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열 갤러리스트] 소장품이야기 46 ‘강민수 작가의 백자 달항아리’
한때 골동품 수집을 하면서 깨진 사발을 어지간히 많이 모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입에서 들은 "반듯한 달항아리 한점이면 족하다."라는 말에 크게 감복하여 달항아리 주변을 맴돌았지만 끝내 달항아리 한 점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골동품 정리를 했다.
남은 골동품 일부는 임대하여 해외에서 전시 중이지만 자랑할만한 것은 없으니 자연히 골동품에 대한 흥미는 잊혀져 가게 마련이다.
수집벽은 도벽이나 마약같은 강력한 중독성을 지니고 있어서 이후 다시 심취한 게 동양화 수집이었고 동양화를 이어서 서양화에 뛰어 들었지만 그냥 많이 모으는 것이 취미였던 것 같다.
때문에 연구를 해보거나 공부를 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내가 미술에 눈을 제대로 뜬 시기는 갤러리를 시작하고 현대미술에 빠지면서 부터 이다.
세계미술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일대기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게 되며 "야 ~ 이렇게도 미술이 되는구나~~!! "
그 설레임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국의 미술사를 접했을 땐 이우환 선생님의 관계에 대한 정의나 정상화, 박서보, 하종현 선생님의 방법론을 통해서 미술은 곧 보이지 않는 철학적인 생각을 표현하여 나타냄으로써 존재됨을 깨닫게 되었고, 이동엽, 서성원, 허황 선생님 등의 그림을 통해서는 작가가 제시한 시간과 공간적인 의식의 세계는 표현을 넘어 개념을 정리한 것이 곧 그림이 된다’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것을 통해 왜 그리는가와 무엇을 나타내는가만 명백하면 모든 것이 예술임을 알았을 때, 보여지는 것이 전부가 될 수 없다는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탐독하느라 2005년부터 2012년까진 인테넷을 뒤지고 책과 씨름했고 누구든 만나기만 하면 미술 이야기로 하루 세 시간 이상 잠을 자본 적은 거의 없었다.
한마디로 24시간 미술에 대한 생각이었고, 잠을 자면서도 깨어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단다.
그랬기에 우리나라 미술에 있어서 가장 철학적 기반이 풍성했던 시기는 1960년에서 1970년대를 꼽으며 한국의 전위예술도 그 시기가 가장 두드러져 보인다.
내가 주로 공부하고 연구했던 시기가 그 시기의 미술이었으니 나한테는 가장 중요한 시기로 받아졌고 또한 저는 그 시기의 작가들에게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혹자는 제가 운이 좋았다, 안목이 남다르다고 말하는데 나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내가 단색화에 빠져 예술이라 칭할 때 나는 누구보다 가난하여 부스비 외상 출품이 아니면 아트페어 참가도 어려웠고 내가 전위예술가를 모시고 그림이라고 소리칠 때 나는 미술계에서 점점 고립되어 갔다.
한마디로 운이 지지리도 나빠서 내가 정말 재정적으로 어려워져 미술계에서 점점 잊혀져 가니 단색화는 부르는 게 값이 되었고, 함께하던 작가는 그나마 팔리거나 제 가격을 받을만하면 속속드리 떠나갔으며, 또 내 모든 것을 다 바친 전위예술가는 기어코 내 손을 떠나서야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으니 내가 운이 좋았을 리는 만무하다.
만약 내가 안목이 뛰어났다면 그리 쉽게 떠나가고 또 뒤돌아보지 않을 작가에게 내 모든 것을 바쳐 연모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더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미술의 끝은 어디에 있을까? 를 찾아보기에 몇 년을 골몰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더 이상 생각하기 싫어 문득 떠오른 생각이 <내던짐과 포기> 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내가 낙서에 매료된 이유이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그렇다면 다가올 현대미술이란 무엇이며 이제 어떤 작가에게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할까?
현대미술의 기반은 결국 과거에 있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의 골동품이 생활이던 세상과 지금은 대우받지 못하던 동양화가들이 활동하던 시대로 가게 된다.
그때 못했던 것이 지금 구현되면 그것이 현대미술이 되는 것이다.
과거는 과거에 묻히고 새로운 것은 또 새로운 것에 묻히면서 그렇게 현대미술은 또 과거로 돌아간다.
이제 나의 현대미술은 옛날에 했을 법한~~!!
또는 해내지 못한 것을 재현해 내는 것이 현대미술이 지향할 숙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러면서 현대미술 하나를 소개한다.
백자 달항아리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전통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완벽으로 재현되었다.
그 크기도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고 그 모양새도 둥글게 둥글게 보름달을 닮았다.
'달항아리는 찌그러진 맛이다.'
그건 둥근 맛을 보지 못한 아쉬움에서 찌그러져도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의 맛이지요~~!!
'찌그러진 걸 돌려가며 보는 맛이다.'
찌그러졌으니 조금이라도 덜 찌그러진 쪽을 찾아 돌려서 놓을 수밖에 없었던 옛 선조의 지혜이다.
그러나 정말 잘빠진 둥근 달항아리는 잘 빠진 쪽을 찾아 항아리를 돌리기보단 흠을 찾으려 이리저리 돌아가면서 감상할 수밖에 없다.
위 사진은 현대미술의 정수 강민수 작가의 백자 달항아리이다.
전통 방식인 장작가마를 통해 (높이)58 x(배지름)58.2 x(궆) 21.5cm의 대형 달항아리가 이렇듯 반듯하게 나와서 제 품에 왔기에 하루 종일 아는 사람들을 불러 구경시키는 즐거움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