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교 충청북도 제천(堤川) 출생
1946년 2월 17일 - 2006년 6월 12일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3월 14일 오후 서대문성지역사박물관에 들려 유영교 작가의 부인인 서양미술사가인 이은기 목원대학교 교수의 해설로 영상 촬영을 하였다.
유영교는 한국의 조각가로, 홍익대학교와 이탈리아에서 조각을 공부했다. 그는 가족, 여인상, 불교와 기독교 등의 종교주제를 다양한 크기와 기법, 구상, 반추상, 추상 등 여러 양식의 석조작품으로 표현했다. 1990년대 말부터는 철제로 움직이는 조각을 제작했다. 유영교의 작품들은 인간의 내면세계와 정신성, 인간과 자연에 대한 휴머니즘적 태도를 보여준다고 평가받는다.
생애
유영교(劉永敎)는 한국의 조각가이다. 그는 1946년에 충청북도 제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집 마당에 그림을 그리며 놀던 유영교는 충주중학교 재학 중에 미술교사 심용택과 곧잘 그림 사생을 다녔고 수채화로 충주시에서 큰 상을 받기도 했다. 미술교사와 미술반이 없는 충주고등학교에 진학한 유영교는 친구 이계양과 석고를 가지고 데생을 독학했다. 유영교는 홍익대학교 건축과에 두 차례 낙방했으나, 제2지망이었던 홍익대학교 조소과에 합격하면서 조각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당시 조소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전뢰진의 석조 수업을 가장 좋아했고, 이에 지속적으로 석조 작업을 했다. 그는 대학교 2학년이던 1966년에 대한민국미술전람회(大韓民國美術展覽會, 국전)에서 입선하기도 했다.
유영교는 1969년에 홍익대학교를 졸업했고, 이후 동구여자상업고등학교와 명지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며 작품활동을 병행했다. 그는 1974년에 홍익대학교 대학원 조소과에 입학했고 1976년에 졸업했다. 그는 안휘준의 지도 하에 졸업 논문인 '조선시대 왕릉의 석인석수상 연구'를 썼다. 그는 졸업한 해에 대학원 입학 동기인 미술사 전공 이은기와 결혼했다. 이후 유영교는 한국 구상조각회의 결성을 도왔고, 1977년에 첫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각종 초대작가전에 참여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유영교는 1978년에 이탈리아 로마 국립미술대학(Accademia Di Belle Arti, Rome)으로 유학을 갔다. 그는 조각전공으로 입학했는데, 당시 이 대학에는 페리클레 파치니(Pericle Fazzini)와 에밀리오 그레코(Emilio Greco)가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유영교는 몇 차례 일시 귀국을 하기는 했으나 1986년까지 이탈리아에서 주로 작업을 하며 이탈리아와 한국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각종 단체전에 참여했다. 그는 1980년에 한국구상조각회가 로마에서 작품전을 개최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는 1981년경부터 이탈리아 북서쪽의 카라라(Carrara) 지역 주변에 자리를 잡고 작업을 했는데, 카라라에는 석조 제작에 적합한 돌을 채굴하는 대리석 광산이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돌들이 수입되기 때문이다.
1897년에 귀국한 유영교는 이은기가 목원대학교의 교수로 발령받자 대전에 집을 마련하고 충청남도 연기군에 작업장을 만들었고, 작품 제작과 전시 활동을 활발히 했다. 또한 2001년부터 그는 문화공간건축학회(전 박물관건축학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회원들과 미국, 일본, 캄보디아, 러시아, 동유럽 등을 여행하며 미술관 건물을 비롯한 건축, 단독 조각, 도시 공간 속의 조각 등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활동을 했다. 유영교는 2006년 6월 12일에 담도암으로 사망했다.
작품활동
유영교는 돌 조각을 주로 제작했다. 활동 초기인 1970년대에 그는 국전에서 작품을 출품하여 입선과 특선을 거듭했다. 그는 1966년에 국전에 출품하여 입선한 뒤 1973년에 '운영'(雲影, 1973)으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고 이듬해에는 '운무'(雲霧, 1974)로 국회의장상을 수상했다. 1975년과 1976년에도 국전에서 특선을 한 그는 국전의 추천작가가 되어서 1977년부터 1981년까지는 국전의 초대작가전에 출품을 했다. 유영교는 초기에 둥근 형태가 돋보이는 여인상을 주로 제작하다가 1976년 작품인 '자매'(1976)에서는 면을 단순화한 반추상의 인체를 표현한 작품을 시도하기도 했다. 유영교는 1980년대에 이탈리아에서 유학을 하며 이전보다 더욱 큰 크기의 석조 작품을 제작하기도 했다. 더불어 그는 석고 모형을 그대로 옮겨서 돌 조각으로 만드는 뿐따(punta) 기법이나 모형보다 확대시켜 제작하는 컴퍼스 기법 등 여러 기법을 다양하게 활용하기 시작했다.
유영교의 석조 작품은 크기와 기법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양식도 구상, 반추상, 추상으로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그는 재료 또한 화강암, 대리석, 사암 등을 두루 다루었으며, 대리석도 흰색, 검은색, 노란색 등 여러 색상을 사용했다. 유영교의 작품 주제도 다양하다. 그는 부부, 모자, 자매 등 가족의 모습을 다루기도 했으며, 다양한 자세와 형태의 여인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그는 기독교, 불교, 도교, 그리스 다신교 등 여러 종교주제를 다루기도 했다. 그는 '욥'(1982), '열반'(1991) 등 종교적인 설화 뿐만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1991), '구도자Ⅰ'(1980) 등 구도자의 모습도 오래 다루었다. '샘'(2000)은 구별이 되는 주제이다. 유영교는 물에 젖은 돌의 아름다움에 주목하여 거친 돌 위에 매끈한 돌을 올려 샘을 실내에 들여놓은 것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이 작품을 선보인 갤러리 현대에서의 개인전에서는 무용가 김명숙이 이 작품이 설치된 공간을 무대로 춤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유영교는 1997년에 대전SAY백화점에 움직이는 철제 조형물인 '만개Ⅰ'(1997)를 설치한 것을 계기로 움직이는 조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에 1999년에 개최된 그의 14회 개인전은 움직이는 조각들을 주제로 전시되었다. 유영교는 컴퓨터 시스템으로 작동하는 유압전동장치로 움직이는 조각을 제작하다가, 2005년경부터는 베어링(bearing)을 정교하게 설치하여 인공의 유압 시스템 없이 자연 바람에 의해 움직이는 작품을 제작했다. 그는 꽃, 열매, 곤충 등 자연의 모습을 변형한 형태로 작품을 제작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만개Ⅰ', '만개Ⅱ'(1999), '요요한 바람'(1999), '이른 봄'(1999) 등이 있으며, '환희'(2002), '나비 2003-3'(2003), '에어 조이'(2005) 등도 야외에 설치되어 대중과 가까이에서 만난 바 있다.
평가
유영교는 4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다양한 형태와 주제를 탐구하며 작품을 제작했다는 점에서 부지런하고 성실히 작업을 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또한 그는 실험적인 미술과 추상조각이 유행하던 때에도 구상 작품이나 구체적인 형태에서 변형시킨 추상조각을 제작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표현 방식을 고수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유영교의 작품들은 그 주제와 표현된 형태에 있어서 인간의 내면세계와 정신성, 인간과 자연에 대한 휴머니즘적 태도를 보여준다고 평가받는다.
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제공
영상-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구도 유영교전 촬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