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근 (미술평론가)
회화의 본질은 생명에 대한 이미지를 드러내는 일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작가는 87년 첫 개인전을 가진 이후 14회에 걸쳐 줄곧 생명의 세계를 다루었다. 작품명제도 《자기회귀》를 비롯해서 《물질에서 생명에로》, 《생명의 숨》그리고 현재에 이르러 《생명률(the rhythm of life)》이라는 명제로 회화적 표상에 있어서 생명성의 표현 가능성에 대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다." 라고 한 이 자전적인 언급만큼 그 자신의 작품세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표현은 없어 보인다.
이제 그는 만화경이란 명제로 후기 새로운 표현의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회화란 이념이나 철학의 문제 보다는 화가가 가진 이미지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 화가는 그가 가진 세계를 그 자신만의 우주로 하여 스스로 만들어 놓은 카데고리에 자신의 모든 세계를 던지고 있다.
모든 회화가 이미지의 표현에 속하지만 신중덕은 생명에 대한 이미지를 바탕에 깔아놓고 일정한 패턴에서 출발했다. "일정한 패턴"이란 그의 작품에서 빈번하게 발견되는 그림속의 형태로 2003년 전후의 <생명률>이란 시리즈 작품들에서 나타난다. 그 형태는 쉽게 구별 할 수 없지만, 일정한 문양으로 이리저리 옮겨 짜 맞추어 대부분 질서 정연하게 화면의 바탕을 지키고 있다. 그들은 화폭의 공간과 공간사이를 자연스럽게 연결하기도 하고 서로 지워가며 일정한 유형의 흔적을 남긴다. 이때의 문양은-그 자신이 말하듯- 의미가 배제된 단순한 형태에 불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배경은 그 본질적인 이미지를 살려내는 바탕구실을 성실하게 해내고 있다. 예를 들면 스스로 하나의 문양이 어울려 독자적인 구조적 형태를 지니지만, 그것들은 위에 더해질 형상을 위해 희생하며 그것들과 결정적 긴장관계를 이룬다. 그의 작품은 이런 긴장관계 안에서 질서 있게 변화 해왔다.
초기에는 이 형태들이 일정한 규칙으로 반복되어 조형화 되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좀 더 자유롭게 화면에 자리한다. 그 형태의 기본이 되는 조형언어는 생활주변에서 쉽게 발견되는 사물들로 벌레라든가 모과, 꽃, 인체 등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것들을 쉽게 발견할 수 없지만 때로는 구체적인 형상을 암시하기도 하고, 인체의 형상이 해체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이번의 작업들은 이전의 식물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보다 과감하게 생략 되어 표출된다.
그는 생명과의 결합을 이미지의 등장과 생략 그리고 해체의 단계로 압축한다. 사물을 기호로 다룬다든가, <흑과 백>, <사물과 그림자>, <의식과 무의식> 등 대비의 형식으로 요약하는 이 테크닉은 그의 회화가 기하학과 추상적 양식과의 혼합형임을 말해준다. 이처럼 신중덕은 기본적인 조형을 사물의 모습에 두고, 인체의 이미지를 해체하면서 재조립하는 독특한 구성의 회화양식을 보여준다. 아크릴로 처리된 바탕, 다시 그 위에 반복적인 꼴라주작업, 그 위를 엷게 덮어씌운 반투명의 색감, 마지막으로 예정된 이미지를 집어넣는 과정 등 치밀하게 이루어지는 그의 작업과정과 태도는 꼼꼼하며 계획적이다. 특히 전면회화의 성격과 이중 이미지를 균형감 있게 처리하고 있는 표현과 여백 등은 그의 회화적 특성을 한결 돋보이게 한다. 캔버스에 반복적으로 스며든 색채와 화면 속에 침투된 은밀한 이미지는 인체의 변형으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왜 그는 새로운 회화의 기법으로 인체의 형상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일까? 이는 인체의 형상이 식물의 이미지보다 더욱 강렬한 상상력과 아이콘의 욕구를 가져다주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화면 속에서 자신과 일체화되는 아이덴티티의 욕망을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그가 인체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인용하기보다는 변형시키는 방법들을 선택 하는 것도 주목 할만하다. 여기서 우리는 추상양식과 생명 이미지의 조립을 통해서 이제 신중덕만의 독자적인 세계가 형성되었음을 예감할 수 있다. 신중덕의 그림에서 생물학적 형태는 자연계에서 유래한 놀랄만한 이미지의 정서로 유연성을 확보하고 있어 부분적으로는 아쉴 고르키를 연상시킨다. 물론 근래의 회화에서 그는 감칠맛나는 은유적인 구성으로 인체의 부드러운 형상을 칼라 풀한 화면에 풀어내고 있으며, 이것이 그가 일관되게 추구했던 생물의 형태적 형상화이다. 가장 최근 보여주는 작업들에서 그의 인체가 더욱 에로스적인 욕망의 차원으로 높아지고 있음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다양하고 매혹적인 색채로 생명의 이미지를 더욱 풍부하게 구사한다.
이제 신중덕은 식물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인체를 해체하면서 다양한 색채와 형상으로 후기 그만의 양식을 창조하고 있다.
이제는 만화경이란 명제로 숫자의 기호화와 인물의 하모니의 세계가 그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고백한 "예술가란 어떤 의미에서든지 작은 창조자"이며, 예술가가 하는 일이란 "결국 혼돈(chaos)에 질서(생명률)를 부여하는 것" 이란 고백은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들려 줄만한 금싸라기 같은 금언이자 자신의 작품세계를 웅변하는 불문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