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느낀 마음의 희열에는 엄숙, 풍려, 신비, 평화, 조화가 -

선과 색채의 융합으로 이루어지는 시간성 예술
현장에서 느낀 마음의 희열에는 엄숙, 풍려, 신비, 평화, 조화가 -

朴明仁(미술평론가·한국미학연구소 대표)

   자연의 정경(情景)에는 누구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미적 요소가 있다. 이것을 느끼는 것은 내적 심미작용이고 미술로 완성하는 것은 화가로서의 외적 기능의 필연이다. 이러한 자연의 사물은 형상기세로부터 비롯된 정태(情態)가 있고, 미술은 이러한 정상(情狀)을 표현하는 것이므로 느낀다는 것은 형상기세로부터 감지되는 마음의 상태이다. 그러므로 경색이 수려한 산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생활주변의 모든 요소에 아름다움이 있어서 형상시각으로 감각한 제반 조형요소가 상합(相合)하여 조화를 이루게 된다.

朴明仁(미술평론가·한국미학연구소 대표) 이규영 화백 개인전 '수채화를 중심으로'
朴明仁(미술평론가·한국미학연구소 대표) 이규영 화백 개인전 '수채화를 중심으로'

 

   이같은 미학적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는 이규영은 사진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모든 작품이 현장사생으로 이루어진다. 사진으로 그리지 않고 현장에서 그리는 것은 ‘표현하기 전에 느끼는’ 뒬랭의 철학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경치를 바라보다가 하늘을 나는 새의 뒤를 쫓는 것. 멀리서 들리는 종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다가오는 누군가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기분이 좋은 꽃향기를 맡는 것, 아침의 시원한 공기를 마시는 것’모두가 자연으로부터 직접 ‘느끼는’것을 표현의 동인(動因)으로 체험한 후에야 비로소 그리는 것이다.

   이것은 현장에서 느낀 마음에 의한 희열이 엄숙, 풍려, 신비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규영의 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 특성은 사실적 풍경이 아니라 선의 미의 실제화이다. 현대회화에서 현저하게 소묘가 결여되고 있는 현실에 반하여 소묘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실증이고, 또한 ‘선의 미를 모르면 미술이 없다’라는 명시적인 강조성이다. 소묘가 안 되는 그림은 대부분 좋지 않은 자연주의에 빠져 있지만 근대 인상주의에서는 긍정적으로 주장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인상주의는 소묘가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만큼 이규영은 인상주의 회화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사물을 묘사할 때 선을 강조하는 것이고, 그러므로 회화의 사실성과 표현에 있어서의 절대성을 표출하고 있다.

朴明仁(미술평론가·한국미학연구소 대표) 이규영 화백 개인전 '수채화를 중심으로'
朴明仁(미술평론가·한국미학연구소 대표) 이규영 화백 개인전 '수채화를 중심으로'

 

   현장에서의 경험으로 미를 보다 깊이 관찰하여 마음으로 느끼면서 선과 점의 요긴한 부분을 포착하는 것은 색의 농담이나 빛의 물체, 명암의 미, 그리고 선과 점의 교향, 곡선, 직선, 병행, 교차, 난차(亂叉)와 물상의 장식적 미와 정신적 영역을 표현하는데 충분한 여건으로 조성되는 것이다.

   또한 색을 사용할 때 추상적이거나 피상적인 색은 사용하지 않는다. 빨간 것 또는 파란 것이라고 하면 객관적으로 물질의 형태를 말하는 것이지만, 빨강이나 파랑이라고 하면 심리적인 표현이다. 따라서 물질 형태의 가시적인 표현은 객관적이지만 심리적 표현은 무제한적이며 시각적으로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선을 중심으로 질감의 미를 추구하는 풍경화에서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므로 가시권 영역의 색채를 표현하면서 실질적인 자연환경이나 인간 생활환경에 합치적(合致的)인 표현으로 현묘(玄妙)한 회화로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朴明仁(미술평론가·한국미학연구소 대표) 이규영 화백 개인전 '수채화를 중심으로'
朴明仁(미술평론가·한국미학연구소 대표) 이규영 화백 개인전 '수채화를 중심으로'

 

   이규영은 심미의식이 확실하기 때문에 나쁜 색은 채용하지 않는다. 색채 바로 그것을 충분히 살리는 데는 천분(天分)을 필요로 하지만 소묘를 살리기 위해서 충분히 색채를 이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외적 세계와의 접촉으로 비롯된 ‘세계의 소리와 자아의 소리’를 느끼면서 결합된 내면의 미적 형상의 표현이다. ‘자아의 소리’란 잠재적인 과거 경험의 총체로서 현재적인 세계의 소리가 융합하여 인격성으로부터 발하는 표현의욕이며, 구체적 형태를 차지하기 위해서 자연의 소리를 만나는 것은 필수적이다. 이것을 칸딘스키는 소리를 하나의 울림으로 보고 ‘울림은 형태의 혼’이라고 했다.

朴明仁(미술평론가·한국미학연구소 대표) 이규영 화백 개인전 '수채화를 중심으로'
朴明仁(미술평론가·한국미학연구소 대표) 이규영 화백 개인전 '수채화를 중심으로'

 

   인생에 있어서도 예술에 있어서도 중요한 것은 진실이다. 미술에 있어서 자연은 이 사실에 상당한다. 그리고 진실은 아름다움이다. 미술에 있어서 가장 진실한 것이야말로 미 밖에 없다. 미란 형상의 ‘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미술가가 미를 본 기분은 변할 수 없다. 이규영이 자연으로부터 직접 느낌을 받는 이유이다. 이 ‘진’을 자연 외의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다. 그렇지만 원래 자연은 미도 추도 아무것도 아니다. 자연일 뿐이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단지 이규영은 자연에서 미를 찾아낸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규영의 작품도 자연의 하나이다. 자연이야말로 사실을 살려내는 생명력이다.

   이번 전람회의 주제는 ‘수채화를 중심으로’이다. 50여 년 화필을 들고 자연을 벗 삼아 80 노령이 되었지만 15년 전부터 수채화에 매진했다. 그 연유는 수채화 강의를 시작하면서 현장에서 사생하는 데는 수채화 도구가 간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뭇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수채화는 기법이 매우 다양하다. 흔히 유화와 비교해서 한 단계 아래로 보는 경향이 더러는 있지만 사실은 유화보다 더 밀도나 기법이 다양하며, 시간공간의 오묘한 변화가 있고, 색채의 감각을 정서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서예의 일필휘지처럼 빠른 속도와 단번에 처리하지 않으면 퍼지는 현상이 있어서 사물의 형체가 불확실해 진다. 

朴明仁(미술평론가·한국미학연구소 대표) 이규영 화백 개인전 '수채화를 중심으로'
朴明仁(미술평론가·한국미학연구소 대표) 이규영 화백 개인전 '수채화를 중심으로'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이용한 흐리기 기법도 있다. 그러니까 수채화란 9가지 기법이 있어서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형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물과 색채와 시간성으로 결집되어 색감에 의해 일정한 경향이나 맛을 나타낸다. 이러한 색채 감각은 감성적 색채로서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의미를 부여한다. 유화는 선의 감각을 무시해도 되는 경향이 있지만 수채화는 선의 감각을 무시하면 작품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유화는 선을 덮을 수 있지만 수채화는 선을 덮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불투명 수채화법이나 과슈에서는 유화와 마찬가지로 불투명이라는 기법 자체가 선을 덮고 갈 수 있지만 투명화법에서는 불가하다. 투명화법에서는 선과 색채가 동시에 융합되어 시각적으로 표현되어야만 색채의 매력이 심대(甚大)하게 되면서 엄존(嚴存)하게 된다. 그래서 투명수채화법을 으뜸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투명수채화에서 소묘가 매우 중요하다. 사물의 선묘가 시각적으로 도출되기 때문이다. 색채에는 서로 하나 또는 몇인가의 느낌을 암시하는 소질(素質)이 있지만, 그러한 요소도 소묘에 의해 형성되지 않는 한 색채로서의 미에까지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소묘는 그것만으로 이미 그러한 미에 이를 수 있다. 색채는 그 소묘 내용의 성질에 따라서 선택되어 미를 살리게 된다. 이것이 수채화의 특징이다.

   추상의 경우에는 선이 없는 색만으로도 표현하는 경향이 있어서 선이 없는 미술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예술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예술은 인간의 심미의식이 표출되어야 하기 때문이며 비로소 인간의 시각으로 느끼는 정신적 열락(悅樂)으로 무한하다든가 풍부한 아름다움이라든가, 평화라든가 신비라고 하는 것이 존재해야 한다.

朴明仁(미술평론가·한국미학연구소 대표) 이규영 화백 개인전 '수채화를 중심으로'
朴明仁(미술평론가·한국미학연구소 대표) 이규영 화백 개인전 '수채화를 중심으로'

 

   그동안 한 점 한 점 작품을 보다가 자택을 방문하고 많은 작품을 보면서 폭넓은 작품세계를 보았다. 유화, 수채는 물론 소소한 집기까지 모두 유화 또는 아크릴릭으로 그려져 있어서 한눈에 이규영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에는 분명한 형체미가 있었고, 형체가 없으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메시지이고, 미적 효과나 단일함은 정신적 감명을 주는 현장이었다. 이것은 미술로서 자연의 미를 체험한 이규영의 심미의식을 실질적으로 보여 주는 일례였다. 또한 미술로서 선과 색의 묘미를 표출한 미술의 심오함에 이르는 기연(機緣)을 전파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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