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항섭(미술평론가)

전통적인 조각은 현대미학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길과 마주하게 됐다. 과학의 발달로 인해 다양한 공업용 재료가 만들어지고, 그 재료가 조각의 영역으로 흡수되었다. 석유(원유)를 기반으로 하는 화학제품은 조각의 재료로 사용하기에도 편리하고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 전통적인 재료인 돌과 나무 그리고 브론즈의 영역에서 벗어나 거의 제한이 없는 표현의 자유를 누리게 됐다. 적어도 조각적인 상상력이 장애를 느끼는 일은 없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 이처럼 재료가 풍부한 현실에서도 여전히 전통적인 재료를 고수하는 작가도 적지 않다. 이는 조각가로서의 신념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재료가 새로운 조형적인 사고를 유도함에 따라 새로운 조형 세계와 만날 수 있음을 알면서도 눈앞에 놓인 현실을 애써 외면한다. 새로운 재료, 새로운 조형적인 해석도 중요하지만, 조각 본연의 길인 조형적인 순수미를 탐색하는데 더 큰 즐거움을 느끼려는 건지 모른다.
 

강이수작은 새
강이수작은 새

강이수의 조각이 그렇다. 그는 전통적인 재료인 돌과 브론즈, 철, 스텐리스, 알루미늄과 같은 무거운 재료를 사용한다. 이들 재료를 사용하는 조각은 고강도의 힘과 기술 그리고 인내가 필요하다. 이들 무거운 재료는 기술적으로 가공하기도 힘들뿐더러 시각적으로도 투박해서인지 밝고 화사한 색깔을 선호하는 현대인의 삶의 정서에서 유리되는 듯싶은 분위기다. 실제로 조각 전시회에서조차 이들 재료를 사용하는 작가를 찾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
 
이들 재료를 사용해 작업하는 그의 경우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동물이 아니라 날짐승, 즉 새를 소재로 한다. 동물 조각의 경우 대개는 말이나 소, 호랑이, 곰, 사자 등 대체로 큰 짐승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런데 이에 반하듯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를 만든다. 물론 닭이나 전설 속의 봉황처럼 제법 크기가 있는 날짐승도 포함한다. 어떻든 가벼운 존재로 생각되는 새가 조각의 소재이자 주제이니 무거운 재료와는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강이수 검은부리새
강이수 검은부리새

가볍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새는 어떤 종류이건 예쁘고 사랑스럽다. 인간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 애완용처럼 편하게 느껴진다는 사실 자체가 사랑스럽다는 감정과 연관성이 있다. 어쩌면 새를 소재로 한 작업을 구상하게 된 것은 친숙함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는지 모른다. 하고 많은 동물 가운데 새를 선택하게 된 연유는 자유라는 상징성이 큰 부분을 차지하리라 생각된다. 땅을 딛고 살아가는 인간의 오랜 욕망의 하나는 마음대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일이었다. 그러한 욕망이 새의 날개를 닮은 비행기를 고안하게 됐고, 그로 인해 새보다도 더 자유로운 비행이 가능하게 됐다.

강이수 꿈꾸는 새
강이수 꿈꾸는 새

그런데도 인간은 늘 생물학적인 힘으로, 즉 신체적인 힘만으로 새처럼 날고 싶다는 갈망을 멈추지 못한다. 조각가인 그로서는 이러한 갈증을 대신하는 방법의 하나가 다름 아닌 새를 만드는 일이었다. 새를 소재로 작업을 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의 형상을 원하는 대로 만듦으로써 날고 싶다는 욕망을 간접적으로나마 해소할 수 있기에 그렇다. 새의 형상을 만든다는 건 날아다니는 새를 사역하는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는 날 수 없는, 단지 조형적인 형상일 따름이지만 만들어진 새와 더불어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것이다.

새를 소재로 하기 이전에는 말이나 물고기 그리고 춤추는 사람을 다루었다. 이들 소재는 작업량이 많은 건 아닐지라도 새와 마찬가지로 움직이는 존재에의 관심이었다. 인물은 전통적인 조각의 오랜 주제였다. 움직이는 존재는 시시각각 그 모양이 다르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인물은 조각적인 주제로서의 영속성이 있다. 세계미술사를 장식하는 수많은 인물조각상이 이를 웅변한다. 인간과 함께 해온 가축 그 가운데 말은 가장 친숙한 존재이다. 빠르고 힘차게 달린다는 말의 생리적인 특성 또한 인간의 신체적인 여건을 극복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가치이다. 말 역시 새처럼 광활한 대지를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다는 데서 지치지 않고 달리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해소해 준다. 

강이수 나는 새
강이수 나는 새

새를 소재로 한 건 자유로운 비상에의 꿈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게 시작된 새 조각은 아이러니하게도 가벼운 존재로서의 새와는 상반된 무거움으로 일관한다. 새의 형상임에도 돌과 철, 돌과 스텐리스, 돌과 알루미늄 등 일련의 무거운 매재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들 소재는 견고함과 반영구적인 보존성 그리고 재료 자체가 가지고 있는 신뢰감이 조각적인 가치를 높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의 조각은 새를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 내리고 있다. 더 이상 하늘을 날 수 있는 새가 아니다. 조각 자체가 무겁기도 하거니와 새의 형상에서 가벼움을 덜어냈기 때문이다, 큰 새든 작은 새든지 날 수 있는 도구, 즉 날개가 퇴화한 상태이다. 머리와 몸통에 비해 현저히 큰 머리와 부리 그리고 다리는 날 수 있는 조건으로부터 멀어져 있다. 특히 자연석을 이용하고 있는 근래의 작업에서 이러한 형태 변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그러고 보면 그의 관심사는 애초의 날고 싶다는 욕망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그의 관심사는 새의 형상을 빌어온 조각 자체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일이지 싶다. 

강이수 노랑점무늬새
강이수 노랑점무늬새

새의 형상은 단순화되고 왜곡되며 부분적으로는 변형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부리가 실제보다 커지고, 눈은 불거져 있으며, 날개는 현저히 작아진 데다 다리는 과장되어 있다. 이러한 형상은 실제와는 크게 다르다. 조형적인 재해석의 결과인데, 실제의 미와는 또 다른 조형미에 관한 심미 표현인 셈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새의 형상은 돌과 금속이라는 이질적인 재료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물성이 전혀 다른 재료, 즉 돌은 자연물이지만 금속은 인조물이다. 자연물과 인조물의 조합이라는 설정 자체가 조각가다운 발상이다. 

새의 몸통과 머리는 돌이고 눈은 도자기이며, 나머지 부리와 다리 그리고 날개는 금속이다. 이처럼 이질적인 재료가 한 몸이 되는 데는 돌과 금속을 나무처럼 다룰 수 있는 기술이 요구된다. 실제로 돌에다 금속을 끼우는 방식은 정교하게 마무리되고 있다. 따뜻한 돌과 차가운 금속이 한 몸이 되는 새의 형상은 조금은 유머러스한 모양새다. 새의 이곳저곳이 부분적으로 과장되거나 왜곡되고 있기 때문인데, 그처럼 변형된 모양이 되레 친숙함을 불러일으킨다. 작품에 따라서는 인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새의 형상이 실제와 다르게 왜곡되고 변형되는 건 의인화라는 감춰지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이다. 인간 삶의 현실에서 목도되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새의 형상을 빌어 표현하려는 속내를 담고 있다. 새의 이미지 속에 은닉되는 인간의 모습이라는 이중적인 이미지를 투사하려는 것이다.  

강이수 녹색부리새
강이수 녹색부리새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라는, 실재하는 존재에서 사실성을 배제하니 인간처럼 땅을 걸어 다니는 존재로 변신할 수 있었다. 이제 그가 만들어낸 새는 다시는 날 수 없는, 중력을 거역하지 못하는 존재로 땅을 딛는 붙박이가 된다. 일상적인 우리의 삶의 공간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숙한 존재로 바뀐 것이다. 이는 그의 조각이 가지고 있는 마술이다. 돌과 금속으로 새의 형상을 만들고자 했을 때 이와 같은 존재 방식을 부여함으로써 삶의 공간을 풍요롭게 가꾸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최근 작업 가운데 자연석을 이용하는 작품이 적지 않은데, 대체로 머리와 몸통이 분리된 구조로 되어 있다. 새의 형상을 닮은 하나의 돌을 구할 수 없으니 머리와 몸통의 형상에 근사한 두 개의 돌을 붙이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여기에다 부리와 날개, 깃, 눈 그리고 다리를 붙여 새의 형상을 완성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새의 형상은 자연석이 주는 자연미와 만들어 붙인 인조미가 미묘한 조화를 이룬다. 애초에 새의 형상과 무관한 자연석에다 도자기로 만든 눈을 비롯하여 금속으로 만든 부리, 깃, 다리를 붙임으로써 서로 이질적인 재료가 공생하는 관계가 된다. 

강이수 세련된 새
강이수 세련된 새

그는 강고한 재료를 사용하는 데 따른 시각적인 무거움을 덜어내는 시도를 해왔다. 가령 돌에 반구대암각화의 이미지를 가져온다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담긴 이미지를 새겨 넣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최근에는 좀 더 밝고 친근감을 살린다는 취지에서 색채이미지를 도입하기도 한다. 작품성과 함께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조각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식적인 효과를 의식하지 않더라도 사실적인 형태미를 지양함으로써 아이들에게도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는 형태 감각을 지니고 있다. 

강이수 파랑줄무늬새
강이수 파랑줄무늬새

조각의 외형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며 감상하게 되면 시각적인 아름다움은 물론 그 안쪽에 숨겨진 내용과 만날 수 있다. 그의 조각은 그런 이해 방식을 유도한다. 실제로 단순화하거나 변형 및 왜곡이라는 방법으로 만들어지는 그의 조각은 유머러스한 형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사회풍자적인 요소가 적지 않은데, 이는 그의 조각이 가지고 있는 남다른 장점이자 특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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