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품 이야기5 – 한만영
한국의 팝아트 선구자에 대한 자료를 찾던 중, 몇 가지 일화를 접하게 되었다.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선생님 초기 작업이 팝아트 적 경향을 띄고 있었다는 사실이나, 또 자신은 팝아트라고 주장을 하는데 남들이 팝아트가 아니라고 하는 조영남 선생님이나, 남들이 팝아트로 보는 것에 대해 스스로 팝아트가 아니라고 부인해 버린 한만영 선생님의 경우가 그랬다.
내가 한만영 선생님에 대해 알게 된 것은 한국의 팝아트 선구자를 찾아보는 과정에서 발견한 이름이었다. 한만영 선생님의 작품은 명화를 패러디 하거나, 실생활의 오브제를 과감하게 사용하여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그림을 극사실적으로 표현해내는 분이었기에, 극사실 화가라고 불리기에 더 적합하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 대중적 요소의 소재가 작업에 반영된 경향을 뛰고 있다는 사실에도 수긍하면서 팝아트 선구자에 대한 기대감을 가졌지만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이 팝아트가 아니라고 선을 그어 버림으로서, 내가 찾아 헤매든 팝아트 선구자 후보에서는 배제되었다.
그러나 한만영 선생님의 작업은 당시의 한국 미술에 대한 틀을 깨는 새로운 도전이었고, 매우 실험적이었다.
물론 그 시대의 많은 작가가 새로운 경향의 작업들을 우후죽순 선보였겠지만, 한참 한국 미술사 공부에 열을 올리던 터라 내가 먼저 접한 그림에 더 감정이 쏠릴 수 밖에 없었을 것임은 분명하지만,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의 눈으로 바라보아도 당시의 작가들 중 한만영 선생님만큼 테마가 분명한 작가도 드물다.
사실 20년 전 내 눈에 비친 한만영 선생님의 작업은 나로서는 매우 혼란한 분야였다. 이 그림, 저 그림 내가 좋으면 막 사면서 겨우 수업료 날린 초보 컬렉터였던 나는, 앞으로의 수준 있는 컬렉션을 하기 위한 도전이 미술사적 저평가된 작가 발굴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었다.
당시 비싼 그림을 살 돈이 없던 나로서는 이미 알려진 작가는 엄두도 낼 수 없었기에 내 나름대로 앞으로 비싸질 작가를 직접 고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당시에 소장 예정 작가 100명을 내 나름대로 선별을 하는 과정에 분야를 여럿으로 나누면서 보고 배운 용어를 총동원해 가면서 모노크롬 작가, 전위예술작가, 극사실 작가, 초현실주의 작가, 민중미술 작가, 팝아트 작가 등 수많은 분야를 쪼개고 쪼개면서 작가 발굴에 밤을 하얗게 보낼 때였다.
그런 와중에 한만영 선생님은 이미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올라 계셨지만 내 눈에는 정체성이 매우 불 분명 했었다. 팝아트작가인지 초현실주의 작가인지 극사실 작가인지 아니면 실험미술가인지조차 불분명했으니 일단 컬렉션 리스트에는 올렸지만 분야 정의는 내리지 못했고 지금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만 분명 한 것은 시대를 거슬러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내신 것에는 크게 공감을 하고 있다.
비싼 작품을 살 능력이 없던 나는, 소장 리스트에 올린 작가의 작품이 내가 감당할 금액에 나오면 그 그림을 구하기 위해 일본이고 미국이고 어디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었었다. 덕분에 지금의 단색화 혁명을 이끈 정상화, 박서보, 이동엽 선생 등의 작품을 일본 동경화랑에서 100호 한점을 1200만엔 (당시 환율로 900만 원 남짓)에 여러 점 구해온 기억은 내 컬렉션 역사에 가장 기억에 남을 만 한 일이다.
자랑할 만 한 대표작은 없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그동안 컬렉션 한 한만영 선생님의 작품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