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폐허라고 해서 거칠고 황폐한 것들만 잔존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철원의 노동당사를 찍은 서동엽의 사진은 보여준다. 폐허는 부서지고 무너져내리는 긴 시간을 통해 새로운 풍경을 쌓아 올렸다. 한때 창문이었던 사각과 반타원형의 프레임들은 유리와 창틀이 있던 자리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담음으로써 건물 벽면 전체에 총천연색 도형을 가득 수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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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사물도 마찬가지다. 작은 갯바위들 사이에 반쯤 물에 잠긴 TV가 놓여있는 사진을 보자. 어느 바닷가인지 알 수 없지만, TV가 있어야 할 장소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고장 나 버려진 이 사물은 그러나 갯바위와 꼭 닮은 그림자를 수면에 드리운 채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심지어 바위가 반사된 모니터 화면은, TV가 작동 중인 것 같은 착시마저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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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폐허와 사물들의 이상한 좌표는, ‘수학자’ 사진가 서동엽의 마음을 흔들었다. 그는 중형카메라의 수열을 작동시켜서 정사각의 프레임 안에, 이 풍경들을 안착시켰다.

생애의 대부분을 수학자(한국과학기술원 KAIST 수리과학과 교수)로 살아 온 그는 또한 20년 가까이를 재야 사진가로서 혼자 사진을 찍어왔다. 그리고 그 낱낱의 사진들은 쌓여서 서동엽의 사진 시리즈 <Integration of time 시간의 축적>을 이루었다. (*Integration은 ‘적분’을 뜻하는 수학용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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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학자다. 평생 일반인들과 터놓고 교류하기 힘든 다소 동떨어진 세상을 연구하면서 살아온 사람이다’라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그는 “그래서인지 세월의 때가 묻고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진 피사체에 눈길이 간다. 사진적 감성을 자극하는 피사체를 발견하면 마치 엉클어지고 꼬여버린 연구의 실타래를 풀어줄 한줄기 실마리를 찾아낸 기분이다. 왜 하필 낡고 누추한 곳을 찾아가는가? 그곳에는 깊은 호흡으로 느껴야만 찾아낼 수 있는 피사체가 꽁꽁 숨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만큼 찾기 어렵고 또한 찾고 나면 그만큼 기쁘다. 그 점 또한 수학과 닮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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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누추한 곳’이 우리가 사는 이 세계의 한 지점을 구성하는 ‘새롭고 조형적인 풍경’으로 재탄생하는 신비가 <Integration of time 시간의 축적>의 사진들 속에 있다.

수학자가 찍은 ‘수학적인, 너무나 수학적인’ 사진들 30여 점이, 10월 18일부터 2주간 류가헌 전시2관에서 전시로 선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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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엽 Suh Dong Youp

서동엽은 사진을 통해 삶이 남기고 간 흔적을 기록하여왔다. 그러한 흔적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새롭게 전하는 메시지를 찾아왔다. 낡고 허름한 공간에서 삶의 희로애락이 시간의 흐름에 마모되고 증발된 후 남겨진 차분하고 나직한 외침을 들으려 노력한다. 이제 지난 20여 년간 쌓아놓은 노력의 기록들을 처음으로 전시회를 통해 자신만의 아카이브에서 꺼내려 한다. 

서동엽 웹자보

1977.2 서울대학교 수학학사
1984.5 미국 Rutgers 대학 수학박사
1985.8~2021.2 한국과학기술원 (KAIST) 수리과학과 교수
2021.3~현재 한국과학기술원 수리과학과 명예교수
2011.1 ~2012.12 대한수학회 회장
2011.1~2011.12 기초과학학회협의체 회장

2000~ 현재  재야 사진작가
2013 이후 수차례 KAIST에서 세미나 “사진과 과학”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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