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형예술가의 미학 Ⅴ
원근법에 의한 자연의 선택적 모방으로서의 회화의 정의나, 일치로서의 미의 생각도 완성된 작품현상으로서의 미의 생각에 수렴(收斂)하게 할 수 있다. 그의 독창성은 완성된 시각현상이 최고의 미이며, 독자적인 정신적 가치를 가지는 것, 그리고 원근법의 자연모방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 것에 있다.
‘작품이 완성된 시각현상’의 미를 알베르티에 의하면 자연현상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연현상은 매혹적이긴 해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멸성(滅性)의 미는 지나간다. 그러나 예술의 미는 그렇지 않다.’(레오나르도).
부동성을 첨가해 제거하기가 불가능한 것이 시각현상의 완성의 본질을 나타내고 있어서 예술미를 결정짓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레오나르도는 자연의 순화된 현상을 예술미라고 생각했다. 순화되어 완성된 현상은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에 의해 처음으로 초래된다. 예술은 자연을 완성한다. 인간 및 자연의 미는 예술미를 통해서 완전히 아름답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뵐플린(Heinrich Wö?lfflin)적으로 말하면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예술은 법칙성을 통해서 상대적인 자연미로부터 구별되는 것이다.〈『회화론』67항〉
작품이 완성된 현상으로서의 예술미는 시각에 의해 고유한 의미와 기능을 찾아내는 새로운 정신에 의해 가능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알베르티나 레오나르도와 같은 조형예술가는 ‘현실의 무한히 다양한 현상에 놀라지만 더 이상 경탄할만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현상의 몰폴로지(morphology)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시각현상은 숙고할 가치가 있는 것, 뛰어난 연구대상임과 동시에 행복하게 연결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독력(獨力)으로 실험하며 반성했다. 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조각도나 붓끝과 연필 등으로 직접 확인했다. 말하자면, 눈과 손의 공동작업에 의한 기초적 성과로서의 소묘(disegno)을 중시했다. 소묘는 보여진 것의 뉘앙스(nuance)를 뛰어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묘에 있어서의 시각은 일상적 시각과 순수지각이나 게슈탈트(Gestalt) 지각과도 다른 ‘창조적 시각 또는 직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알베르티는 이러한 직관을 처음으로 알아차린 사람이며 이 점이 유럽의 정신사에 있어서의 ‘눈의 사람들’이라고 말해야 할 흐름의 선구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뒤를 레오나르도, 괴테(Goethe), 피들러, 세잔, 뵐플린, 포시온, 메를로 퐁티(Merleau-Ponty)와 같은 사람들이 뒤따랐다.〈Vgl. Perpeet, Das Kunstchö?ne, S. 226ff,, 237ff.〉 이들은 반 플라토니카(plató?nico), 혹은 현상의 연구자로서의 특색을 갖는다. 이들은 눈에 분명하게 보이는 것을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시각현상이야말로 현실과 가장 확실한 접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고, 현상에 입각한 경험과 지식을 사랑했다.
현상에의 시각적 귀의(歸依)에 찬 지식의 형식을 기뻐한다. 대부분은 눈과 손이 공동으로 시각의 깊은 의미를 개시하는 연결이라고 시사했다. 괴테는 현상의 배후에 어떠한 것도 요구하지 않는 현상이 현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한 시각을 일종의 촉감지식으로 간주하고 ‘보는 손’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 했다. 포시온도 ‘손의 찬상’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에 의하면 움직이는 손은 시각의 진술을 촉진하여 소묘는 철저하게 보는 것의 필연적 발전으로 생기는 것이다. ‘세계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촉각적인 헤아림이 필요하다’. 피들러도 ‘시각상의 성립에 즈음해 눈만이 활동하는 것이 아니다. 감각 기관끼리 서로 조합한다. 촉각은 올바른 시각표상이라고 명명하는 것에 있어서 불가결한 것 같이 보인다’라고 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