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세상은 지금 몇 시?'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사진 한 장을 타임머신 삼아 과거의 순간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당신은 언제로 돌아가고 싶은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MMCA 사진 소장품전: 당신의 세상은 지금 몇 시?»는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MMCA 사진 소장품전: 당신의 세상은 지금 몇 시?»를 2024년 3월 27일부터 2024년 8월 4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사진 1,300여 점 중 국내·외 사진작가 34인의 사진 200여 점을 선별한 전시이다. 1950년대를 관통하여 2000년대로 이어지는 시기의 풍경 사진을 통해 도시, 일상, 역사적·사회적 사건 등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이면을 한자리에서 조망하는 것이다.

전시는 도시와 일상, 그리고 이에 영향을 준 역사적·사회적 풍경을 주제로 하여 총 3부로 구성됐다. 1부 눈앞에 다가온 도시에서는 한국 고유의 근대화 흔적이 담긴 ‘도시’의 풍경을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195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제작된 작품들을 통해 현재와는 다른 도시의 모습들, 개인의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던 도시 풍경의 입체감과 부피감을 조망한다. 2부 흐르는 시간에서 이미지를 건져 올리는 법에서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개인의 ‘일상’에 주목한다. 특히 일상을 구성하는 다양한 장소와 일상용품 등을 근경에서 바라봄으로써 시대에 따른 개인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유추한다. 3부 당신의 세상은 지금 몇 시?에서는 도시와 일상이 형성되는 방식에 영향을 준 사회·정치적 사건들이 다양한 형태로 개인 삶의 지형을 변화시키는 것에 주목했다.

김희중, ‹명동성당›(1956(2006 인화))
김희중, ‹명동성당›(1956(2006 인화))

 

김희중(1940~2019)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편집팀장을 지낸 최초의 동양인 사진가였다. 그의 작업에는 한국전쟁 이후의 도시 공간과 함께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당시 상황을 사실적으로 포착하면서도 대상을 향한 자신의 고유한 시선을 유지함으로써 형식적인 완결성을 이루었다. 이러한 그의 작업 특징은 옛 이화여대 동대문병원 부근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한옥마을(기와집)›과 언덕 아래에서 성당을 향하는 구도로, 수녀의 뒷모습을 담아낸 ‹명동성당›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작가는 다양한 구도로 대상을 보여주며 우리가 알고 있는 장소를 재인식하게 하는 방식으로 공간에 새로운 깊이감을 부여한다.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아이스께끼 파티›, ‹책방›, ‹기다리는 사람들›은 상업과 생활이 맞물린 서울의 명동 인근에서 촬영한 작업이다. 작품 속 인물의 차림새, 표정 등을 통해 전후 사람들의 삶에 서구 문화가 뒤섞인 채 유입되는 혼란한 상황을 발견할 수 있으며, 이를 극복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젤라틴실버프린트로 작품을 출력해, 작지만 선명한 흑백의 명암으로 1950년대 당시의 시대상을 생생히 기록했다. 그의 작업에서는 리얼리즘과 회화주의 (pictorial photography)가 교차하는 등 당대 우리나라의 사진 형식에 대해서도 많은 연구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홍순태, ‹청계천, 1968›(1968)
홍순태, ‹청계천, 1968›(1968)

 

홍순태(1934~2016)는 10년간 산업화의 중심에 있던 청계천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기록했다. 청계천은 조선 시대부터 도시의 역사를 상징하는 오래된 장소였다. 그의 사진은 청계천의 복개 공사와 고가도로 건설과 같은 도시 개발 과정을 기록한다. 청계천이라는 우리 역사의 상징적인 장소를 기록함으로써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형성 과정을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청계천, 1968›은 청계천 판자촌에 살던 어린이나 인물의 모습을 통해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삶의 모습을 포착한다. 이처럼 홍순태의 사진은 시대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집단의 이야기이다. 사진 속 청계천 거리의 움막집과 판자촌은 물론, 한국전쟁 이후의 시대를 상징했던 건축물도 도시 정비 이후로는 볼 수 없는 과거의 모습이다. 작가는 재개발과 도시 정비에 떠밀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시민의 일상을 기록함으로써 산업화의 이면을 함께 드러낸다.

전미숙, ‹기억의 풍경-경북 고성›(1994)
전미숙, ‹기억의 풍경-경북 고성›(1994)

 

전미숙(1965~)은 일상적인 낙서와 그림, 물건을 통해 바라본 우리 문화의 변화 양상과 시대상에 주목하며 1990년대 대도시 주변부, 도시와 농촌의 접경 지역, 도시인을 위한 휴양지 등을 촬영했다. 작가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시간에 떠밀려 사람들이 선뜻 들여다보지 않는 일상 속 빛바랜 대상을 기록했다. 전통적인 것과 외래문화가 뒤섞여 다소 혼란스럽고 촌스러운 공간은 한 시대가 양산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문화 비평적 기록물’이라 칭한다. 전미숙은 경제 성장, 대중문화의 발전 등 화려한 수식 뒤로 밀려난 도시와 농촌의 경계, 휴양지의 모습을 통해 1990년대 시대상을 보여준다. 벽에서 천장으로 비스듬히 붙여진 1960년대 스크린의 우상, 알랭 들롱(Alain Delon)의 사진은 세탁소의 분위기와 상반되지만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기억의 풍경-경북 고성›은 고성의 오래된 세탁소를 촬영한 작업이다. 세탁소 내부는 세탁물과 수선물, 재봉틀이 빼곡히 놓여 있는 어수선한 모습이다.

오노 다다시, ‹2012 후쿠시마현 소마 제방-2011.3.11. 이후 247일부터 341일까지 시리즈›(2012)
오노 다다시, ‹2012 후쿠시마현 소마 제방-2011.3.11. 이후 247일부터 341일까지 시리즈›(2012)

 

오노 다다시(1960~)는 일본을 대표하는 사진작가로, 주로 다큐멘터리 사진 작업을 해왔다. 이 작업은 ‹2011. 3. 11. 이후 247일부터 341일까지 시리즈›에 속한다. 제목의 2011년 3월 11일은 일본 대지진이 있었던 날로, 작가는 8개월 동안 일본의 파괴된 해안선을 걸으며 이 시리즈를 시작했다. 그는 쓰나미로 폐허가 된 토호쿠 지역의 가옥과 풍경들을 사진에 담아 원자력과 자연의 불가항력적 연결고리를 스트레이트 포토 방식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다큐멘터리 사진 안에서 사실을 이야기하면서도 자신의 해석과 사적인 감수성을 전달하고자 한다. 오노 다다시의 사진 속 풍경은 모두 실존하는 현실 속 장소지만, 작품 속에서는 일상과 일탈이 공존하는 가공의 공간으로 묘사된다. 대지진 이후 10여 년이 흐른 현재, 변해버린 풍경과 현실에 대한 다양한 견해 또한 쌓이고 있다.


«MMCA 사진 소장품전: 당신의 세상은 지금 몇 시?»는 그간 자주 볼 수 없었던 사진 소장품을 10년 만에 선보이는 전시이기도 하다. 한국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풍경 사진의 다양한 흐름을 소개하고, 동시대 사진과 관련된 사회적, 미술사적 논의를 촉진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 속 풍경 사진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발견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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