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헬싱키 미술관Helsinki Art Museum은 2023년 11월 24일부터 2024년 4월 7일까지 작가의 핀란드 첫 개인전인 《양혜규: 지속 재연Haegue Yang: Continuous Reenactments》을 개최한다. 《지속 재연》은 지난 9월 벨기에 겐트 현대미술관S.M.A.K.에서 막을 내린 《양혜규: 몇몇 재연Several Reenactments》의 순회전으로, 특유의 기술적 탁월함이 드러나는 다채로운 조각군을 2개의 구 테니스 홀로 이루어진 대형 전시실에서 보다 큰 규모로 심도 있게 소개한다.

양혜규 작가, 헬싱키 미술관-Helsinki Art Museum '지속 재연' 개인전
양혜규 작가, 헬싱키 미술관-Helsinki Art Museum '지속 재연' 개인전

 

음향적, 퍼포먼스적 요소를 활용해 전시장을 하나의 무대로 탈바꿈함으로써 작가는 반복과 재연의 개념에 대한 탐구를 이어 나간다. 전시 전체에서 작품들은 대칭 및 비대칭의 쌍을 이루는가 하면, 서로 보완적 관계를 이루는 관계적 구조 안에 놓이는 등 작품 자체의 내용이나 주제를 넘어 전시 문맥에서 면면히 강조하는 이중화doubling, 반사mirroring, 반복reiterating의 개념을 고찰한다. 추상과 구상, 가사성domesticity과 공공성 등 상반되어 보이는 개념을 짝짓고 병치함으로써 쉽게 분리될 수 없는 긴밀하고 통합적인 상호 연결된 관계들을 드러낸다.

공통적으로 양혜규 작가의 특징적 소재로 꼽히는, 금속 방울을 주재료로 하고 있는 대형 조각군인 〈손잡이Handles〉(2019)와 〈전사 신자 연인 – 가청화Warrior Believer Lover – Version Sonic〉(2023)는 각각 남쪽 홀과 북쪽 홀을 차지하며 단연 이번 전시의 이중의 축을 이루고 있다. 각각의 대형 전시장은 ‘이브 클랭 청색’과 산화된 토양을 상징하는 색인 ‘산화철 적색’이라는 두 가지 모노크롬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양혜규 작가, 헬싱키 미술관-Helsinki Art Museum '지속 재연' 개인전
양혜규 작가, 헬싱키 미술관-Helsinki Art Museum '지속 재연' 개인전

 

남쪽 홀의 한 벽면은 다양한 지역의 건물 외벽이나 바닥에 흔히 쓰이는 붉은색으로 칠해졌다.  작가가 〈의사擬似-산화철 적색Quasi-Iron Oxide Red〉(2023)으로 명명한 이 색상은 지구 각지의 산화된 토양에서 발견되는 어두운 적색 계열의 전통적 천연 염료를 지칭한다. 현대에 들어서는 대부분 화학적 페인트로 대체된 투스칸 적색, 스패니시 적색, 페르시아만 적색 등의 전통적인 염료는 이 전시에서 의사擬似라는 개념을 빌어 고유함과 가짜를 동시에 대표하는 개념적인 색으로 작가에 의해 호명된다. 지역의 땅을 상징하는 고유하고 특정한 색인 동시에 이와는 반대로 매우 일반적이고generic 현대적인 의미의 익명적인 몰沒특유성을 상징하고 있다.

북쪽 홀의 세 벽면은 프랑스 대작가인 이브 클랭이 특허를 신청하여 잘 알려진 청색을 지칭하면서도 부인하는 방식으로 고안된 문제의 색으로 칠해졌다. 원본 혹은 고유함에 반하는 ‘허위’의 개념을 재현하는 〈의사擬似-이브 클랭 청색Quasi-Yves Klein Blue〉(2023)은 원본과 거의 흡사하지만 결코 원본은 아니라는 의미를 지닌 ‘의사擬似quasi’라는 수식어를 뒷받침하는 다수의 투표를 통해 사회적으로 선택된다. 미술관의 직원들은 주관적이되 민주적인 과정을 통해 해당 지역의 상점에서 얻을 수 있는 색 중에서 이브 클랭 청색과 가장 흡사한 하나의 색을 결정한다.

양혜규 작가, 헬싱키 미술관-Helsinki Art Museum '지속 재연' 개인전
양혜규 작가, 헬싱키 미술관-Helsinki Art Museum '지속 재연' 개인전

 

전시장을 지배하는 적색과 청색, 이 두 가지 모노크롬은 공통적으로 원본성, 독창성, 그리고 주류와 같은 명제에 대한 작가의 의문을 상징하는 동시에, 두 개의 다른 전시장을 색으로 구분하여 표현하는 단순한 시각 장치로 읽히기도 한다. 작가는, 색이 도맡고 있는 기능적인 역할과 오랜 기간 사회적으로 동의한 절대적 가치나 믿음에 대한 의문이라는 또 다른 역할을 이 전시에서 이중적으로 재연하고자 도모한다. 색상의 사용은 개념적이며, 사회적이며, 궁극적으로는 예술적인, 즉 중첩되어 복합적인complex 재연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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