 한국춤의 미학을 응축한 안무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지난친 감정표현도 없이, 단순하면서 깊이 있는 호흡으로 정중동의 미학을 표현한다. 

 

국립무용단 '묵향' 전막 프레스콜(안무가 윤성주). 2023.12.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국립무용단 '묵향' 전막 프레스콜(안무가 윤성주). 2023.12.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윤 안무가는 "지난 10년 동안 공연을 이어오면서 안무의 동작이 바뀐 적은 없었다. 아주 소소하게 위치나 출연자에 따라 동선은 바뀌어 43회 공연하는 동안 43번의 안무가 탄생한 거 같다"면서 "예를 들면 '오죽'같은 경우 박을 치는 친구가 추가됐다. 2013년 초연 당시에는 없었지만 인원이 오버되거나 모자르거나 할때 어떨 때는 배치가 되고 안되고 그때마다 다를 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죽이 바닥을 치는 상상은 불교에 죽비라는 악기가 있는데 스님이 탁 하고 때리면 아주 맑고 청아한 소리가 나는데 그것에 의해 정신이 바짝 차리는 효과를 보는 것을 상상해서 대나무가 바닥을 칠 때의 청량한 음색을 음악 속에 같이 묻고 싶어 바닥을 치는 동작을 추가했다. '오죽'은 말그대로 검은죽인데 의상과 조명과 서로 잘 어우러지게 색깔을 검은색으로 해야겠다고 처음부터 생각했고 초연 때는 지금처럼 능숙함에 있어 떨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고 부연했다. 

 

작품의 주를 이루는 매·난·국·죽 외 서무와 종무가 추가된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이 이어졌다. 윤 안무가는 "제가 무용을 시작할 때가 70,80년대라 무용극이 대세였다. 춤 이라는 것이 드라마가 있어야 하고 감정을 담아 동작을 표현해야 한다고 믿던 사람이었다. 처음 기획할 때는 매·난·국·죽 이 네가지만을 생각하고 시작했다. 80년에 고(故)최현의 '군자무'에서 도공이 매·난·국·죽을 그리는 그 신을 무대 위에서 다섯 명이 나와 추던 춤이 있었는데 그 춤을 보고 너무 충격적이라 나도 한 번 만들어 보겠다고 생각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면서 "'매·난·국·죽' 앞뒤로 서무와 종무를 추가해 확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고, 서무는 하얀 옷을 입은 선비들이 동양적인 차분한 색깔을 활짝 열어주는 기분으로 만들었고, 종무는 모든 것을 집대성한다는 개념으로 희망적인 색깔로 갈려고 밝은 톤으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국립무용단 '묵향' 전막 프레스콜. 2023.12.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국립무용단 '묵향' 전막 프레스콜. 2023.12.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작품의 연출은 패션·공연·영화·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통을 재헤석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구호가 맡았다. 정구호는 국립무용단 '묵향' '향연' '산조'부터 서울시립무용단 '일무'까지 우리 춤이 지닌 아름다움을 새롭게 제시하며, 무용계 안팎에 큰 반향을 가져왔다. 그중에서 '묵향'은 2013년 초연부터 매진을 기록하며 '한국춤 신드롬'의 서막을 알린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정구호 스타일' 연출 방식의 핵심은 간결한 양식미로 완성하는 강렬한 비주얼에 있다.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묵향'의 무대는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네 조각의 화이트 스크린이 무대를 감싸고, 각 장을 대표하는 색 분홍, 초록, 노랑, 흑과 백이 스크린과 바닥을 천천히 물들인다. 정 연출의 스타일의 방점은 세련된 한복 디자인이다. 달항아리처럼 봉긋하게 부푼 치맛자락은 짧은 저고리와 균형을 이루고, 리듬감 있게 흔들리는 치마폭 아래로 살짝 보이는 버선코가 춤의 맛을 한층 살린다. 

 

윤 안무가는 "치마 볼륨감은 초연부터 변한 것이 없다. 춤추는 사람이 컨트롤 할수만 있다면 치마가 길면 키가 커보여 좋겠죠. 그런 의미에서 저고리는 짧고 치마는 달항아리 형태로 볼륨감을 줬다. 무용수들은 손으로 치마를 잡는 요령이 있다. 어떻게 예쁘게 잡느냐에 따라서 매무새가 나오는데 속고쟁이는 올라가지 않되 발등은 보여야 하는 동작을 엄청난 연습을 통해 익혔다"고 했다. 

 

이어 그는 "작품의 핵심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길고 짦은 호흡, 치맛자락 아래로 언뜻 스치듯 보이는 내밀한 버선발의 움직임이다. 치마 속에서 흐르는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발디딤새를 봐주시면 우리나라 춤이 정말 난이도가 높은 춤이구나를 느끼실수 있다. 디테일한 움직임의 자취에서 한국춤 고유의 색과 향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관전 포인트를 소개했다. 

 

국립무용단 '묵향' 전막 프레스콜. 2023.12.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국립무용단 '묵향' 전막 프레스콜. 2023.12.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음악도 현대적 요소를 가미했다. 전통 음악에 서양악기를 곁들인 형태로 거문과와 첼로, 가야금과 바이올린 선율이 켜켜이 쌓이면서 동서양 악기의 음향적 조화를 경험할 수 있다. 한편 산조와 정가의 고아한 소리는 청각적으로 작품 속 여백의 미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음악을 따라 한 폭의 그림처럼 번져가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따라가다 보면 과거 선비들의 멋과 여유를 느낄 수 있다. 

 

윤 안무가는 "음악은 새로 작곡한 것이 아닌 기존의 전통 음악을 가져다 사용했다. 단지 서무와 종무 때 거문고와 바이올린은 처음부터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가락을 온전히 다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뿐만 아니라 해외분들도 '우리 음악에 이런 음악이 있구나'를 새롭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됐을 것으로 생각한다. '매화' 부분에 정가를 부르는 것은 한 명이 부른 것인데 마치 열 명이 부른 것처럼 입히고 입혀 돌림노래처럼 음악을 만들었다. 작곡이라기보다는 음향을 편집하는 분이 잘 하신것 같다"고 말했다. 

 

국립무용단 '묵향' 전막 프레스콜. 2023.12.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국립무용단 '묵향' 전막 프레스콜. 2023.12.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묵향'은 지난 10년 동안 국·내외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일본·홍콩·프랑스·덴마크·헝가리·세르비아 등 아시아와 유럽에서 전통의 세계화를 이끌어 왔다. 최근에는 캐나다·미국을 찾아 북미 관객들에게 또 다른 의미의 K 댄스로서 강렬한 인상을 준 바 있다. 과연 이런 인기 비결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윤 안무가는 "우리 전통 춤의 필수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버선발의 디딤새, 손놀림, 팔의 사위, 한국 무용에만 있다고 감히 자부하는 좌우새 등 이런 춤사위는 전세계 우리나라 밖에 없다. 한국사람의 정서가 녹아 있는 우리 춤이 외국분들에게는 굉장히 낯설기도 하지만 새롭게 느끼실 것 같다. 손놀림과 발놀림뿐만 아니라 우리가 한국 춤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얘기라는 것 중 하나가 호흡인데 이 호흡은 무용수가 그날의 컨디션과 자기 음악을 소화하는 능력에 따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 무용수의 개성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독창성이 있기 때문에 해외에서 춤을 보고 이런 점을 인정하는 것 같다"라며 자긍심을 나타냈다. 

 

국립무용단 '묵향' 전막 프레스콜(국립무용단 김미애). 2023.12.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국립무용단 '묵향' 전막 프레스콜(국립무용단 김미애). 2023.12.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국립무용단 '묵향' 전막 프레스콜(국립무용단 정관용). 2023.12.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국립무용단 '묵향' 전막 프레스콜(국립무용단 정관용). 2023.12.13 사진 ⓒ아트코리아방송 이용선 기자​

2019년 이후 4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르는 '묵향'을 바라보는 무용수의 관점에서 관객들에게 제시하는 차별화 포인트는 무엇일까. 

 

김미애는 "그동안 '묵향'을 많이 보셨던 관객들이 해주셨던 말이 '그림같은 무용 공연이다. 세련되면서 품격있는 공연을 본 거 같다"였다. 저도 이번에 지도를 하면서 그전에 출연만 했을때는 전체적인 흐름이나 그림을 보기 어려웠는데 이번에 전체 흐름을 보면서 너무 감격스러운 순간을 객석에서 느꼈다. 동서양을 절묘하게 잘 믹싱한 새로운 작품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전통의 격에 맞게 현대작 미장센이나 의상의 복식 등이 어색하지 않게 잘 묻어나 있다. 시각적으로 새롭다, 자극적이다, 신선하다가 우선 눈에 들어오겠지만 마지막 객석에서 일어나 나갈 때는 역시 '우리 것이다' 라는 깊이가 있는 전통, 우리 한국춤이 가지고 있는 품격을 가슴 깊이 묻고 가셨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관전 포인트를 전했다. 

 

정관용도 "'정중동의 미'를 보실 수 있다. 그전에 보셨던 분이나 새로 보시는 분이 봐도 발끝과 손끝의 아름다운 움직임이 하얀 도화지 위에 무엇인가 그림을 그리면서 자기만의 이미지로 완성도 높은 한폭의 그림같은 작품을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라며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을 나타냈다. 

 

'묵향'은 12월 14일(목)부터 17일(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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