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으로의 초대' 화이트 큐브로 초대하는 전유의 자연미술

김성호(Sung-Ho KIM, 미술평론가)

그룹 야투(YATOO, 野投)’의 일원이자, 자연미술가로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고승현의 이번 개인전은 화이트 큐브의 공간에 자리를 잡고 자연과 자연미술에 대한 탐구를 지속한다. 고승현은 이번 개인전에서 ‘자연으로의 초대’라는 전시명을 내세웠다. 그간의 직접적인 ‘자연으로의 초대’로부터 전환하여 서울 도심의 한 갤러리에서 자연미술을 선보이는 간접적인 ‘자연으로의 초대’를 실행한 셈이다. 

'자연으로의 초대' 화이트 큐브로 초대하는 전유의 자연미술
'자연으로의 초대' 화이트 큐브로 초대하는 전유의 자연미술

 

고승현은 이번 전시에서 국내외 자연환경에서 퍼포먼스 및 개념적 설치로 진행했던 이른바 ‘자연미술 현장 작업’과 더불어 자연물과 인공물을 박스 안에 설치한 〈기억의 상자〉 연작, 해양 쓰레기를 소재로 한 설치 작품, 그리고 그만의 독특한 사운드 아트 연작인 〈가야금〉을 선보인다. 자연환경에서 전이한 도심 속 화이트 큐브, 즉 사회 환경 속에서 고승현이 펼치는 자연미술과 자연의 의미는 무엇인가? 고승현의 ‘자연으로의 초대’는 이번 전시에서 ‘인간-미술-자연-사회’의 상호 연결주의에 주목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자연으로의 초대' 화이트 큐브로 초대하는 전유의 자연미술
'자연으로의 초대' 화이트 큐브로 초대하는 전유의 자연미술

 

I. 화이트 큐브 안의 자연
“출입구 이외에는 사방이 막혀 있는 실내 공간”이자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가장 기본적인 공간”인 화이트 큐브는 들로 산으로 바다로 뛰어들면서 작업했던 그의 자연미술을 어떠한 방식으로 품어 안을 수 있을까? 
이번 개인전은 이미 실행했던 ‘자연미술 현장 작업’ 중에서 선별한 몇 작품들과 함께 2023년에 제작된 신작을 대거 선보인다. 이 현장 작업은 예술가 고승현의 이른바 자연에 대한 ‘열기- 잇기- 되기-숨쉬기-전하기’를 유감없이 선보인다. 즉 자연에 빈 몸으로 들어가 ‘자연 열기’를 시도하면서 ‘자연과 인간 잇기’, ‘자연 되기’, ‘자연과 함께 숨쉬기’, ‘자연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하기’와 같은 자연미술의 미학을 실천하는 것이다, 

'자연으로의 초대' 화이트 큐브로 초대하는 전유의 자연미술
'자연으로의 초대' 화이트 큐브로 초대하는 전유의 자연미술

 

특히 2023년에 발표한 신작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해변과 아르헨티나의 자연환경 속에서 실행했던 결과물로 구성된다. 이 신작들에는 모래 언덕 위에 군데군데 점을 찍듯이 예술가의 신체적 흔적을 남기거나 까르핀초 똥 위에 꽃송이를 꽂아 놓는 방식의 ‘무심한 놀이’뿐만 아니라 모래사장 위에 남긴 드로잉이 습기를 잃어가며 말라가는 과정을 관찰, 기록하거나 조개껍질이 만드는 그림자를 지속해서 이어주는 방식의 퍼포먼스를 통해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명상적 수행’이 교차한다. 아울러 버려진 플라스틱 스푼을 흙더미와 만나게 하거나, 시멘트 바닥의 갈라진 틈 속에 풀잎을 꽂는 방식으로 인공과 자연을 만나게 하는 자연미술가의 매개적 실천도 주목할 만하다. 

'자연으로의 초대' 화이트 큐브로 초대하는 전유의 자연미술
'자연으로의 초대' 화이트 큐브로 초대하는 전유의 자연미술

 

여기에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야외 현장에서 벌어졌던 생생한 ‘자연미술 현장 작업’을 실내 전시에서는 영상이나 사진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소개할 수밖에 없다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한다. 이러한 불가피한 한계는 고승현의 화이트 큐브 전시에서 역설적으로 자연미술의 근원적 향방을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것은 그룹 야투의 창립선언문에 담겨있던 ‘인간-미술-자연-사회’의 상호 연결주의에 대한 관심, 즉 사회생태학(Social ecology)적 관심을 되살리는 것과 관계한다. 야투의 초기 자연미술은 창립선언문과 달리, 대개 ‘인간-사회’의 관계보다 ‘인간-미술-자연’와 연동하는 자연중심주의에 집중하는 심층생태학(Deep ecology)에 귀결되는 한정적인 작업이 주를 이루어 왔다. 반면 야투가 인간-미술-자연-사회’의 상호 연결주의를 본격적으로 실천하게 된 계기는 자연미술의 공공예술 프로젝트를 실험했던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기획, 운영이었다. 고승현은 화이트 큐브에서의 자연미술 개인전을 통해 ‘자연미술과 사회’와의 연계점이라는 이러한 사회생태학적 관점을 지속하고 연장한다. 

'자연으로의 초대' 화이트 큐브로 초대하는 전유의 자연미술
'자연으로의 초대' 화이트 큐브로 초대하는 전유의 자연미술

 

II. 화이트 큐브에서 전유하는 자연미술의 생태미학 
자연물과 인공물을 박스 안에 설치한 〈기억의 상자〉 연작은 인공의 화이트 큐브에서 실행하는 ‘자연미술에의 초대’를 작고 투명한 크기의 큐브로 응축한 것처럼 보인다. 이 연작은 2020년대부터 본격화된 〈나무상자〉 연작의 맥을 잇는다. 130점에 이르는 이번 신작은 이전보다 단순화된 조형미와 더불어 프레임을 나무상자 대신 투명한 아크릴 박스로 대체함으로써 인공의 속성 자체를 강화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자 내부의 자연물 혹은 인공물 또는 그것의 조합을 형식이나 내용상으로 더욱더 선명하게 맞닥뜨리게 한다. 
이 연작은 깃털, 나뭇가지, 박제된 곤충, 동물의 뼈, 나무와 조개와 같은 자연물뿐 아니라, 동파이프와 폐전자기기와 같은 인공물이 독립적으로 박스 안에 들어가 있거나 인공 튜브와 조개, 고무신과 조약돌, 핸드폰 커버와 나뭇잎, 그리고 구리 파이프와 솔방울, 연근, 나뭇가지처럼 인공물과 자연물이 함께 조합된 채 박스 안에 배치되어 있기도 하다. 
자연물과 ‘발견된 오브제(objets trouvés)’ 그리고 ‘만들어진 오브제(objets créés)’가 교차하는 〈기억의 상자〉 연작은 동식물의 조우, 자연과 인공의 만남이라는 사건을 벌이는 장이자 관객에게 자연에 관한 공동의 ‘기억 소환’으로 초청하는 장이 된다. 그가 작은 상자 안에서 우리가 오랜 시간 동안 망각했던 대자연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까닭이다. 그렇다. 대자연이란 자연과 인공을 모두 아우르는 넓고 광대한 시원의 자연이자, 그러한 자연의 본성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신화의 세계에서부터 자연은 인간에게 ‘잃어버린 낙원’이자 언젠가는 돌아갈 근원적 고향인 피지스(physis), 즉 인간이 회복하고자 하는 ‘원(源)자연’의 의미를 함유하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고승현은 작은 상자 안에서 ‘대자연의 본성’을 찾고 ‘원래적 의미의 자연 회복’을 실천한 셈이다. 그것은 분명 작고 비좁은 인공의 공간이지만, 거시적이고 드넓은 자연미술의 생태학을 품는 장이 된다. 
이처럼 고승현의 자연미술의 생태학은 도심의 화이트 큐브에서, 인공의 투명 상자 안에서 전유(appropriation)의 미학을 실현한다. 전유의 미학? 전유의 어원적 의미는 ‘무언가를 가져와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일련의 행위’이듯이, 고승현의 전유는 인공의 장으로 자연미술과 자연미술의 정신을 불러와 현재의 자연미술을 비판적으로 자기 반성하면서 자연미술의 본래 의미를 되살리는 것에 집중된다. 이러한 차원에서 오브제 미술의 한 유형처럼 보이는 〈기억의 상자〉 연작은 기실 자연미술이 아니면서 자연미술의 정신, 달리 말해 생태미술의 정신을 넉넉히 품어 안는다. 
또 다른 작품을 보자. 해양 쓰레기를 소재로 한 설치 작품은 자연미술과 오브제 아트의 경계에서 자연미술의 생태 미학을 탐구한다. 그가 건져 올려 설치한 자연물과 버려진 동 파이프에 설치된 그물 조각, 낚시찌, 폐플라스틱 등의 오브제는 ‘이미 세상에 버려지고 던져진 것들’이다. 즉 그것은 ‘피투(被投)의 존재들’로, 그에 의해서 발견된 오브제로부터 만들어진 오브제로 치환되면서 다시 피조(被造)된 존재들로 관객을 맞이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그의 작업 속 해양 쓰레기는 대상(object)이 아닌 또 다른 주체(subject)처럼 부상한다. 오브제 자체가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으로 인해 직면하고 있는 환경 위기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제기하면서도, 쓸모가 없어진 쓰레기로부터 건져 올리는 예술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발화 주체’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브제에는 작가 고승현이 무용의 쓰레기를 유용의 조형 언어로 길어 올리면서 기대하는 자연의 복원력에 대한 간절한 희망마저 오버랩된다.   
 

'자연으로의 초대' 화이트 큐브로 초대하는 전유의 자연미술
'자연으로의 초대' 화이트 큐브로 초대하는 전유의 자연미술

 

III. 에필로그-자연으로의 초대 
화이트 큐브에서 자연으로 초대하는 고승현의 전시는 사회생태학적 관점 차원에서의 전유의 미학을 두루 실천하는 한편, 또 다른 정신생태학(Spiritual ecology) 관점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만의 독특한 사운드 아트 연작인 〈가야금〉이 그것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서 가야금의 기본 형식만을 빌려올 뿐 사운드 아트 차원에서 그가 ‘백 년의 소리’로 지칭하는 자연의 소리를 담는 일에 무엇보다 골몰한다. 즉 가야금의 형식을 전유해서 그가 관심을 기울이는 ‘자연의 메시지’ 또는 ‘자연미술의 정신성’을 많은 이에게 전하는 일에 골몰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가야금〉 연작은 관객의 참여로 비로소 완성된다. 관객이 직접 만지고 연주해 보면서 그 소리를 전하는 나무 울림통에 귀를 대어 보는 등 적극적인 참여 활동을 통해서 자연의 죽은 나무는 생기를 입고 되살아난다. 
이 작품은 야투 작가들이 선보여 왔던 자연중심주의에 골몰한 심층생태학의 세계관이나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와 같은 사회 속으로 파고드는 사회생태학적 관점과 일정 부분 결을 달리한다. 즉 정신생태학 차원의 종교적 인식과 체험의 장으로 들어가는 그만의 자연미술 미학으로 평가해 볼 수 있겠다. 보이는 이미지로부터 보이지 않는 무엇을 생산하는 그의 가야금 연작이 ‘소리’를 통해 그가 신앙의 메시지를 전하는 까닭이다. 
고승현의 화이트 큐브 전시, ‘자연으로의 초대’는 무엇보다 ‘인간-미술-자연’을 넘어서는 ‘인간-미술-자연-사회’의 상호 연결주의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자연미술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에 집중한다. 그러는 한편, 그만의 독특한 정신생태학 혹은 영성생태학의 메시지 또한 포기하지 않는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현대 도시라는 사회적 맥락에서 자연미술의 정신을 전하는 고승현의 이번 전시를 ‘화이트 큐브로 초대하는 전유의 자연미술’이라고 평가해 볼 만하다.

'자연으로의 초대' 화이트 큐브로 초대하는 전유의 자연미술
'자연으로의 초대' 화이트 큐브로 초대하는 전유의 자연미술

 

자연미술가 고승현(高昇鉉)은 1956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1983년 한남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하고 2000년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대학 재학 시절인 1981년 대학 선후배들과 함께 ‘야투야외현장미술연구회(野投, YATOO)’를 창설하고 자연 속에서의 미술의 가능성을 실험했다. 그는 1983년 ‘자연미술’이라는 용어를 창안 및 발의했고 그가 주도하는 ‘야투자연미술연구회’를 1990년 ‘한국자연미술가협회 야투’로 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 나갔다. 1990년 이래 2022년에 이르기까지 100여 회가 넘는 ‘야투자연미술사계절워크숍’에 참여하는 등 공주의 자연미술 운동에서 중심 역할을 도맡아 왔다. 
1995년 개인전 이래 한국, 필리핀, 영국 등지에서 총 13회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한국, 독일, 스위스, 폴란드, 일본, 에스토니아, 캐나다,러시아, 헝가리, 중국, 이탈리아, 불가리아, 아르헨티나에 소재하고 있는 다수의 미술관과 국제아트프로젝트에서 작품을 발표해 왔다. 참여한 전시 대부분은 야외 환경 속에서 개최되는 자연, 환경, 생태를 전시의 주요한 콘텐츠로 다루고 있는 프로젝트였다. 그는 이처럼 세미나를 중심으로 한 채 펼쳐지는 담론 교환형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자연미술의 실제와 이론을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발전시켰다. 
한편, 자연미술 기획에도 힘을 쏟아 오고 있는데, 1995년부터 1998년까지 금강국제자연미술전 운영위원장을, 1991년부터 2002년까지 금강국제자연미술전 운영위원을 그리고 2004년부터 시작한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운영위원장을 2008년부터 2023년 현재까지 맡아오고 있다. 또한 그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야투자연미술의집에서 국제자연미술초대작가전을 기획해 왔고, 2009년부터 2022년까지 야투자연미술국제레지던스프로그램을, 그리고 2014년부터 2022년까지 글로벌노마딕아트프로젝트를 기획, 운영해 오고 있다.  
1981년부터 현재까지 창작과 기획을 병행해 오면서도 그는 언제나 야투 본연의 활동인 자연미술에 대한 초심을 견지하면서, 자연과 함께하는 미술에 천착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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