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생의 세계에 선 꽃과 여인의 숨결- 임혜영

천경자는 우리 화단에서 보기 드물게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린다. 그녀의 작품 속에는 유난히 꽃과 여인이 자주 소재로 등장하기 때문이며, 작가는 그것을 아름다움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천경자의 화폭에 여인들이 사유하는 듯 정면을 응시하는 것들이 많다면, 임혜영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천경자 화백의 그림을 보듯이 꽃을 든 화폭의 자화상 그림들이 자꾸 아른거린다.

환생의 세계에 선 꽃과 여인의 숨결- 임혜영

이 두 여류화가의 작품에는 공통으로 모두 여인과 꽃이 등장한다. 천경자의 화폭에 여인들이 사유하는 듯 정면을 응시하는 것들이 많다면, 임혜영 작가의 그림에는 여인의 초상을 배경으로 펼쳐진 꽃들이 영감을 얻은 축제처럼 춤을 추고 있다.
그러나 두 작가의 작품에는 각각의 서로 다른 특징과 독창성이 명확히 존재한다.
천경자 화백의 작품에 꽃이 소재로서 장미꽃을 한 다발 안고 있는 운명적인 여인으로 등장한다면, 임혜영 작가의 화폭에는 환상적인 무늬의 꽃들이 배경으로 몽환적인 표정의 여인 주변을 싸매고 있다.
그녀는 초기 작품 ‘옷에 마음을 놓다’ 연작에서 부터 자화상처럼 핑크빛 입술과 볼그스름한 얼굴의 사랑스럽고 자유로운 영혼의 찬가를 속삭이는 화가로 출발했다.

53X45.5cm제목-환생-Mixed Media on Canvas 2019

단순하게 여인이 주제가 되어 전면에 등장하면서 점진적으로 옷의 패턴이나 무늬들이 부각 되었고자연스럽게 여인의 사랑스러운 표정 주위로 꽃들이 풍성하게 피어나는 여인들의 자태로 그녀만의 화풍을 구축했다.
무엇보다 그녀의 작품은 옆모습의 자세가 황홀한 표정과 행복한 감정표현으로 보는 사람들을 황홀한 지경으로 안내한다.
그러나 최근 임혜영 작가에게 가장 두드러지게 등장하는 양식은 <환생> 시리즈와 <Flora> 시리즈이다.
예를 들면 <환생-월화밀회> 시리즈 같은 작품이 그러하다. 조선 시대 혜원 신윤복의 그림에 주제인 달밤 아래 밀회의 정경을 빌리면서 극적인 풍경의 대비로 스토리를 꾸미는 흥미로운 구성이다.

환생의 세계에 선 꽃과 여인의 숨결- 임혜영

알다시피 혜원 신윤복은 단원 김홍도와 함께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로 쌍벽을 이루는 최고의 작가이며 상류사회의 풍속도나 기녀, 유락도를 가장 감칠맛 나게 그린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이런 이런 시대의 명화를 현대미술에까지 소환하는 제작 구성은 다른 작가들에게서도 등장하지만 살바르도 달리나 리히텐슈타인, 페르난도 보테로 등에게서 명화 패러디나 차용으로 등장했었다.
그러나 이들과 다르게 임혜영의 작품에는 아주 집중적으로 혜원의 그림이 본인의 작품과 절묘하게
쌍을 이루어 최적의 하모니를 이루어 내고 있다.
혜원의 화폭 위에 겹쳐진 임혜영의 사랑스러운 여인, 그녀는 인생의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한 채 밀회의 현장과 만나는가 하면, 어느 따뜻한 봄날 양반과 기녀가 은밀한 밀회의 현장에 임혜영 표의 예쁜 여인이 그 모습을 내려다 보고 있다.

환생의 세계에 선 꽃과 여인의 숨결- 임혜영

다른 그림에서도 대부분 화면의 배치에서도 좌우로 혹은 상하로 당시 유흥의 풍경과 인물의 조화를 부드럽고 우아한 필선으로 따뜻하게 일체화하는 작품들이 지배적이다.
마치 임혜영의 현대판 『풍속도첩』 이나 『미인도』로 불릴 만한 양반층의 풍류와 남녀 간의 연애를 다시 보는 듯하다. 이러한 작가의 독특함은 조선 시대 풍경을 21세기에 다시 불러들여 도시적 감각으로 풀어내는 꿈과 현실의 풍경을 결합하는데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작가는 그 시절의 임혜영으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꿈을 이처럼 표현한 것이 아닌가해석된다. 그러한 증거는 더욱이 가늘고 유연한 꽃의 필선과 오방색에 근거한 원색의 산뜻한 색깔과 풍성한 꽃에서 더 확인된다.
게다가 현대적인 구도와 독특한 상황 설정으로 이 화면은 향긋하기도 다분히 몽환적이고 로망틱한 분위기로 충만해 있다.
배경이나 구성도 여인의 인물을 살리기 위해 배경을 생략하는 형식으로 꽃의 주변 배경을 아기자기하게 묘사하는 초현실적 구성으로 분위기를 증폭시킨다.

작가 임혜영
작가 임혜영

부드러운 핑크빛 담채 바탕에 빨강, 노랑, 파랑의 경쾌한 빛깔, 음주 가무에 풍악이 있는 야외에서의 유흥 등이 작가가 어디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를 살짝 엿보게 한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다양한 풍경의 조합에서 우리가 꼭 하나 빠뜨린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이 모든 그림 속에서 마치 작가의 서명처럼 한결같이 등장하는 한 마리 새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 새는 화폭에 따라 파랑새, 핑크빛 새, 노란 색의 새이기도 하다.
눈을 감고 신비로운 표정으로 꿈을 꾸는 여인에 약방에 감초처럼 슬쩍 나타나는 그 새야말로 작가 임혜영의 마스코트처럼 보인다.

어쩌면 작품 속에 화가 자신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바로 새일지도 모른다.
텅 빈 상념에 찬 눈빛과 그녀를 감싸고 있는 무수한 꽃들, 부드러운 색채와 스토리로 몽환적인 여인의 감은 눈과 제스쳐. 그 머리에 살그머니 앉아 있는 새는 누가 보아도 여인을 지켜주는 수호신이거나 동시에 희망의 상징이 틀림없다.
보통 “새는 먼먼 시간의 역사라는 강(江)을 건너온 전령. 이승과 저승, 하늘과 땅을 연결해 주는 상징적 존재로 여인의 동반자다. 블링블링한 자수(刺繡)를 오브제로 운용함으로써 현대여인의 화려한 아름다움과 과거의 기억이 반짝이며 해후하는 순간을 공유하고 싶었다.'라고 고백 했다.
그의 화폭속에 바로 새는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영매(靈媒)이며 과거와 현재의 메신저이며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아이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를 해주는 매개체인 것이다.
이제 작가는 옷을 통해 마음으로 전해진 그러한 순수영혼의 이야기들을 은유적으로 풀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제는 그런 시간에서 벗어나 의인화하거나 관능적 신비감이 드는 꽃과 여인으로 우아한 곡선과 화려한 장식성으로 몽환적 분위기의 여인이 이상향에 꿈을 실은 매혹적인 표정을 보여준다.
어떤 몽환적 사색을 즐기는 듯 여인의 표정과 색채와 조화를 이루며 감흥에 몰입하는 그 순간들. 임혜영은 그 다시 태어나고 싶은 환생의 그리움을 화폭에 풀어내면서 그 뜨거운 노래와 열망을 새에게 실어 보낸다.
이제 임혜영은 여류화가로서 그동안 예술가로서 살아온 내면의 모든 솔직한 이야기를 작품속에 열정과 욕망으로 ‘환생’ 시리즈 라는 이름으로 고백하고 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임혜영 작가를 보아 왔다. 이 작가의 진솔한 이 고백은 그래서 한 예술가의 진지함이 어떠한 깊이와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소설가 박경리는 “꿈은 화폭에 있고, 시름은 담배에 있고, 용기 있는 자유주의자, 정직한 생애. 그러나 그는 좀 고약한 예술가다. 라고 천경자를 노래했다.
그러나 이제 “나의 작품은 여인이 진정 조용하고 비밀스럽게 스스로를 알아가게 되는 고아한 내면세계를 전하는 것이 궁극의 바램이다”라고 했던 임혜영을 아마도 먼 훗날 사람들은
“꿈은 꽃에 있고, 기쁨은 여인의 얼굴에 있고, 그래서 꽃과 여인에 빠져 사는 환상주의자, 한 마리의 새’ 인생을 꽃의 축제처럼 꽃을 ‘푸닥거리 하듯’ 그림을 그린 열정의 화가로 임혜영을 기억할 것이다.

김종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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