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열 소장품 이야기 23 - 파블로 피카소

한때 일본에서 작품을 구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땐 뭐에 쓰였는지 이미지만 오면 빨리 잡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주위에 아는 사람을 설득하여 나 대신 사 놓으면 내가 다시 팔아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렇게 구매는 시작되었다. 
그런데 작품이 계속 나오면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김수열 소장품 이야기 23 - 파블로 피카소
김수열 소장품 이야기 23 - 파블로 피카소

물론 보증서는 매우 철저하게 준비되어 있었고, 그동안 소장자들의 프로필 역시 꽤 상세하게 나와 있었지만 의심이 점점 더 커졌다.  
그때부터 불안하기 시작하여 구매자들에게 가짜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신중하게 결정을 하라고 권했지만, 나도 한 점만 구해 달라는 부탁에 위험을 무릅쓰고 구매를 한 것이 피카소를 비롯 샤갈, 마티스, 앤디워홀, 달리, 베르나르뷔페, 에곤쉴레 등등 원화 20점, 판화 70점 정도를 구매하게 되었다. 

1년 이내에 가짜라는 증명을 받아가면 환불을 해 주겠다는 약속이 있어서 구매는 가능했는데 가짜라는 증명을 받는 것이 바로 덫이었고, 진위 여부는 직접 확인하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감정을 해도 판정 보류는 나오지만 위작이라는 증명은 받을 수가 없었다.  

김수열 소장품 이야기 23 - 파블로 피카소
김수열 소장품 이야기 23 - 파블로 피카소

피카소 작품 몇 점을 피카소 재단에 문의를 했더니 답변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가짜인지 여부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이 왔다. 
그런 과정에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딜러와 손이 닿아 소더비와 크리스티 경매의 피카소 전문 감정위원과 연결이 되어, 감정을 의뢰했고 역시 진작이라고 증거 할 자료가 부족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리고 만약에 꼭 확인을 하고 싶으면 피카소 가족에게 직접 확인을 하라는 것이었다. 

김수열 소장품 이야기 23 - 파블로 피카소
김수열 소장품 이야기 23 - 파블로 피카소

다만 감정을 위해서는 작품을 직접 제출해야 하고 만약 진품이 아니라고 판단이 나면 소각해도 좋다는 약속이 함께 이루어져야 가능하다고 했다. 
결국 진짜라는 확인도 가짜라는 확인도 받아내지 못한 채 일 년은 지났고, 나는 스스로 가짜라는 결론을 내려 내가 직접 회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김수열 소장품 이야기 23 - 파블로 피카소
김수열 소장품 이야기 23 - 파블로 피카소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그 당시가 내가 가장 의지하고 함께 하던 작가가 떠나면서 사실상 갤러리를 운영할 의욕이 사라졌을 때고, 그런 와중에 내린 결론이 그냥 장사꾼이나 되어 돈이나 엄청나게 벌어서 나중에 돈 많은 제대로 된 갤러리를 만들어 내겠다는 오기만 똘똘 뭉쳐 있을 때였고 그나마 그렇게  해서 수수료라도 남겨서 버텼는데 환불을 해 줘야 하겠다고 생각을 하니 도무지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가짜일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회수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대부분의 콜렉터가 처음부터 가짜일 수 있다는 말은 듣고 샀으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그게 혹시 아산갤러리에서 유통되었다는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면 우리 갤러리가 계속 영업을 할 수 없으니, 돌려 달라고 오히려 통 사정과 설득을 하여 돈 대신 다른 작품으로 교환을 해 주고 겨우 회수했다. 그럼에도 몇 분은 제 사정을 알고, 그냥 기념으로 가지고 있겠다고 말씀을 하셔서 회수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고, 요즘 소장품 이야기를 올리다가 문들 그때 일이 생각나서 글을 쓴다. 

김수열 소장품 이야기 23 - 파블로 피카소
김수열 소장품 이야기 23 - 파블로 피카소

진짜라는 확인도 가짜라는 확인도 그 어떤 확인도 받지 못해 소각도 못하고, 그렇다고 팔지도 못하는 작품들, 그 당시 내 전 재산을 바쳐 작가에게 봉사하고 겨우 작품 몇 점 얻어서 남긴 것을 분에 넘치는 명화 중개로 인해 내 재산을 한꺼번에 톡 털어먹은 애증의 산물들을 아직도 소각하지 못하고 그냥 가지고 있으니 나도 참 딱하다. 

당시 우리 아산의 브랜드 아파트 32평 한 채가 6000만원 이었으니, 아파트 20채 값을 꿀꺽 집어삼킨 나의 어긋난 컬렉션 이야기다. 
가짜일 가능성이 높은 작품의 이미지 공개는 하기 어려워 당시에 받은 보증서로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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