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구도자 '김인태 사진전 선율(旋律)'
김승곤(국립순천대학교 석좌교수)
미국의 서부는 미국인에게 있어서 지정학적 관점에서 만이 아니라 정신적 의미를 지닌 상징적인 장소다. 많은 이민자와 개척자들이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고 증명하는 모험과 도전의 땅이자 미래를 약속 받는 기회의 땅이다.
회화적인 접근방식에서 벗어나 선명한 초점과 풍부한 톤을 특징으로 하는 엄격한 사진의 태도를 지향한 F/64의 등장 이래, 미국 서부의 자연경관은 사진의 독자적인 메커니즘을 통해서 예술을 추구하려는 풍경 사진가들에게 있어서 성지로 자리 잡아 왔다. 서부의 사진가들은 자연풍경을 통해서 대륙이 지닌 숭고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그들은 그림이 해온 방법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의 메커니즘을 통해서 실현할 수 있는 비전을 수도자적인 태도로 추구했다. 한국의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후, 1980년대에 LA로 이주한 김인태가 그런 서부의 사진의 전통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사진가로서의 새로운 자리를 잡아나간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15년 만에 서울에서 전시되는 이번 작품들은 주로 캘리포니아, 네바다, 오클라호마, 오레곤, 와이오밍, 아이다호, 몬테나 등의 자연풍경을 찍은 50여 점의 작품으로, 그 중에서도 그랜드 캐년과 브라이스 캐년, 모뉴멘트 벨리, 데스 벨리, 앤털로프, 에스펀 등 미대륙에서도 흥미로운 지질학적 특징들이 집중된 콜로라도와 유타, 아리조나 등 건조한 남서부 사암지대의 사진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두드러진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형성된 지층은 과거에 일어난 자연의 사건들에 관한 증인이자 기록자다. 완만한 호를 그리며 빨강과 황토색, 노랑과 흰색의 층으로 쌓인 코요테 뷰트의 ’웨이브‘의 모래 바위 계곡. 사막을 가로질러서 거센 바람에 실려 온 모래는 여러 겹의 완만한 패턴을 그리며 파도처럼 소용돌이치는 경관을 이룬다. 그는 쥐라기의 까마득한 시간에서부터 불어온 비바람에 의해서 침식된 거대한 사암의 물결이 크고 장엄한 스케일로 담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매크로적인 시각으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을 찾아내어 추상적인 조형을 출현시킨다. 이 지역 특유의 강렬한 태양의 광선에 드러난 웨이브의 경사면과 그림자에 묻힌 가장 어두운 부분들은 선명한 콘트라스 속에서도 톤과 질감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꽃과 식물은 지역이나 시대와 관계없이 자연의 생명력과 조형미를 표현하기 위한 소재로서 사진가들에게 영감을 주어왔고, 식물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에 관해서 사진을 보는 사람에게 많은 시사를 주고 있다. 김인태의 사진은 꽃이 결코 아름다움에 의해서만 정의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의 다른 한 부분은 다알리아와 튤립, 목련 같은, 시들어가는 꽃의 머리 부분만을 빛과 그림자, 깊은 흑과 백의 명료한 대비를 통해서 클로즈업으로 촬영한 식물 풍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스튜디오 안에서 라이팅을 구사한 고전적이고 형식주의적인 접근방식에서는 어떤 작은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는다.
상상을 초월하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형성된 자연의 조형미는 언제나 우리를 매료시킨다. 탁월한 카메라 워크에 의해서 출현한 계곡과 사시나무숲과 술렁이는 밀밭의 대 해원은 동양적인 섬세한 정서와 함께 장엄함과 우아함을 갖춘 대륙의 자연의 매력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지구 규모의 환경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지금, 자연에 대한 감동과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김인태의 작품군에서는 자연에 대한 그의 일관된 사진의 태도와 철학의 원점을 분명하게 읽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