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기원에 새로운 깃발

김종근 (미술평론가)

이두식의 작품들을 보면 동등한 형상은 아니지만 미술사에서 역사적 작품으로 손 꼽히는 사실주의의 대표적인 작가 쿠르베의 “생의 기원( le origin du monde )” 을 떠올린다.
이러한 떠올림은 이두식이 이미 이러한 것을 염두에 두고 그의 작품에 제목을 이렇게 설정 한것은 아닐까  하는 가정을 갖게 한다. 

생의 기원에 새로운 깃발
생의 기원에 새로운 깃발

물론 쿠르베의 작품과 이두식 작품의 회화적 세계는 애초부터 그 시작과 출발지점이 다르다.
쿠르베는 말했다. 내게 천사를 보여달라 그러면 천사를 그리겠다고. 그리하여 그는 보이는 사물을 실제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사실주의 기술을 택했다 , 그러나 이두식은 한때 그 사실주의에 탐닉하지만 그것을 유일한 무기로 삼지 않고 그 위에 에로티시즘이라 불리는 모티브들과 탁월하게 결합시키고 있다 .

이두식은 이러한 기량과 독특한 세계관으로 일찍이 세칭 인기와 유명 작가의 반열에 등극한 보기 드문 작가이다.
한때 동양화를 지망 했던 화가로 , 화가가 안 되었으면 드럼 연주자가 되었을 사람,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할 빠른 그림 솜씨와 빼어난 묘사력 , 엄청난 제작을 하는 다산작가, 두주불사하는 술실력, 거침없고 호탕한 성격 , 부리부리한 인상, 영화미술일에 심취한 15년, 미술계의 마당발 등등 그의 별명은 그의 세계 만큼이나 열정적이며 강렬하고 인상적이다.  

생의 기원에 새로운 깃발
생의 기원에 새로운 깃발

이두식의 화가로서의 출발은 1960년대 후반 화단의 화려한 데뷔에서 시작한다. 그에 관해  이야기 할 때 누구나 제일 먼저 꺼내는 것은 일찍이 돋보인 괄목 할만한 수상 경력이다.
홍익대학교 졸업반 시절의 신인 예술전에서의 장려상과 뒤 이은 재야작가 중심의 단체로 참신한 작가의 발굴에 역점을 두었던. 新象展에서의 최고상등은 예술가로서의 그의 앞길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가 입상했던 작품들은 동시대 한국현대미술의 주요한 흐름이었던 60년대 앵포르멜의 열기와 추상표현주의에 휩싸여 있던 시대로 그 당시 화단의 분위기를 구체적으로 반영한다.

생의 기원에 새로운 깃발
생의 기원에 새로운 깃발

그러나 畵題적으로 볼 때 서구 회화의 인식에 빠지기 쉬운 즈음에 전통적인 세계인 “ 만다라 ”또는 “단청의 색상을 연상 시키는 祭시리즈”등 무속적인 세계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는 것은 그의 회화세계를 통시적으로 볼 때 예사 스러운 일이 아니다. 뿐만아니라 화풍전개에 있어서도 주목 할 만한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 그림들에서 기법과 테크닉등 모든 방법적인 원용을 가져 온것은 아니다.
이 시기에 제작된 앵포르멜과 추상표현주의류의 작품들과 비교가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앵포르멜이 시들해지고 추상표현양식이 한바탕 지나가 냉각기에 접어들어 기하학적인 화면구성이 돋보일 때 1974년 종이에 수채로 그려진 <평화>라는 작품을 남기고 있다. 그는 다소 샤머니즘적인 분위기와 형상성이 있는 그로데스크한 인물 표현에서 또 다른 세계로의 변신으로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는데  이 그림 중 비교적 작게 표현된 여자의 희극적인 여체표현을 주의 해 볼 필요가 있다 .

왜냐하면 바로 이러한 모티브들이 1975년 이후 집중적으로 그의 회화에 중요한 조형적 요소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생의기원, 그 에로티시즘,그의 그림에는 종종 에로티시즘이 숨어 있다. 그러나 그의 에로티시즘은 그의 회화에 본격적인 주제가 아니다 . 그는 여체의 신비라고 불릴 수 있는 부분들만을 집중적으로 묘사한다. 
그 기법은 드로잉적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감각적으로 에스키스의 속성들을 전면적으로 드러내는데 있다.
이러한 기법과 시기는 1975년 에서 1987년까지 오랫동안 그의 화풍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한 때 이두식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 작품들은 대부분 종이 위에 연필 드로잉을 한후 수 채화로 작업을 완결하는 형식으로 당시 분위기로서는 이채로운 작업으로 불려졌다.

생의 기원에 새로운 깃발
생의 기원에 새로운 깃발

이름하여 “생의 기원”이라고 불리는 이 작업들은 먼저 불명확한 외형의 이미지들을 중심에 놓고  그 가운데 씨앗같은 식물적 대상들을 정밀하게 묘사 해 놓는 고도의 장치와 기법을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다.
이들 씨앗의 형태들은 때로는 과감하게 생략 되거나 변형을 시켜 명확하게는 아니지만 여체의 생식기 부분이나 클로즈업해서 드러내는 양식들과 조화를 이루어 환상적인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그의 회화가 가지고 있는 에로티시즘적인 일면들을 볼 수가 있다. 그것은 여체의 유방이나 특정한 부분을 연상 시키는 리얼한 묘사 이다. 아주 구체적으로는 아니지만 이 부분적인 것들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암시적이고 시사적이다.

여기서 우리는 70년대 중반 당시의 화단의 분위기가 극사실로 치달았던 일부의 경향을 염두에 둔다면 이 때를 전후해서 그가 극사실 기법으로 관심을 가졌던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
특히 타고난 감각과 묘사력으로 이름을 얻은 그의 체질로 볼때 이런 표현적인 관심은 능히 예상이 가능한 것이었다.
감각적인 세계에서 여체가 가져다주는 사실적인 모습의 매력은 지속적으로 그의 화면을 지배하는 에로티시즘의 적극적인 반영이기도 했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그의 화면은 서서히 바뀌었지만 그의 여체의 표현은 지속되었다.
80년대 중반부터 제3기에 그의 작품들은 보다 강렬하고 폭발적인 인상으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생의 기원에 중심적인 기법이 드로잉과 수채화에 의존한 극사실 묘사에서 강력하고 폭발적인 색채가 화면속에 뛰어들어 왔기 때문이다.
그의 예술세계는 손이 주무기인 시대로 화단에서도 가볍게 치부하거나 인식해 왔던 드로잉의 아름다움을 띄우는데 기여 했다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그의 공로이다.

생의 기원에 새로운 깃발
생의 기원에 새로운 깃발

그러나 연필 드로잉과 수채로 대표되는 그의 화풍은 커더란 전환을 맞게 되는데 그러한 이유는 명백하지 않다. 다만 윤진섭이 그의 작가론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소재나 주제 그리고 색채에서 한계를 드러 내고 있다는 점을 그 자신도 인지하고 있었다고 보는것이다. 
더욱이 그의 작업이 리얼 한것을 전제로 할 때 그의 회화에 내재된 한계성은 가중 된다.여기에서 그가 새롭게 변신 한것이 바로  <도시의 축제>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는 대부분 캔버스 작업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다만 사실적으로 처리 되던 극사실 의 정적인 묘사는 사라지고  다이나믹하며 거칠은 자유분방한 필선과 격정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색채의 구사가 화면을 압도하고 있다.
오광수는 이것을 “생명에 넘치는 내면의 에너지 구현” 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의 세계는 대단히 앵포르멜적인 요소와 사실적인 요소가 간헐적으로 '生의 起源'에서 보이는 여체에 대한 묘사가 기묘하게 자리한다. 
뿐만 아니라 새롭게 나비, 물고기, 잠자리, 계단등의 이미지가 색채와 조형성과 결합하여 조화를 이루는 양식을 구축하게 된다 .

이는 마치 추상과 구상과의 만남 , 자연의 이미지의 새로운 조형화로 이해되기에 부족하지 않다. 그의 이런 기술적 화면 구성속에는 색채들이 빚어내는 음악성 넘치는 붓질과 함께 이두식 회화의 독창적인 조형성과 마크 형성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
물론 간과하기 쉬운 그만의 독특한 기법 즉 한 때 문인화가를 지망했었기에 가능했던 농담기법의 적절한 구사, 평면의 인상을 입체감 있게 각색 시켜주는 브러쉬 작업등은 '도시의 축제' 시리즈를 시각적으로 완결된 회화형식으로 전이케 한 결정적인 요소들이었다.  
특별히 그의 회화에서 보이는 드로잉적 붓터치와 속성들은 종이 작업은 물론 캔버스 작업의 전편에서 지속적으로 그리고 영향력있게 나타난다 . 때로는 동양화의 농담의 극치를 보는 듯한 즉흥적이고 직접적인 기법으로 열정과 관능이 뒤 엉켜 빚어내는 오케스트라 같은 감성을 열어 보이고 있다.

생의 기원에 새로운 깃발
생의 기원에 새로운 깃발

마치 쿠르베가 에트르타에 정착하여 노르망디의 맑고 밝은 고요한 정경과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의 불안하고 고통스런 색채를 그려냈다면 이두식은 극도의 정밀 묘사로 신체의 부위를 감각적으로 그려내면서 회화의 화풍에 새로운 감정과 뜨거움으로 폭발하는 색채로 분위기를  제시한다.
이두식의 헤아릴 수 없는 구성의 넓은 방향성과 절묘하게 만나는 사실적  여체 표현은 흔히여느 추상회화 작품에서 볼 수 없는 신선미를 주고 있다 . 
마치 그 절묘한 표현의 일치와 기술에 있어서는 살바드로 달리의 기묘함을 떠올리게 하고 흐르고 맺히는 선과 붓의 역동성은 왕희지의 초서체를 방불케한다.

우리는 그의 회화에 중요한 하나의 특징으로 보아지는 색채의 의미에 주목 할 필요가 있다.   그의 그림에 특징은 마치 색채회화라고 할 만큼 원색적이고 강렬하다.
이미 그러한 그의 회화적 색채의 인식은 1972년 <巫祭>라고 붙여진 작품에서 그 원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특성은 적 청 황 흑 백색을 기조로 전통적인 오방색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李斗植의 화면에선 오방색은 이미 평론가 윤진섭이 그의 작가론에서 명료하게 집어내듯이 이 단청이나 불화, 무속도그리고 민예품에서 흔히 볼수 있는 기본적인 생활의 색채 이다. 그는 이러한 창의을 기조로 한 정도로 풍부한 색채의 사용과 즉흥적이며 비정형적인 구성으로 그 회화의 장을 펼치고 있다.

물론 색채의 사용과 그러한 기법에는 일반적으로 작가들이 취했던 패턴과 초기의 앵포르멜적인 제스처,  생의 기원 에서 보이는 아주 정숙한 톤 그리고 도시의 축제로 이어지는 격정적인 색채와 조형적인 하모니가 그의 회화적인 발걸음에 큰 대조를 보이면서 발자취를 남기고 있다.
특히 원색적이며 자유분방하게 풀어헤치던 색채의 향연에서 그는 보다 절제된 색채를 동경하며 , 거침없는 형태의 열정에서 이성적으로 통제된 새로운 도상학을 찾아내고 있다 .

거기에는 그린다는것과 서체적인 드로잉의 개념에 기대인 붓질, 샘프란시스처럼 던져진 색채의 혼합과 하모니의 세계를 총체적으로 엮어놓은 그 힘으로 이제 새로운 땅에 그의 깃발을 꼽는다 .
나는 그가 가는 길이 대단히 확신에 찬 걸음걸이임을 느낀다. 그러나 이제 유감스럽게도 너무 짧은 생애로 예술가의 가는 길을 마친 그의 예술적 생애 아쉬움을 표한다.
행정가로서도 더 아름다운 일들을 잡기 위해 언제나 한 손을 비워두었던 이두식작가  .너무나 인간적이었던 작가 이였기에 사람들은 그를 아쉬워하고 그가 없는 현실을 그리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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