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시와 간결한 붓질, 경이로운 서양과의 만남–정창기 작가
김종근 미술평론
중국 북송시대의 화가 곽희(郭熙, 1060~1080년경 )는 시와 그림에 관한 아주 명문을 남겼다 “그림은 소리 없는 시이고 시는 형태 없는 그림이다” 시와 그림이 결코 둘이 아니고 그것이 하나였을 때 그 빛을 발하며 이것은 진주와 같이 반짝이며 소중하다는 것이다.
정창기 화백의 시와 그림과의 절묘한 조우, 그 만남은 바로 이러한 시적인 높은 경지와 붓질의 아름다운 형상의 순간들을 담아내고 있다.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선을 그어 간다. 선명한 한삼모시 한 올 같은 선을 찾아서
어둠이 깊어 해가 떠오를 것 같지 않던 창에 빛이 스며든다.
물안개가 속삭이듯 퍼지는 동창으로 미등 불빛 같은 난향이 스며 있다“
마치 동틀 무렵 새벽, 작가가 쓴 이 자서에는 작가의 모든 예술적 영혼과 영감,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순간의 정경이 마치 한 폭의 풍경화처럼 펼쳐진다.
정창기 작가는 ‘시를 가장 사랑한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미 지난 전시에서 김달진 ‘열무꽃’, 김후란 ‘자화상’, 유안진 ‘지란지교를 꿈꾸며’,최동호 ‘불꽃 비단벌레’, 윤효 ‘봄 편지’ 등 명시가 그림 속으로 들어간 작품 30점으로 전시를 하면서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정창기 화가는 일찍 어릴 적부터 붓글씨를 써왔으며 서예의 대가이신 일중 김충현 작가의 마지막 제자로 서예의 세계를 이어왔다.
그러다 더 새로운 예술세계의 욕심으로 서양화 재료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 화폭에 시와 난을 끌어들여 시서화라는 동양적인 세계를 접목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게다가 일찍이 작가는 월간 ‘난세계’에 10년간이나 그림을 연재했다 하니 그 열정과 이력 또한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시와 그림과의 만남에는 물론 시인이자 예술원 회원인 최동호 고려대 명예교수의 뜻밖의 제안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림’이라며 시인들의 시를 적어 넣은 작품을 전시해 보자고 제안해서 이 전시도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결국, 그래서 이 작품들은 모두 동양의 붓으로 서양의 물감을 묻혀 그리고 만들어낸 붓글씨이자, 바로 서양화인 것이다. 바로 시서화 일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거기다 난까지 가세하였으니 시서화란의 예술이다. 이런 정창기 회화의 몇 가지 특징은 한없이 섬세하면서도 부드럽고 시의 간결한 상징과 응축 그리고 사유가 그대로 화폭에 묻어난다.
비워두는 화면의 여백, 날릴 듯 붓 획의 삐침과 생략이 화면을 더욱 간결한 양식으로 완성 시키고 있다. 특히 쓸쓸한 듯 비워둔 공간의 여백마다 난이 등장하여 난의 감추어진 고결한 품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렇게 독창적인 구성과 양식의 그림들은 서양의 붓으로 그린 거친 붓 처리의 회화와는 다른 품격과 질감을 보여준다. 이것은 결국 동양과 서양의 일체이며 합일이며 통합하는 아름다운 하모니의 세계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서양화가들은 동양의 깊고 오묘한 동양미를 모르는데 이 그림들을 통해서 동양의 깊은 생략과 비어있음, 난초의 의미, 그리고 마침내 시인의 맑은 심성과 정갈한 언어를 정창기 작가의 한 화폭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당나라 때의 유명한 예술가, 문인이었던 소동파가 왕유(王維, 699~759)의 시와 그림을 보고 “ 그림 가운데 시가 있고, 시 가운데 그림이 있다” 라고 극찬 한 것처럼 우리는 왕유의 작품을 보듯이 그림과 시를 한 화폭에서 만날 수 있는 즐거움과 행복함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동양과 서양의 예술의 지평과 경계에서 그 정신을 하나로 통합하는 조화로운 세계를 향하는 정창기 화가의 정신은 동양 문인화의 전통을 게승하면서 수묵산수에 갇히지 않고 서양의 채색 기법으로 정창기만의 화풍을 구축한 것이다.
최동호교수의 "이는 오랜 세월 서예를 연마한 정 화가만이 가능한 ‘법고창신’의 경지가 이러한 것을 증명하고 있다.
진정한 예술의 매력과 가치는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