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국립현대미술관과 이응노미술관은 세기의 거장 이응노 탄생 120주년을 맞이해 공동기획, 협력하여 2023년 11월 28일부터 2024년 3월 3일까지 이응노 탄생 120주년 특별전 «이응노, 동쪽에서 부는 바람, 서쪽에서 부는 바람»을 이응노미술관에서 개최하고 있다.

이응노는 스스로 “자신의 작품은 10년마다 변화했다”고 말할 정도로 일생동안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을 추구한 인물이다. 자신이 남긴 말에 걸맞게 그는 한국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로 꼽힌다. 또한 유럽과 아시아, 미국 등 전 세계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국제적인 작가이기도 하다. 폭넓은 활동 반경과 오랜 작품 활동으로 이응노의 전체 모습을 파악하는 것은 여전히 한국미술계가 안고 있는 숙제이다. 이에 전시에서는 작가의 작품과 관련된 스케치·아카이브를 함께 살펴보며 작품에 대한 구체적이고 풍부한 이해를 이끌어낸다. 또한 이응노가 운영했던 프랑스 파리동양미술학교에서 남긴 유산을 소개해, 유럽에서의 오랜 활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양화가로서의 정체성을 간직했던 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다.

이응노, ‹구성›(1970년대 후반)
이응노, ‹구성›(1970년대 후반)

 

국립현대미술관과 이응노미술관은 이렇듯 변화무쌍한 이응노의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기 위해 해외 소재 작품들을 중점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하여 아라리오뮤지엄, 프랑스 국립 퐁피두 센터, 체르누스키 파리 시립 아시아 미술관 등을 비롯한 국내외 유명 미술관과 개인 소장가가 소장해온 작품을 대거 선보이며 ‘기존에 알려지지 않았던 이응노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60여 점의 출품작 중 30여 점이 그동안 국내에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이라는 점, 1958년 유럽 이주를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의 작품을 한 공간에 담았다는 점이 주목할 만 하다. 이응노의 한국적 뿌리와 유럽에서 받은 자극이 어떻게 충돌하고 융합하여 독자적인 작품으로 탄생했는지 감상해보자.

이응노, ‹구성›(1979)
이응노, ‹구성›(1979)

 

‘죽사’라는 호가 알려주듯이 이응노는 1930년대 대나무 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1932년에 제작한 ‹대죽›은 조선총독부가 주관한 «조선미술전람회» 제11회 전시회에서 무감사 입선한 작품이다. 무감사 입선은 이전 전람회에서 상을 받은 작가가 다음 해에는 심사받지 않고 전시를 할 수 있게 혜택을 주는 제도이다. 1924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스승인 김규진 스타일의 대나무 그림으로 처음 입선한 이응노는 이후 계속해서 수상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31년의 어느 봄날 몰아치는 비바람에 술렁거리며 이리저리 쓰러지는 대밭의 모습을 보며 강한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지금까지 스승을 본받아 그리던 천편일률적인 대나무 모습과는 전혀 다른 드라마틱한 움직임을 보며 살아있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느낀 것이다. 이 해에 이응노는 자신만의 색깔을 입힌 대나무 그림 두 점을 출품했고 그 중 ‹청죽›이 특선을 차지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대죽›은 이응노의 개성이 드러나는 대나무 그림이다. 화면 한 가운데를 수직으로 뻗은 대죽을 굵은 붓으로 단번에 내리긋고 양 옆에는 가느다란 줄기를 배치하여 서로 대조를 이루게 한다. 시원하게 뻗은 대죽의 호방함이 강직한 느낌을 잘 표현한다. 1930년대 초반 작품이 많이 남아 있지 않는 상황에서 이응노의 초기 대나무 경향을 보여주는 귀한 예이다.

이응노, ‹군상›(1985)
이응노, ‹군상›(1985)

 

1970년대부터 이응노는 프랑스 국립 태피스트리 제작소, 세브르 국립도자공장 등과 같은 국립기관들과 협력하여 태피스트리, 도자기 등을 제작하였고 이러한 경험은 그가 새로운 회화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되었다. 이응노는 한국에 있을 때도 전주에서 ‘개척사’라는 이름의 간판과 관련된 사업을 했기 때문에 그에게 디자인적인 요소가 낯설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아들 이융세의 증언에 따르면 이 무렵 이응노는 멕시코 등 남아메리카 미술에도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화려한 색채와 기하학적인 형태들이 강렬한 인상을 주는 1970년대 후반의 ‹구성›은 이러한 작가의 변화를 드러낸다. 원색과 평면적인 배경 구성, 굵은 윤곽선으로 둘러싸인 도형들은 수묵화가 이응노의 또 다른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작품 속 세 명의 사람이 하나의 거대한 날개를 지닌 형상은 이응노의 작품에서 ‘가족’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 자신과 부인, 그리고 아들이 함께 등장하는 이 도상은 한자 ‘좋을 호(好)’에서 발전하였다. 원색이 주는 밝고 화사한 느낌이 따뜻함을 훌륭하게 시각화하고 있다.

이응노, ‹대죽›(1932)
이응노, ‹대죽›(1932)

 

1970년대 이응노는 여러 지역의 고대문자를 이용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집트 상형문자, 아프리카 원시 문자, 중국의 고대 갑골문자와 한자, 아랍문자 그리고 한글까지 포함된 전 세계 다양한 문자들이 그의 작품 속에서 서로 결합하고 해체되며 여러 가지 형상으로 재창조되었다. 화면 속 문자들은 문자-기호의 뜻과는 상관없이 순수한 미적 요소로서 존재한다. 물론 간혹 본래의 의미를 그대로 드러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응노 스스로는 이렇듯 문자를 이용한 자신의 작품을 ‘서예적 추상’이라고 불렀다. 1970년대 작품들은 또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재료를 많이 사용하여 제작하였다. 솜, 양털, 융, 부직포, 삼베, 모직 등을 사용하여 작품을 제작하였고 이렇게 제작된 작품들은 마치 벽에 거는 양탄자와 같은 인상을 남겼다. 전시된 ‹구성›은 거친 질감의 바탕 천에 같은 색감의 종이를 뜯어 붙인 후 종이를 꼬아 만든 노끈으로 형상을 만들었다. 바탕색과 종이, 노끈의 색이 어우러지면서 은은한 아름다움을 풍긴다.

1980년대 이응노의 그림 속에는 수많은 인간이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모습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뻗친 사람, 온 몸을 힘껏 열어 젖인 사람, 높이 뛰어오는 사람, 그리고 서로 손을 잡고 달려가는 사람들 등이 나타났다. 하나하나가 모여 어느새 화면을 가득 메우는 거대한 무리를 이룬다.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이들 무리는 마치 파도와도 같은 리듬으로 요동치며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군상›시리즈는 이응노의 마지막 변모이자 백조의 노래처럼 모든 것을 쏟아부은 작품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이 저마다가 속한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를 연상한다는 점이다. 한국사람들은 민주화 운동을 떠올리지만, 유럽사람들은 반핵운동이나 반전(反戰) 시위를 그린 것으로 이해한다. 이제 그의 작품을 보는 사람들은 축제를 연상한다. 사실 이응노가 1980년대 직전까지 그렸던 작품들의 주제가 ‘춤’이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그의 작품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발견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인다. 어느 쪽이든 이응노의 ‹군상›에는 기쁨의 노래가 담겨 있고 보는 이들에게 웅장함을 선사한다.

이응노, 동쪽에서 부는 바람, 서쪽에서 부는 바람» 전시 전경
이응노, 동쪽에서 부는 바람, 서쪽에서 부는 바람» 전시 전경

 

«이응노, 동쪽에서 부는 바람, 서쪽에서 부는 바람»은 이응노의 한국적 뿌리와 유럽에서 받은 자극이 어떻게 충돌하고 융합하여 독자적인 작품으로 탄생하였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이다. 거장 이응노의 작품 세계를 다각도에서 조망하는 전시를 통해 내가 이미 알았던 모습을 더욱 깊이 있게 살피고, 몰랐던 이응노의 면모를 발견하는 시간을 경험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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