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종숙 기자] 현대미술가 양혜규가 2022 제5회 코치-무지리스 비엔날레Kochi-Muziris Biennale에 참여한다. 인도의 서남부 케랄라Kerala 주에 위치한 대도시 코치Kochi에서 2년마다 개최되는 코치-무지리스 비엔날레는 인도 내 규모가 가장 큰 미술행사로, 고대 항구도시 무지리스Muziris가 자리했던 해당 지역이 지닌 역사적 의의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가진 현대미술가들의 작업을 선보여왔다. 이번 코치-무지리스 비엔날레는 인도 출신 싱가포르 기반의 현대미술가 수비기 라오Shubigi Rao가 예술감독을 맡았으며, ‘우리의 혈관에는 잉크와 불이 흐른다In Our Veins Flow Ink and Fire’라는 주제 아래 세계 각지의 작가 80여 명(팀)이 참여한다.
제5회 코치-무지리스 비엔날레에서 양혜규는 새롭게 커미션 받아 제작한 〈소리나는 물방울 – 강철 봉오리Sonic Droplets – Steel Buds〉(2022)를 선보인다. 감독 수비기 라오가 비엔날레 전시장에 들어서는 관객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도록 기획하고 배치한 이 의뢰작은 코치-무지리스 비엔날레의 주요 전시 장소 중 하나인 유서 깊은 아스핀월 하우스Aspinwall House에 전시된다. 십만 개 이상의 스테인리스강 방울로 이루어진 이 설치작품은 작가가 〈소리나는 물방울〉이라 명명한 새 작업군의 본격적인 첫 행보로 여겨진다.
양혜규 조각 세계의 주요 재료인 금속 방울은 2013년 이후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작인 〈소리나는 조각〉은 다양한 의례 속 방울이라는 오브제의 사용에서 영향을 받았다. 한국 샤머니즘부터 유럽의 이교도적 전통에 이르기까지, 방울 소리는 인간의 영역과 영적 세계 사이를 매개하는 기능을 해왔던 것이다. 양혜규는 이처럼 대부분 주변화되는 운명에도 불구하고 수 세기를 넘어 지속되어온 민속 전통의 탄력적 지위를 파고들고, 이러한 작가의 지속적인 관심은 〈소리나는 조각〉 연작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최근 선보여온 연작 〈소리나는 동아줄〉의 경우 강철 방울과 강철 링이라는 차고 딱딱한 재료로 이루어져 있지만 막상 그 몸체는 매우 유연하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흥미로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존의 딱딱한 조각과는 다른 이 행보의 연장선으로 〈소리나는 물방울〉이 기획되었다.
다섯 폭으로 이루어진 〈소리나는 물방울〉은 먼저 아스핀월 하우스 공간의 중앙에 위치한 두 기둥을 연결하고, 각각의 기둥에서 전시장 공간의 구석으로 면을 연결함으로써 전시장을 크게 네 개의 기하학적 공간으로 나눈다. 관객은 이렇게 커튼 같이 드리워져 공간을 구획하는 〈소리나는 물방울〉을 지나야 다음 전시공간으로 이동하게 된다. 따라서 작가가 점유한 공간은 다른 공간으로 이행移行transitory하는 중간자적 역할을 맡는다. 관객은 〈소리나는 물방울〉을 통과해 이동하는 가운데 작품을 음향적으로 직접 활성화하고, 동시에 자신을 그 음향의 장 안으로 스스로 초대하게 되는데, 이는 다양한 영적 및 세속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의례 속 청각적 요소를 상기시킨다.
작가는 〈소리나는 물방울〉의 기획에서 지울 수 없는 참조물로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élix González-Torres의 작업을 언급한다. 비즈로 만들어진 이 일련의 설치물은 재료가 상이하지만 매우 비슷한 상황을 연출하고, 정치성을 구상적이거나 서사적인 언어를 통하지 않고, 추상성과 몸의 감각을 동원하여 공감각적으로 다가선다.
〈소리나는 물방울 – 강철 봉오리〉를 둘러싼 채 사방에 광활하게 펼쳐진 양혜규의 벽지 작업 〈배양과 소진Incubation and Exhaustion〉(2018)은 유럽 이교도 문화와 민속에 대한 양혜규의 오랜 관심을 반영한다. 양혜규는 남부 프랑스 옥시타니Occitanie의 문화 전통과 기술 산업의 발전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고추, 마늘, 화염, 안개, 연기, 의학 수술 로봇, 지푸라기, 그리고 방울과 같은 다양한 요소들을 탈위계적, 비연대기적으로 한 평면에 불러 모은다. 그리고 여기에 코치의 지역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또 한번 장소성의 중첩을 꾀한다.
양혜규의 작업세계는 종이 콜라주에서 수행적 키네틱 조각, 전시장을 채우는 대규모의 다감각 설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이질적인 역사와 전통을 그만의 독창적인 시각 어법으로 엮어낸다. 비언어적이고 추상적인 방법으로 관객들과 소통하고자 작가는 다양한 재료와 공예기법을 활용하는데, 이때 그는 각 소재의 익숙한 맥락으로부터 추출해내 유의미한 사회역사적, 동시대적 의미를 새로이 부여해오고 있다.
작가 소개
양혜규는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현재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작업하고 있다. 다양한 작품과 왕성한 전시로 동시대 작가들 중 단연 돋보이는 행보를 보여온 그는 1994년 독일로 이주하여 프랑크푸르트 국립미술학교 슈테델슐레Städelschule에서 마이스터슐러 학위를 취득하였고, 현재 모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8년 아시아 여성 작가 최초로 독일의 권위 있는 미술상인 볼프강 한 미술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10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수여하는 대한민국문화예술상(대통령 표창) 미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며, 2022년 싱가포르 비엔날레가 주최하는 제13회 베네세 상을 한국 작가 최초로 수상했다.
코펜하겐 국립미술관(2022), 영국 테이트 세인트 이브스(2020), 국립현대미술관(2020), 사우스 런던 갤러리(2019), 몽펠리에 라 파나세 현대예술센터(2018), 쾰른 루트비히 미술관(2018), 베를린 킨들 현대미술센터(2017), 파리 퐁피두센터(2016), 베이징 울렌스 현대미술센터(2015), 리움미술관(2015), 스트라스부르 근현대미술관(2013),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2012), 미국 아스펜 미술관(2011), 미네아폴리스 워커아트센터(2009) 등 전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으며,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2009) 한국관 대표로 참여했다.
올해 작가는 오카야마 아트 서미트와 싱가포르 비엔날레 등 참가를 통해 지역적으로 다양한 작품 발표를 이어오고 있다. 오는 2023년 상반기에는 각각 브라질 상파울루 피나코테카 미술관에서 1월에, 벨기에 겐트 현대미술관S.M.A.K에서 4월에 있을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2024년 10월에는 영국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서베이 전시가 예정되어 있으며, 이 전시는 유럽순회전으로 이어질 계획이다.
수비기 라오는 1975년 인도 태생의 싱가포르 작가로서 에칭, 드로잉, 비디오, 출판, 아카이브를 넘나드는 다매체 프로젝트 및 설치를 통해 고고학, 도서관, 뇌과학, 역사와 거짓말, 문학과 폭력, 자연사에 대한 관심을 엮어낸다. 작가는 금서 소각의 역사에 대한 10여 년 동안의 리서치를 담은 책 〈펄프: 금지된 책에 대한 짧은 전기〉로 싱가포르 문학상(2020), APB 시그니처 예술상 심사위원상(2018) 등 다수의 예술상을 수상하였고, 제2회 싱가포르 비엔날레(2008), 제10회 타이베이 비엔날레(2016), 제3회 푸네 비엔날레(2017), 제4회 코치-무지리스 비엔날레(2018), 제10회 아시아 태평양 트리엔날레(2021-22)에 출품하였으며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2022) 싱가포르관 대표로 참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