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낭만을 부추기는 우주에 관한 아름다운 서사시

신항섭(미술평론가)

  인간은 아주 먼 옛날부터 하늘을 바라보며 우주에의 꿈과 동경 그리고 여행을 꿈꾸었다. 무엇보다도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이 인간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부단히 숭배해왔다. 인간으로서는 태양이 없는 세상이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태양과 더불어 밤을 비추는 달 또한 인간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았다. 우주에의 꿈은 해와 달 그리고 아주 멀리서 반짝이는 별과 함께 시작되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우주 공간은 여기에 한정됐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과 함께 망원경이 만들어지고 우주에 전파망원경을 설치하여 성운, 성단, 은하와 같은 상상력 밖의 세계가 무한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외선 가시광선을 이용한 허블망원경이나, 적외선을 이용한 제임스웹 전파망원경은 우주에 떠 있는 채로 우주 공간을 자연풍경처럼 아름답게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하정열 작가 작품
하정열 작가 작품

 

  하정열은 우주를 소재로 작업한다. 우주를 소재로 한 그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일부 작가들은 천체사진을 기반으로 지식과 상상력을 가미하여 우주의 이미지를 그려냈다. 이에 반해 그는 천체사진도 참고는 하지만 재현적인 이미지에 근사한 작품과는 완전히 다른 조형미에 초점을 맞추었다. 따라서 부분적으로는 지식에 근거하되 전체적인 이미지는 동서양의 사상 및 철학을 근간으로 하는 색다른 우주 풍경을 지향한다.


  인간이 볼 수 있는 우주란 밤과 낮의 하늘, 거기에서 존재를 드러내는 해와 달과 별에 국한한다. 하지만 과학의 손을 빌려 아름다운 우주를 자연풍경처럼 볼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덧붙여 예술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우주 풍경은 한층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가 천문학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조합해내는 우주 풍경이 그렇다. 예술가적인 감수성으로 지어내는 우주의 모습은 현실적인 이미지처럼 다가온다.
  허블망원경이나 제임스웹 전파망원경이 포착한 우주의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인간의 시지각 너머의 세계를 현실적인 이미지로 가져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망원경 사진도 결국은 실제를 포착하는 사진의 이미지일 따름이다. 따라서 그는 이를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회화적인 이미지로 변환할 수 있는가를 고심했다. 이러한 문제 제기를 통해 그는 우주 회화라는 독자적인 형식을 만들어가게 되었다.


  그의 우주 회화는 모두 실재하는 우주의 실상에서 비롯된다. 막연한 개인적인 상상의 소산이 아니라, 우주와 그 현상을 근거로 하되 예술가적인 감각을 덧붙여 시각화한다. 우리의 시지각은 고작해야 해와 달과 별을 인지하는 정도에 그친다. 물론 별의 집단인 은하수도 육안 관찰이 가능하다. 그리고 일식과 월식이라는 우주의 현상 또한 실제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우주 현상을 포함하여 그 전체를 아우르는 무한한 우주가 그에게는 그림의 소재인 셈이다. 다양한 형태의 성운을 함축적인 이미지로 표현하는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늘에서 펼쳐지는 태양계의 신비스러운 현상이 그림의 소재가 된다. 하늘, 즉 무한공간에서 벌어지는 태양계의 모습을 통해 우주의 거대한 실상을 깨닫게 되면서 그의 조형적인 세계는 무한히 확장된다.


  그는 현실적인 시각에서 출발해 과학기술이 찾아낸 놀라운 우주의 모습을 통해 조형적인 상상의 날개를 편다. 그 상상의 날개는 우주에 대한 지식의 축적을 통해 한층 구체적이고 실제적이 된다. 하지만 그가 조형적인 언어로 펼치는 우주는 일반적인 상상력을 뛰어넘는다. 우주에 관한 지식을 근거로 한다지만 그가 보여주는 우주의 이미지는 단순한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조형적인 규칙성을 가진다. 가령 색채이미지는 음양오행의 오방색을 기반으로 한다든지, 천지인의 조합을 통해 풍경으로서의 개념을 탑재하는 건 물론이요, 밤과 낮, 하늘과 땅, 태양과 달이라는 음양오행으로 설명되는 이미지를 캔버스 위에 펼쳐 놓는다. 이는 우주를 시각적인 이미지로 설명하는데 필요한 조형적인 장치이자 기교이다. 대다수 작품이 이와 같은 조형적인 논리에 의해 전개된다.


  그의 그림이 허황하지 않은 것은 관념성에 물들지 않는, 시지각으로 인지되는 사실에 근거할 뿐만 아니라, 천지인, 즉 하늘과 땅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대자연인 지구도 우주의 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데 있다. 어쩌면 시계 밖의 세계, 즉 우주란 인간이 알고 있는 사실은 물론, 상상조차 훨씬 뛰어넘는 신비로운 영역일 터이다. 그렇더라도 그의 경우 우주란 하늘 밖의 세계이면서도 우리가 사는 지구까지 아우른다는 점을 적시한다. 즉 대자연과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인간의 존재 또한 우주의 한 부분이라는 명확한 인식이 전제된다. 따라서 우주에의 상상을 구체화하여 실감이 나도록 보여주고자 한다. 어쩌면 그림 속에 드러나는 우주와 연관성 있는 이미지들은 때로 상상을 구체화한 결과물일 수도 있다. 이는 동시에 확장된 사유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태양과 달, 별과 성운과 성단 그리고 은하수 등 밤하늘에 관찰이 가능한 우주의 모습을 화폭에 담는다. 그가 그림으로 변환하는 우주의 모습은 화려한 원색, 즉 오방색을 중심으로 하는 아름다운 색채이미지를 가진다. 우주가 신비로운 현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지만 그림은 현실에 존재하는 그 자신, 즉 예술가의 미적 감수성과 만나면 우주가 한층 현실처럼 느껴진다. 다시 말해 아름다운 시각적인 이미지로 해석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연을 재현하는 그림의 형식과 다른 것은 시적인 함축이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어찌 보면 그의 우주 그림은 우주를 빙자한 시화, 즉 시적인 서정성을 담은 시적인 그림일 수도 있다. 우주를 촬영한 사진을 참고로 하는 일반적인 우주 그림과 달리 그의 그림은 문학적인 감수성 및 이해가 선행하고 있다. 그가 화가이자 시인이라는 선입견에서가 아니라 확실히 재현적인 그림과는 다른 의미, 즉 내용을 중시하는 그림으로서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는 우주 회화를 문학과 사상과 철학 그리고 종교까지 혼합하는 형태로 표현한다. 단지 상상의 산물이거나 또는 우주의 지식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시적인 함축을 통해 내용을 만들어낸다. 우주는 시지각 너머의 세계이지만 문학적인 이해 및 상상이라는 도구로 그 자신과 우주의 교감을 회화적인 이미지로 변환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우주 회화는 간결한 구조를 지향한다. 우주를 형성하는 해와 달 그리고 별의 이미지는 모두 둥근 원형임을 전제로 하기에 그의 작품의 기저를 이루는 조형적인 패턴은 원형이다. 그 원형의 이미지를 이리저리 조합하고 재구성하는 형식으로 아름다운 시각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여기에다 문학적인 서사와 시적인 정서가 가미됨으로써 서정성까지 깃들이게 된다.


  그의 작업에서 색채이미지는 오방색을 기조로 한다. 음양오행이라는 동양적인 사상을 색채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이 오방색이다. 우주 만물은 태극, 즉 음과 양이 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음양오행의 개념은 다름 아닌 천지창조와 같은 개념이다. 거꾸로 말하면 우주 만물이 생기게 된 그 시원을 좇아가는 여행이 음양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음양오행은 우주원리를 분석하는 일종의 기호체계로, 이를 사계절의 순환과 관련지어 해석한다. 삼라만상은 생멸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으며, 이를 음양오행의 작용으로 본다. 그뿐만 아니라 소우주라고 하는 인체 역시 음양오행과 결부시킴으로써 생멸의 순환 작용에 따른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면 그의 우주 회화는 동양사상인 음양오행에 근거하여 해석할 수 있으며, 실제로 색채이미지나 형상의 구성 등은 모두 여기에 적용된다.
  그런가 하면 기독교의 창조설과도 긴밀한 연관성을 가진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우주의 존재를 설명하는 데는 과학을 떠나 여전히 창조설은 설득력이 강하다. 그 자신의 개인적인 신앙과도 결부되는 창조설에 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회화적인 이미지로 이행한다. 우주 삼라만상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철저히 계획되고 설계된 어떤 절대자의 영역에 속한다는 믿음이 회화적인 이미지로 표현되는 것이다.


  어느 면에서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실적인 상황은 혼돈의 연속인지 모른다. 옳고 그름이라는 문제를 떠나면 세상은 하나로 통합될 수 있다. 그는 이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이고 그림을 통해 융합의 논리를 제시한다. 융합에는 사랑과 존중과 화해가 전제조건인데, 이를 실천하는 일이야말로 현대인이 직면한 과제일 터이다. 그림의 역할 가운데 시각적인 이미지를 통해 심미 세계를 보여주는 일도 그 하나이지만, 때로는 계몽적인 역할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숨기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림의 사회적인 역할을 외면하지 않는다.     동서양의 사상과 물질을 융합하는, 우주를 주제로 한 창의적인 작품세계를 펼쳐온 그가 세계적인 우주화가로 발돋움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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