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사진위주 전시관 갤러리 류가헌에서는 2024년 1월 2일(화) ~ 14일(일)까지 윤성회 사진전 '그 골목'이 전시될 예정이다.

윤성회의 사진 시리즈 <그 골목>. 무대는 한 골목이다. 회색 철제 울타리가 단출한 무대 장치로 길게 둘러쳐져 있고, 가로등을 밝힌 전신주 두 개가 좌우에서 조명처럼 골목을 비추고 있다. 검은 하늘 아래 불을 밝힌 고층아파트들은, 무대의 공간적 배경이 도시라는 것과 시간적 배경이 밤임을 알려주는 배경막이다. 

윤성회 사진전 '그 골목'
윤성회 사진전 '그 골목'

 

 그 앞에 인물들이 등장한다. 빨간색 점퍼를 입은 노인, 휴대폰을 보며 걷는 여성, 배낭을 맨 어린이 둘. 등장인물들 사이로 어떤 날은 푸드트럭이 끼어들기도 하고, 노란색 통학차가 무대를 가득 메우기도 한다. 

 <그 골목>의 시작부터 끝까지, 어느 사진에도 같은 시간 ‘그 골목’에 있었던 또 한 사람의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세 아이를 가진 주부. 대학 재학시절 사진을 시작했지만, 일과 육아로 ‘작업으로서의 사진’에 마음 쓸 겨를이 없었던 사람이다. 세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야 다시 사진기를 들었으나 여전히 ‘사진가’라는 호칭보다 ‘엄마’라는 호칭으로 더 자주 불리는. 이제는, 삼수를 하는 딸을 위해 학원 앞에 차를 세우고 기다리는 여성이다. 

 그녀는 아이를 기다리며 생각한다.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참 많은 기다림의 순간들을 보내야 하는구나’. 그 골목의 사람들은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 있지만, 각자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차창 밖을 바라보며, 이제는 딸과도 서로가 있어야 할 장소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자신만의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윤성회 사진전 '그 골목'
윤성회 사진전 '그 골목'

 

 그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아이를 위한 시간이었는데 어느새 자신의 시간이 되어버린 그 5분이 사진 속에서 차곡차곡 쌓여갔다. 우리의 매일매일이 그러하듯, 언뜻 보면 똑같아 보이지만 다 다른 사진들이다. 

 전시서문을 쓴 사진가 강홍구는 이렇게 말한다. 
“윤성회의 사진이 흥미 있는 것은 사진이 가진 연극성을 통해 우리의 삶도 연극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 아무것도 연출 된 것은 없지만 그 어떤 연출된 장면들보다 사실들을 무심하게 끌어모아 현실을 환기시킨다.” 

 사진가 윤성회는 이제 사진으로 현실을 환기시키는 작업을 이어간다. 여성의 시각에서 자신의 일상을 담은 이미지를 통해 우리 사회의 주부, 여성의 정체성을 고민한다. 주변 여성의 삶을 기록하는 것으로까지 작업의 확장을 모색 중이다. 

윤성회 사진전 '그 골목'
윤성회 사진전 '그 골목'

 

작가노트-
그 해, 삼수를 시작한 큰딸을 학원을 마치는 시간에 데리러 갔다. 고3, 재수를 거쳐 삼수생의 엄마가 되었는데, 그것밖에 해줄 것이 없었다. 

 올해, 막내가 대학 입시를 준비한다. 막내도 학원에 다니는데, 역시나 학원을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또 가끔은 마치길 기다린다. 그러다 큰아이를 기다리던 그 골목, 그 시간이 생각났다. 

 그 골목은 딸이 마치는 시간보다 일찍 가게 되면 학원 앞으로 가기 전 5분 정도 차를 세웠던곳이다. 그곳에서 아이를 기다리다,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참 많은 기다림의 순간들을 보내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임신해서 아이가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하며 태어나길 기다렸고, 처음으로 뒤집기를, 엄마라고 불러주길, 첫걸음마를 디디길… 참 많은 순간들마다 아이만 바라보며 기다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 골목에서 차창 밖을 내다보던 어느 순간, 이제는 서로가 있어야 할 장소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자신만의 기다림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성회 사진전 '그 골목'
윤성회 사진전 '그 골목'

 

 차창 밖 골목에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어딘가로 바쁘게 앞만 보며 걷는 사람, 학원을 마친 듯한 학생들, 한 우산을 나눠 쓴 연인이 지나갔다. 그 사람들과 나는 같은 시각, 같은 골목에 있었지만, 모두 각자의 시간을 다르게 보내고 있었다. 때로는 내 주변의 공기가 마치 시간이 잠시 멈춰진 것처럼 나를 감쌀 때도 있었다. 그런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아이를 위한 기다림의 5분은, 어느새 나만의 시간이 되어 사진 속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아이를 태우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딸을 기다리며 사진을 찍었다고 하니, 아이는 나를 ‘5분 사진가’라고 불렀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에게 필요했던 시간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고, 함께 공감하고 서로를 응원했다. 

 그 골목의 5분이 차근차근 쌓인 1년이 지나, 다행히 큰애는 대학에 들어갔다. 또 그다음 해 둘째가 대학에 들어갔고, 올해는 드디어 막내 차례가 왔다. 대한민국에서 ‘학부모’란 이름의 졸업은 아마도 아이의 대학입시가 끝날 때가 아닐까? 아이들이 자신만의 시간을 각자 잘 보내길 바라며, 난 그저 내 자리에서 입시의 끝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래도 대학 입시라는 한 가지 기다림은 어쩌면 올해가 마지막이 될 수 있겠다는, 불안하지만 설레는 기대는 가져본다. 

 막내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동안, 난 이 전시를 위한 나만의 시간을 매일 조금씩 보내고 있다. 그 해 5분 사진가였던 나는, 올해는 어떤 사진가로 불릴 수 있을까? 앞으로 나 자신을 위해 맞이하고 보내야 할 시간은 어떻게 차곡차곡 쌓여갈까? 이 전시를 통해 기다림의 시간으로 남겨진 그 골목을 기억하며, 앞으로 다가올 기다림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싶다. 

2023년 11월

윤성회 사진전 '그 골목'
윤성회 사진전 '그 골목'

 

윤성회 尹盛會 Yoon Seong Hwae 

부산 출생, 서울, 타이베이 거주 후, 2005년부터 현재까지 부산, 해운대에 거주하고 있다.

1991년 연세대학교 의생활학과 입학, 대학 사진동아리 ‘연영회’에 가입하여 사진을 시작했다. 1991년 겨울 태백 탄광촌을 촬영한 ‘연영 26기 신인전: 탄을 캐며, 삶을 캐며’로 처음으로 사진단체전에 참여했다.

1995년 졸업 후, 패션디자이너, 패션머천다이저로 근무했고, 1998년 결혼 후 현재까지 주부로 지내고 있다. 2013년 DSLR 카메라 구매 후 다시 사진을 시작하며, 사진 관련 워크 숍, 사진아카데미 수강, 그리고 다수의 국내외 단체전 참여와 잡지기고, 호텔 홍보사진 촬영 등의 사진 관련 활동을 했다.

세 아이를 가진 주부, 여성의 시각에서 자신의 일상을 담은 이 미지를 통해 현재 한국 사회의 주부, 여성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고민하고 있으며, 또한 주변 여성의 삶을 기록하는 것으로 작업의 확장을 모색 중이다.

한편으로는 고향인 부산, 특히 현재 거주하고 있는 해운대와 마린시티를 촬영하며 부산만의 도시 특성을 개인적인 시각으로 탐구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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