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이용선 기자] 지난 6월 미국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본선 연주 당시부터 한국을 넘어 전 세계 음악계에 돌풍을 일으킨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이 광주시립교황악단과 함께 유니버셜뮤직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을 통해 '베토벤, 윤이상, 바버' 앨범을 28일 발매하며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임윤찬은 2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해 몸포우 '정원의 소녀들 (Mompou: S'cemnes d'enfants : No.5 Jeunes filles au jardin)연주를 시작으로 포토타임을 가지고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새 앨범과 앞으로 있을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이번 '베토벤, 윤이상, 바버'는 공연 실황 앨범으로 지난 10월 8일(토) 경남 통영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광주시향과 함께 선보인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윤이상 '광주여 영원히', 바버 '현을 위한 아다지오' 곡들과 함께 앙코르로 연주한 몸포우 '정원의 소녀들', 스크리아빈 '2개의 시곡' 중 1번, 음악 수첩 등 3곡이 포함되었다.
간담회에 참석한 광주시립교향악단 홍석원 상임지휘자는 이번 앨범에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가 포함된 것은 큰 의미가 있음을 이야기 했다. 그는 "'광주여 영원히'는 5.18 사태를 표현한 곡이다. 1부에서는 묘사, 2부에서는 슬픔, 3부에서는 자유를 위한투쟁을 표현한다"고 소개하며, "감히말하자면 광주시향보다 이 곡을 더 잘할 수 있는 악단은 없다고 생각한다. 광주시향만의 느낌이 깊고, 또 통영에서 연주됐다는 것의 의미 엿기 크다고 생각한다. 영광스럽고 뜻깊은 작업이었다"고 전했다.
특별히 우승 후 첫 DG 레코딩 레퍼토리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임윤찬은 "이전에는 베토벤 협주곡 '황제'에 대한 애정이 생기지 않았어요. 어릴적부터 너무 많이 들어 화려하기만 하게 느껴졌기 때문인데 그러다 최근 인류에게 코로나라는 큰 시련이 닥치고 저도 매일 방에서만 연습하면서 이 '황제'를 다시 들었을때 그냥 자유롭고 화려한 곡이 아닌 베토벤이 그토록 원했던 유토피아와 자유, 넘치는 기쁨이 느껴졌습니다. 그 기운을 청중에게 전해주고 싶어서 고르게 되었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앨범 취입은 지난해(2021년) 광주시립교향악단 송년음악회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함게 연주하며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당시 임윤찬의 연주에 반한 홍석원 지휘자는 이듬해 함께 작업을 요청하였고, 이번 실황 앨범이 탄생하게 되었다.
홍석원 지휘자는 "지난해 윤이상 선생의 '광주여 영원히' 음반 작업을 준비하던 중 송년음악회를 함께 한 임윤찬에게 연습 중에 반해 고민 없이 바로 협연 참여를 제안했다. 지난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 10대 청년의 질풍노도 같은 에너지 강한 연주였다면 이번 베토벤 협주곡 5번 연주는 2악장이 특히 애절한, 완전히 다른 색깔의 연주였다"고 말했다. 이어 "앨범에 담긴 지난달 8일의 연주와 앞서 같은 프로그램으로 열린 지난달 6일 광주시향 정기연주회의 색채도 완전히 달랐다. 계속 연주 스타일이 바뀌는데 모두 설득력이 있어 천재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번 앨범은 스튜디오 녹음이 아닌 실황 녹음으로 이뤄졌다. 홍석원 지휘자는 "라이브 연주는 관객과의 소통이다. 스튜디오에서 따로 하는 것보다는 현장의 분위기까지 담길 수 있는 녹음이 훨씬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약간의 실수까지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게 실황 녹음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고 그 배경을 전했다.
임윤찬은 "내가 존경하는 음악가들의 특징은 스튜디오 녹음보다 라이브 앨범이 훨씬 더 좋다는 점과 그로 인해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자칫 완벽하게 해야 하는 압박때문에 누가 치는지 모를 정도로 무난한 연주가 나올 가능성이 높은 스튜디오 녹음이 아닌 관객들과 함께 나눈 시간을 담은 실황 음반으로 나온 게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만족한 공연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임윤찬은 이 말의 진의에 대해 "저뿐만 아니라 존경하는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느끼실텐데 그 말의 의미는 말그대로 정말 제가 만족할만한 공연이 없었다. 사석이든 부모님 앞에서 하던 단 한번도 만족한 적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임윤찬은 다음달 10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피아노 독주회를 연다.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우승을 기념하는 리사이틀이다. 지난 6월 콩쿠르 때 연주했던 곡들은 하나도 없다. "콩쿠르 때 연주했던 곡들을 연주해줬으면 좋겠다는 제안이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걸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콩쿠르 때 친 곡을 다시 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리사이틀에서 작곡가 올랜도 기번스의 '솔즈베리경-파반 & 가야르드'를 연주하는데, 글렌 굴드가 존경하고 자주 연주했던 작곡가다. 두 번째 연주할 곡이 바흐의 '인벤션과 신포니아 중 15개의 3성 신포니아'(BWV 787~801). 1번부터 차례로 연주하지 않고 글렌 굴드가 잘츠부르크 축제에서 선보인 연주 순서를 그대로 따른다. 이어 프란츠 리스트의 '두 개의 전설'과 '단테를 읽고: 소나타풍의 환상곡'을 연주한다.
임윤찬은 "올랜드 기번스는 많이 연주되지 않았던 곡이지만 가장 좋아하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작곡가 중 한 명이다. 또 사람들이 잘 연주하지 않는 보석 같은 곡을 연주하고 싶었다.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상상으로만 할 수 있는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표현하기에는 프란츠 리스트만한 작곡가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프로그램 구성에 대해 설명했다.
임윤찬은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우승 직후 '대단한 업적이 아니다' 라고 말해 화제를 모았다. 이날 임윤찬은 "우승으로 인한 관심은 3개월이다. 대단한 업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이유이다. 물질적인 나눔도 의미가 있지만 음악을 기부하는 것은 듣는 이들이 알지 몰랐던 또 다른 우주를 열어주는 일이고 돈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콩쿠르에 나가 운좋게 우승한 것이 대단한 업적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이나 모차르트 소나타 협주곡 전곡 등을 연주하는 게 피아니스트로서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음악가로서 근본이 되는 일은 관객의 티켓값으로 후원을 한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보육원이나 호스피스 병동 등 음악을 듣지 못하는 사정에 놓인 사람들에게 찾아가 연주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고 본다"면서 "이런 게 더 대단한 업적이고 음악가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손민수 선생님의 가르침이 있었다. 그런 걸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인 임윤찬은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우승 이후 휴학을 하고서 연주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 임윤찬의 스승인 피아니스트 손민수(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내년 미국의 명문 음대인 뉴잉글랜드음악원의 교수진으로 합류하기에 임윤찬의 해외 유학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린다. 임윤찬이 평소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손민수 교수를 꼽아왔었다.
해외 유학 계획이 있냐는 질문에 임윤찬은 "제가 당장 내일이라도 죽거나 다쳐서 피아노를 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섣불리 계획을 얘기했다가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 있기때문에 아직 답하기는 어렵다"며 조심스레 답했다.
임윤찬은 내달에는 잇따라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우승 기념 리사이틀을 연다. 12월 6일과 8일엔 각각 통영국제음악당과 대전 카이스트 대강당에서, 10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