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사람들에게 최고의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꽃은 인류가 문명의 세계를 열기 이전부터 모든 생명의 원천으로 손꼽혔다. 그래서 사람이 태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꽃은 인간의 기쁨과 축하 가운데 최고의 표상이고, 슬픔을 추모하는 최적의 상징으로 간주된다.

장미 , 그 순간의 움직임 무지개 컬러의 찰나
장미 , 그 순간의 움직임 무지개 컬러의 찰나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까지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피에르-조셉 르두테는 그런 꽃그림의 원조로 불린다.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와 나폴레옹 황후를 위해 우아한 세밀화의 꽃그림을 그려 그는 궁정화가로 알려졌다. 특히 꽃 그림으로 유명해진 그는 특히 장미와 백합에 대한 그림책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여린 붓끝에서 피어나는 장미에서 황홀한 인생의 환희를 느끼고 그 연륜 깊은 향기를 화폭에 어김없이 담아내면서 그의 그림은 빛을 발했다. 그만큼 피에르의 그림은 너무나 섬세하고 정교했으며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진짜 꽃보다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다. ‘꽃의 라파엘(Raphael of Flowers)’이란 별명만큼 세계 각국의 꽃을 수천 개 꽃의 영혼을 화폭에 담아냈다. 


문철 작가의 장미그림에서 그런 향기를 다시금 발견한다.
수십 여점 문철작가의 장미 사랑도 물론 피에르 만큼은 아니지만 지독하고 악착스러울 정도로 화실은 장미그림으로 둘러싸여 있다.
무엇보다 문철작가의 장미는 환상적이고 무지갯빛처럼 다양한 컬러로 펼쳐져 있다.
실제 이러한 컬러의 장미가 존재하는지 모를 정도로 마치 실제 존재하는 것 이상 문철의 장미그림은 유혹적이고 리얼리티가 숨 쉬고 있다.
색채는 은은한 수채화와 파스텔 톤으로 화면마다 독특한 분위기를 내보이며 그 은밀한 꽃잎들은 마치 ‘아침의 영광(Morning glory)’처럼 향기롭고 은밀하다. 그러나 꽃향기가 진동 할 것처럼 살아 숨 쉬지는 않는다.
아니 작가는 그런 생생함과 진짜 장미처럼 그리기보다는 온화하고 매혹적인 문철의 장미는 마치 장미송이를 형형색색의 필터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는 이렇게 장미의 묘사에 집중하는 것일까? 그리고 오래 수십여점의 장미를 그려온 화가의 마음속은 무엇이었을까? 이제 그것이 궁금하다.
우리가 보통 장미의 화가라 부른다면 김인승이나 황염수, 성백주 등이 떠오를 정도로 그들은 긴 세월 ‘장미’라는 주제에 몰두했었다.
그러나 문철의 경우에는 좀 색다르다. 

장미 , 그 순간의 움직임 무지개 컬러의 찰나
장미 , 그 순간의 움직임 무지개 컬러의 찰나

자세히 보면 문철 작가는 1983년 그래픽 작품에서 장미의 표현을 아주 특징적으로 다룬 바가 있다. 다만 그는 꽃의 실제적 형상을 추구하거나 묘사하는데 집중하기보다 외형의 형태와 특징을 살려내는데 더욱 중심을 두었다. 그런 것으로 보면 문철 작가는 장미의 실제적인 묘사나 외형보다 장미가 지니는 그 아름다운 순간의 덧없음과 절정의 순간, 바로 그 찰나를 붙들어보고 싶은 것이 아니가 여겨진다. 오히려 장미꽃이 피었다 지는 그 순간의 찰나에 주목하며 그 순간의 감성의 느낌과 파장에 주목한다. 그리고는 선천적인 디자이너답게 색채의 파장으로 정교한 필치와 선을  화면 가득 풀어내면서 장미의 순간을 기억하고 추억한다.
그것은 그의 시각적 감성이 포착해 내는 디자이너적인 고귀한 순간, 모멘트이다.
하나하나씩 보면 장미 그림 속에는 감출 듯 숨겨진 선과 미묘한 색채의 부드러운 톤과 터치로 완성된 흔적으로 엮어진 것이 곧 그의 장미임을 알 수 있다. 그의 수십 여점의 장미꽃을 보고 있노라면 한편의 고요한 바이올린 선율을 듣고 난 후 무지개처럼 펼쳐지는 섬세한 울림의 잔상을 빨주노초파남보 색상에 젖어든다.

장미 , 그 순간의 움직임 무지개 컬러의 찰나
장미 , 그 순간의 움직임 무지개 컬러의 찰나

장미꽃을 다보고 나면 누구든 한없이 부드럽고 경쾌한 멜로디를 감상한 후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꽃밭에 산책한 감성과 느낌에 빠져드는 이유이다. 그의 장미는 구조적으로 장미의 꽃잎이 수십 장씩 겹치거나 포개져 있어 입체감의 표현과 꽃잎마다 빛의 반사로 평면화 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화면은 고요하고 정적이며 따스한 꽃향기와 온기가 감도는 매력을 풍기고 있다.
보통 정물을 그리는 화가들은 꽃 가운데 그것도 장미 그리기가 제일 어렵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왜냐하면 장미는 그 종류만 수백 종에 색깔도 가지각색일 뿐만 아니라, 그 구조적인 구성미가 여간 섬세하고 미묘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철 작가의 장미 그림 속에서 장미라는 실질적인 형태나 컬러 구성보다는 그 장미의 다양한 물질적 속성을 가지고 화폭에 어떻게 조형성과 회화미를 줄 것인가가 과제였다. 문철 작품의 기본적인 모티브가 전적으로 장미만을 모델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꽃송이마다 환상적이고 신비스러운 색채들이 밝게 때로는 어둡게 어울리며 각자의 그림자를 만들면서 담백하게 극적인 배경 없이 장미그림이 펼쳐지는 것은 그의 독창성이자 숨겨진 매력이다.

장미 , 그 순간의 움직임 무지개 컬러의 찰나
장미 , 그 순간의 움직임 무지개 컬러의 찰나

 

마치 천연염색을 물들인 듯 묻어나는 옅은 색깔, 꽃송이와 봉오리에 깊은 형태의 하모니에서 우리는 문철 장미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모든 그의 장미의 모습은 장미라는 생김새를 묘사할 뿐 실제  장미의 본질로 볼 것을 말하지 않는다. 대부분 장미의 정면을 묘사하고 있지만 실제 그의 장미는 실체적인 존재보다는 장미에 대한 관념적인 해석으로 보인다. 더 극적으로는 그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기억하고 있는 그 찰나의 장미모습인 것이다. 그래서 장미라는 개념의 현상을 보여주는 그 대표적인 사례와 증거를 문철작가가 실질적으로 장미의 색채를 닮은 것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다양한 장미의 실체를 마치 필터나 컬러렌즈로 보듯이 들여다보는 작가의 시선이 독특한 것이다.
결국 작가는 장미를 그린다기 보다 장미라는 하나의 오브제, 그러기에 문철은 장미를 하나의 시각적 대상으로 바라보고 이해 해석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장미를 하나의 오브제의 차원을 넘어 하나의 스토리로 해석하려는 시도의 다양한 작품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작가는 단순히 장미의 형태나 존재에 향기를 불어넣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존재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차원을 넘어 마치 컬러로 이름을 붙여 무지개처럼 특별하고 환상적인  그리하여 마침내 문철만의 장미의 탄생을 꿈꾸고 있다.
그것은 마치 시인 김춘수가 꽃에게 다가가 꽃이라고 불렀을 때 비로소 꽃이 되었다는 마치 허가받지 않은 입법자가 되어 모든 장미에게 형형색색의 색채를 부여하며 천의 얼굴의 장미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시각적인 보는 것의 거부를 통하여 사물을 창조하는 시각적 디자이너 창작의 자세를 지키고 있다. 그에게 그림이란 사물의 대상을 그대로 옮기거나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게 문철이라는 조물주가 이름 붙여주는 명명자인 것이다.

장미 , 그 순간의 움직임 무지개 컬러의 찰나
장미 , 그 순간의 움직임 무지개 컬러의 찰나

 

작가는 최근 그러한 시선에만 있지 않고 그 이미지의 속에 스토리를 심어놓는 장치를 시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문철작가의 그 표현형식과 사유적인 태도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그 시각적 표현에 기대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거기서 장미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작가의 풍요로운 시각과 가능성을 발견 할 수 있다. 특히 근작에서 두드러지게 장미와 꽃잎의 새로운 시선과 배치, 구성과 스토리는 작가만의 독창성을 구축하고 있다. 그래서 장미꽃 한송이에 무수한 컬러와 모습들이 있는 것을 포착하려는 문철의 회화적 궁금증과 시각은 더욱 흥미롭기도 하다.
보다 다이내믹하고 다채로운 시선으로 장미라는 오브제의 천 가지의 모습을 보여 준다면. 우리는 그의 장미에서 천의 얼굴과 천의 향기로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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