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인의 미학산책] 조형예술가의 미학 Ⅵ
요컨대 알베르티나 레오나르도에 있어서는 창조적 시각에 뿌리 내리는 예술미야말로 최고이며 이외(외적 자연이나 이데아)에는 어떠한 참된 미도 존재하지 않았다. 플라톤(Platon)으로부터 에리우게나(Eriugena)까지 아무도 가시적인 예술형성물을 근원적인 현상이며 완성된 미라고는 규정하지 않았다. 고대 미학은 인간미를 미의 원상(原像)으로 간주하려고 했고, 중세미학은 예지적 미와 신의 피조물로서의 자연의 미를 절대화했다. 이것에 대해 르네상스는 최고의 예술미를 처음 찾아냈으며, 예술미의 발견과 그 이론화는 이 시대 특유의 정신적 태도로 뿌리내리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알베르티는 주로 『건축론』에 있어서 상술의 입장과 다른 조형예술이론을 전개하지는 않았다. 이 이론은 조형예술이 인간의 문화적 생존에 있어서 불가결한 수단이라는 중심명제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학적 또는 문화사적인 시점부터 예술이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측면을 강조하면 알베르티는 19세기 중엽 브루크하르트에서 볼 수 있는 근대예술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알베르티에 의하면 건축은 ‘신이나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공동체 안에서 생활을 영위하는데도 불가결한 하나의 활동’이다. 건강의 증진, 위엄과 쾌적하게 생활을 보내는 것, 명성과 저명한 가계의 성취, 이것들의 기본적인 목적을 위하여 건축은 만들어진다. ‘무엇인가 어떤 고유의 목적을 노리는 듯한, 또는 그것이 관찰되지 않는 것 같은 예술은 하나도 찾아내지지 않는다.’〈알베르티 『건축론』서문, 「중앙공론미술출판,1982」5, 111항.〉
건축은 각종 예술 중에서도 제1급의 위엄을, 인간의 존엄을 보인다. 건축의 기본적인 구성요소는 바닥·지붕·벽 울타리이다. 이것들은 정말로 인간이 생을 영위하는데도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실제로 다양한 건축형태의 발생·전개는 이것들의 구성 요소의 편성ㆍ풍토ㆍ소재·기술ㆍ사용목적 등의 차이에 의해 설명된다. 사용 목적별로 보면, 건축은 공사(公私), 성속(聖俗), 일시적인 즐거움을 위한 건축, 도시계획 등으로 분류된다. 알베르티는 인간의 존엄이 눈으로 보이는 구체적인 형성물로서 도시 전체를 예술작품으로 바라보려고 했다.
알베르티의 말과 같이 조형작품은 원래 인간의 생활에 공동체의 형성과 밀접하게 관계되는 불가결한 수단이었다. 조형예술은 언어나 종교와 함께 문화의 하나의 분기(分岐)를 형성한다. 사람들은 조형예술과 매일 접하고 있다. 조형작품은 완성된 시각현상으로서도 파악된다. 그러나 그것은 원래 사람이 만든 것이며 결코 목적없이 현상하지 않는다. 작품은 목적을 갖고 만들어져 다양한 기능을 하며 포괄적인 문화의 모든 관련에 갖추어진다. 예술작품은 주문자ㆍ제작자ㆍ향수자라는 사회적 연관도 형성한다. 알베르티의 이러한 예술에의 어프로치(approach)는 역시 예술을 단지 장인적 기술의 범위 내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중세적 사고로부터 탈출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술이론은 19세기 중반 이후의 브루크하르트, 그리고 슐로서(J·V·Schlosser)의 근대 문화사적 예술이론의 선구적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된다. 알베르티에 있어서 조형예술과 형이상학적인 미나 심리학적인 의미에서의 미적인 것은 결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확실히 조형예술은 동시에 미를 목표로 하지만, 그 미는 작품이 완성된 시각현상을 의미했다. 조형예술은 이러한 현상으로서의 미와 양립할 수 있고, 그렇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건축은 모든 자연현상보다 아름답게 하면서 그렇게 함으로써 존엄ㆍ쾌적ㆍ장엄과 같은 것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알베르티의 문화사적인 예술개념은 플라톤, 플로티노스(Plotinos) 혹은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의 미의 개념과는 직접 결부되지 않는다. 이같은 미의 개념은 지극히 드문 현상이며, 그것은 원래 비일상적이어서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회화론』이 당시 피렌체를 지배하고 있었던 국제 고딕양식에 대항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건축론』은 고딕의 낭만적 세계에서 중히 여겨지고 있었던 형이상학적이지만 상징으로서의 건축에 대항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