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김기찬(1938-2005)의 ‘골목안 풍경’이 돌아온다. 인사동 갤러리 인덱스의 운영 주체(관장 안미숙, 디렉터 김지연)가 바뀌면서 전시장을 새롭게 단장하고 특별전 형식으로 <골목안 풍경>전을 연다. 그의 사후 18년 만에 박물관과 미술관이 아닌 갤러리에서 여는 최초의 김기찬 개인사진전이다. 그가 남긴 1만여 점의 사진 가운데 대표작이라 할 골목 사진 30점을 엄선해 선보인다. 기록사진이 어떻게 예술의 지위를 얻어왔는지를 이번 전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기찬은 골목 사람들을 위해 사진을 찍는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에게 골목은 단지 ’고향‘이었다. 그는 1968년부터 1990년대 말까지 소형 카메라를 둘러메고 서울역에서 염천교를 지나 중림동 골목길로 접어들곤 했다. 그것은 고향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중림동은 참으로 내 마음의 고향이었다. 처음 그 골목에 들어서던 날, 왁자지껄한 골목의 분위기는 내 어린 시절 사직동 골목을 연상시켰고, 나는 곧바로 ‘내 사진의 테마는 골목안 사람들의 애환, 표제는 골목안 풍경, 이것이 내 평생의 테마다’라고 결정해 버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런 나의 결정을 한 번도 후회해본 일이 없다.”(김기찬 작가노트, 2003)
김기찬의 골목 사진은 그의 말대로 ’골목안 풍경’이라는 제목의 연극 한 편을 보는 듯하다. 골목은 공부방이요, 거실이요, 주방이며 놀이터였다. 막이 오르면 고요하고 적막한 골목이 나타나고 어느 틈에 아이들이 왁자지껄 등장하고 어른들이 하나둘씩 나타난다. 아이들은 몰려다니며 놀고(<오징어게임>에서 보았던 놀이가 쏟아져나온다) 어른들은 이웃 사람들과 한쪽 모퉁이에 모여 앉아 일을 하거나 담소를 나눈다. 간간이 엿장수, 우편배달부, 물건을 머리에 인 행상이 지나간다. 무대는 가공된 세트가 아닌 실제 삶의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실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스틸사진을 찍었다. 비슷한 시기에 제작 방영된 TV 드라마 ‘전원일기’가 농촌생활을 그렸다면 김기찬의 사진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의 ‘골목일기’라고 할 수 있다. 종영된 ‘전원일기’가 아직도 재방송되듯이 우리는 ‘골목일기’를 다시 들춰본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이고 기억을 환기시켜주는 사진일테지만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에 내몰렸던 20세기 한국 기층민의 생활상과 시대상을 보여준다. 그의 사진은 건축계가 주목하는 ‘골목학’의 효시가 되었고, 경제발전을 이룬 한국사회가 그렇게 애써 지우고 잊어버리려 했던 그 시대 골목 사람들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삶의 궤적이 정지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