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덴티티 시리즈, 사모곡 잇는 내면적 자아에 대한 관조
 글_김윤섭(미술평론가, 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alohom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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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덴티티(identity)는 라틴어 ‘identitas’, ‘identicus’를 변형한 형태로 ‘동일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전적으로 아이덴티티는 ‘본래의 성질’ 또는 ‘본래의 가치’를 의미한다. 아이덴티티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다. 반면 이미지와 평판은 ‘남이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다. 아주 단순하게 아이덴티티를 정의해 보면 ‘내가 정의하는 나 자신’이다. 즉, ‘Who am I?’라는 질문에 스스로 만든 답안이라고 말할 수 있다.”

Castorpollux
Castorpollux

남의 의지나 시선에서 자유롭게 온전히 나를 바라본다는 것은 말처럼 그렇게 쉽지 않다. 김리원 작가 역시 내면적 자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찾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그 누구보다도 깊은 속앓이를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겪으면서, 스스로를 방어하며 단단해진 나이테는 어느덧 나를 지탱해주는 삶의 지혜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지난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형상이나 포즈들은 남다른 인상을 자아낸다. 마치 장편의 대서사시를 옮긴 연극의 단락들을 보는 것 같다. 다분히 극적인 요소로써 인물들을 표현한 것은 배우생활을 해온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려는 의지일 것이다.

De-aeseohsta
De-aeseohsta

새로운 주제로 변화를 꾀한 김리원의 신작들이 전하는 일관된 인상 중 하나는 ‘관조적 시선’이다. 관조(觀照)는 말 그대로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는 시선’을 일컫는다. 아마도 모든 사물의 참모습이나 아름다움의 진리는 이 과정을 통해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김리원 작가의 그림 역시 관객에게 일정한 거리에서 대상을 바라보도록 권하는 듯하다. 제각각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델들은 장편의 스토리텔링을 압축해놓은 포스터처럼, 장면마다의 주인공인 셈이다. 그 모습을 한참동안 쳐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그 배역에 감정 이입되어 갖가지 사연들을 만나게 된다. 모노드라마 못지않은 감동이 전해진다.

Legilimency
Legilimency

김리원의 아이덴티티 시리즈가 전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드라마(drama)적 요소’ 덕분이다. 다소 난해한 연극이라도 연출가의 유연한 독백(獨白)과 방백(傍白)의 활용이 있다면 극의 이해와 몰입에 큰 도움을 받게 된다. 김리원의 그림 속 주인공들 역시 관객을 위해 ―독백이나 방백을 통한―서비스를 잊지 않는다. 그리고 유려한 선묘 곡선의 흐름이나 세련된 색채들은 주인공 내면의 감정선(感情線)을 고스란히 대변해주고 있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들이 다시 면이 되듯, 김리원이 연출해낸 장면들은 ‘숙명적 우리 삶의 관계성’에 대한 투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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