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주의자의 미학 Ⅰ

르네상스 미학은 크게 조형예술가의 미학과 인문주의자의 미학으로 나눌 수 있다. 인문주의자의 미학은 조형예술가의 미학과는 다른 방법으로 예술미의 성립에 큰 공헌을 했다. 
조형예술가가 시각적인 관철로 현실을 현상의 자기고지(自己告知)라고 해석하는 것을 손의 도움을 빌려 형성으로 발전하려는 류형(類型)이라고 한다면, 인문주의자는 보는 것을 봉사적 기능이라고 해석하고, 읽어서 생각하는 것, 말을 귀로 듣는 것을 내적 경험을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류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문주의자의 미학 Ⅰ
인문주의자의 미학 Ⅰ

 

물론 실제로 얼마간은 양자를 혼합체로서 찾아내지지만, 인문주의자는 키케로(Cicero)를 모범적 인물로 숭배하고 순수하게 인식적인 소질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인문주의자의 지식은 엄밀히 학구적 지식이라고 하기 보다는 신앙을 지반으로 하는 인생에 관한 영지(英智)이다. 인문주의자는 조형예술가와는 달리 고대나 중세와의 연속성을 강하게 자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대개 문헌학자이며 수사학자이며, 시인도 있었다. 

그들은 인간의 인간적인 것을, 그리고 문화 전체를 언어의 세계에서 탐구하려고 했다. 인문주의자의 미적 사상은 고대·중세의 플라톤·신플라톤적 사상의 범위 내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미는 조형예술과는 결부되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으로서의 존엄이 중심문제가 되었다. 이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시킨 새로운 인간상이 고대·중세와는 다른 것으로써 예술미의 성립에 커다란 기여를 한 것이다. 여기에서 페트라르카와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사상적 특색을 요약한다.

   페트라르카(Francesco Petrarca)는 새로운 시대에 자신이 귀속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에 충실했다. 그리고 모든 사물의 창조자로 신을 믿고 있었다. 단지 인간의 자유로운 자립성을 존중하려고 했다. 또한 그리스·로마의 고전문학으로 돌아가 이상상(理想像)의 재흥(再興)을, 그리고 자연 및 인간의 자연적 측면에서의 의의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의 존엄문제에 대해 고대·중세에서는 언제나 신을 개입하여 규정하려고 했다. 예를 들면, 프로메테우스 신화에서의 인간은 기예(技藝)의 발명자로서 칭찬되고, 성서에서는 인간은 신을 닮은 모습으로 보증되고 있었다. 여기에서 페트라르카는 자연스러운 세속적 인간의 본성이 문제로 여겨지고 인간성은 무매개성에 있어서 신의 중개적 관여를 거부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인간은 자연의 가장 기묘한 형성물이며 모든 피조물 중 최선의, 동시에 최악의 피조물이다’. 

   인간이 비참한 것은 죄에 의한 것이어서, 죄는 자유 의지에 의한 행위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 비참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완전히 인식하고 다시 일어서기 위한 완전한 욕구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F·Petrarca, Secretum, Prose, 1955, p.28, 196 사토미쓰오 『르네상스에 있어서의 인간의 존엄』 (有信堂, 1981년)〉
   페트라르카는 이 욕구를 명예와 명성을 얻으려는 욕구라고 생각했다.

   ‘인간적 명예로 나는 충분하다. 그것이야말로 나는 동경하는 것이다. 나는 신이 되어 영원 하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F·Petrarca, Secretum, Prose, 1955, p.28 196 사토미쓰오 전게서 93쪽)
   페트리르카는 이 명예를 요구하는 욕구는 창조주에의 사랑과 영원한 영광에 미치지 못할지라도 고귀하고 위대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성인(聖人)보다도 시인을 선택했다. 시인이 시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명예이며 영생불사를 목표로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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