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매체 예술가 윤진섭'
소장품 이야기4 – 윤진섭
'다매체 예술가 윤진섭'
내가 선생을 통칭하는 이름이다.
윤진섭 선생님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2007년부터였다.
이건용 선생님은 과거를 회상하시면서 윤진섭 선생님에 대한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 그래서 나는 윤진섭 선생님이 이건용 선생님과 동년배 정도로 알고 있었다.
내가 아는 윤진섭 선생님은 평론가였다.
그리고 전시기획자셨다.
그런데 이건용 선생님의 입을 통해 듣던 그 이름은 사뭇 달랐다. ST그룹 핵심 멤버로 선생의 젊은 시절 기억 한 부분에 분명히 자리 잡은 윤진섭 선생님은 이건용 선생님의 훌륭한 동료이자, 든든한 멤버였기에 나는 당연히 두 분이 친구인 줄 알았었다.
제법 시간이 지난 후 윤진섭 선생님이 우리 갤러리를 방문하시게 되어 선생님과 말씀을 나누던 중 선생님이 이건용 선생님보다 13년은 더 어리다고 해서 깜짝 놀랐었다. 그 어린 나이에 기라성같은 분들과 70년대 80년대를 주름잡던 아방가로드적 실험행위에 함께 참여하고 계셨다니 그저 경이롭기까지 했다.
사실 선생은 페이스북을 통해 나에게는 아주 친숙한 관계였다.
나는 오래전부터 선생의 활동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본 터라 선생의 예술적 행위나, 작가적 기질에 대해 흠모 해오고 있었다.
선생의 드로잉이 한창 페이스북에 올라올 땐 "그래 이거지~!!" 하는 희열감마저 느끼게 했다.
연필이며 크레용이며 고추장에 먹물에....
재료를 구분치 않고 닥치는 대로 사용하여 그림을 그려서 올리는데, 한편으로는 개발세발 한편으로는 탁월한 댓생력이 돋보이는 재미난 그림이 홍수처럼 쏳아졌고, 그동안 내가 주변의 작가들과 실랑이해 온 재료의 자율성이나 예술의 범위와 영역에 대한 속 시원한 한방이었다.
선생이 페이스북에 올리는 그림은 솔직히 컬렉터나 작가들이 보기엔 장난에 가까웠다. 특히 그림을 파는 갤러리 입장에서 보면 더더욱 그랬다.
낙서라고 표현하는 게 오히려 더 어울릴 만큼 선생의 작품은 장난끼 가득했다.
그런 그림을 바라보는 나는 윤진섭이라는 사람에 더 집중했다.
기획자이며 이론가이며 문필가, 행위예술가이며 사진가이며 화가인 그는 분명 달랐다.
선생의 그림은 완성된 그림보다는 그린다는 행위 자체에 더 의미를 두었다.
내가 이건용 선생을 모시고 그토록 미술계와 싸우던 "이것은 그림입니다."와 정면 배치되는 "이것은 그림이 아닙니다."로 바라볼 근거는 명확했다.
선생이 어떤 의미로 어떤 그림을 그리려는지는 알수없으나 그리는 과정이나 그려진 형태는 분명 그림이라는 '결과물'보다 '그리기'라는 행위에 더 집중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그것이야 말로 예술적 기질이라 생각하였고, 그렇게 나온 그림이 진짜 예술이라 생각했기에 어떡하면 선생의 작품을 한 점 구해볼까 고민한 시간도 있었다.
어느날
선생의 전시 소식이 전해졌다.
한걸음에 전시가 열리는 김달진 미술관으로 달려가 작품 두 점을 구입하고 나니 비로소 선생이 화가로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뒤 인사동의 인덱스 갤러리에서는 선생의 사진 작업 전시 소식을 접했고, 이번엔 출품된 작품 50점을 모두 다 가져오는 행운을 잡았다. 내가 작품을 다 살테니 가격이 얼마인지를 물어볼 때 갤러리 대표님이 매우 의아해 하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몇 달 후 공주의 서천상회에서 선생의 전시회 소식이 전해 졌을 땐 아예 작정을 하고 컬렉터들을 대거 동원하여 작품구매를 독려했을 만큼 선생의 작업에 대한 내 예술적 관점은 진심이었다.
난 예술이 무엇인지 많은 고민을 해 왔다.
내 미술 인생의 스승같은 이건용 선생님은 "예술은 천정에도 있고, 바닥에도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 예술이다."고 말씀하셨다.
그 쉬운 예술이 예술가들에 의해 너무나 어렵게 표현되고 있고, 또 포장되었다.
그런 가운데 윤진섭 선생님은 툭 던지듯 세상에 말한다.
"예술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