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종로구 평창36길 20에 위치한 금보성아트센터에서는 2022년 4월 16일 오후 3시부터 한국 서양화 1세대 ‘백철극 작가’를 재조명 하기 위해 김종근 미술평론가와 전시 중인 백철극 작가의 아들인 백중필 선교사를 찾았다.
김종근 미술평론가의 백철극 작가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 이날 인터뷰는 아들인 백중필 선교사와의 인터뷰로 진행되어 백철극 작가가 일찍 외국으로 이민을 가서 그때부터 겪었던 아들 백중필 선교사의 해외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한 백철극 작가의 생활 등에 대해 물었다.
한국 근대 서양화 1세대로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남관 등과 함께 활동한 작가였던 백철극(백간노미 1912-2007) 작가는 다른 서양화 선구자그룹들이 국내 활동으로 이름이 알려진 데 비해 오랜 해외 활동으로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단색화풍과 달리 독특한 추상기법으로 동서양의 에스프리를 담은 작품으로 해외에서 인정받은 백철극(백간노미) 작가의 잊혀진 작품들에 대해 김종근 미술평론가의 해설로 다시 그의 작품들이 고급스럽게 재해석 되었다.
백철극은 1912년 평안북도 박천 태생으로 4세에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의 바느질로 어려운 생활 가운데 고등학교 시절에는 평양의 대동강 극장 간판 조수로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영화간판 화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몇 년간 모은 학비로 도쿄의 니혼대(동경대) 미술과에 1934년 입학해 같은 과 동창이며 친구인 김환기와 당시 일본 현대미술의 대가 후지다 쓰구하루, 세이지 도고 등에게 사사하고 1937년에 졸업했다.
그 후 도쿄 홍고 현대미술연구소에서 2년간 연구 생활을 마치고 ‘동양의 파리’라 불리던 상하이로 건너가 28세에 ‘홍커우 북 사천로’ 거리 풍경을 거침없는 인상파 기법으로 그려내 1940년 상해 당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일본 미술가협회전 공모에 응시해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대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대결이 빚은 내란으로 인한 어려운 상하이 시절은 오래 머무를 수는 없었다. 당시 10여 년간 그린 작품으로 수상작 외에 스케치와 유성 파스텔 등 다수의 작품이 남겨져 있다.
1949년 고국으로 귀환했으나 이듬해 6.25 전쟁이 발발해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는 고난의 연속 속에 살아가야 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미군 장교들의 초상화를 그리며 한번은 위문공연 차 방한 한 미국의 유명 코메디언 밥 호프(Bob Hope)가 갓을 쓰고 한복에 담뱃대를 문 모습을 그려주길 주문했다고 전한다. 1960년대 들어 생계를 위한 그림을 그리면서도 피에 몬드리안(Piet Mondrian), 잭슨 폴록(Jackson Pollock)과 같은 화가들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추상적 작품세계의 붓을 놓지 않았다.
이 시기부터 그는 백철극이라는 본명 대신 모친이 정감 있는 목소리로 부르던 ‘간놈이’(갓 태어난 아이를 뜻하는 이북 방언)를 호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1967년 그는 자녀 3남2녀를 데리고 캐나나로 이민길에 오른다. 몬트리올과 뉴욕 그리고 L.A. 등지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1970년 뉴욕 자신의 개인전에 오랜만에 절친인 김환기 화백과의 재회를 계기로 그의 작고 1974년까지 작품세계를 공유한다. 미국에서도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역사 깊은 Foster & Kleiser 라는 대형 옥외 상업미술 전문회사에서 일하며 꾸준히 자신의 추상세계에 깊이를 더해갔다. 백철극 화백의 전성기인 70년과 80년대에 걸쳐 생전에 그토록 그리던 파리에서의 작품세계가 시작됐다.
화가 백철극(1912∼2007)의 일생은 그의 차남 백중필(백필립) 선교사(캄보디아 라이프대학 부총장)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아들 백필립은 미얀마에서 의사로 음악가로 선교사로 일하고 있는데, 아버지의 예술 행적을 찾아 상해 등지로 노력을 기울인 그의 만세관 이야기는 감동으로 전해진다. 백작가의 작품은 1968년부터 캐나다, 뉴욕, L.A. 파리 등 해외에서는 여러 차례 전시되었는데, 고국인 한국에서는 2012년 밀알미술관 100주년 기념전시회(개인전)를 시작으로 세종문화회관 공모선정작 전시(2012. 꿈의숲아트센터),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 ‘나는 세 개의 눈을 가졌다’(2014. 덕수궁미술관), 트리니티신학원 추모전(2014) 등으로 이어졌다.
백작가의 작품 두 점 ‘침략자(Aggressor)’와 ‘비행기II (L’Avion)‘ 는 2009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백선교사는 “선친께서는 당시 대학 1년 선배인 김환기 화백과는 절친하게 지냈다. 김환기가 그 때 아버지에게 보낸 엽서를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고 아버지를 회고했다. 또한 그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친의 작품 두 점을 콜렉트하며 독특한 스타일로 동양과 서양의 추상적 기법으로 현대미술의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했다.”며, “당대 김환기, 박서보 등 단색화 계열에서 벗어나 영향 받지 않으면서도 동서양의 수묵 추상화로 독보적 미술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백철극 작가의 국내 전시는 공공미술관 초대전을 비롯해 올 겨울 ’부산국제아트페어(BIAF)’ 특별부스전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국외 전시는 내년 2월 ‘LA 아트페어’(2.10-15)와 이후 LA의 명소인 라크마(LACMA)뮤지엄에서 열릴 예정이다. 유럽 등지에서 먼저 인정받았으나 정작 고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동시대를 앞서 간 비운의 서양화가 백철극의 예술혼이 재조명되기를 기대한다. 백철극은 ‘비(Rain)’ 시리즈를 비롯해 ‘집’ 시리즈, ‘예수’ 시리즈 등의 추상 회화 작품 500여 점을 남겼다.
백철극
교육
일본대학 회화과 졸업, 도쿄, 일본 1934 - 1937
홍고 Academie of Fine Arts, 연구원, 도쿄,일본 1938 - 1939
현대 미술 연구, 파리, 프랑스 1977 – 1982
현대 미술 연구, 파리, 프랑스 1987 – 1988
시상
일본미술가 협회전, *대상, 상하이, 중국 1940
Salon Official de la ville de Vincennes, 파리, 프랑스
파리 시장상 – “Mention Speciale” 1980
Annual Exhibition of Salon d’Automne at Grand Palais, 파리, 프랑스
Prix d’Audonne - Honored Room Viewing-특실전시 1981
그룹전 과 개인전
Verdun 문화회관, 몬트리얼, 캐나다 1968
Waddington Gallery, 몬트리얼, 캐나다 1969
The Church of Convenant, 뉴욕, 미국 1970
파리한국 대사관, 파리, 프랑스 1978
한화랑, 로스앤젤레스, 미국 1980
파리한인 미술가협회 그룹전, 파가노 갤러리, 밀라노, 이태리 1981
프랑스 한인미술가협회 그룹전, 한국문화회관, 파리, 프랑스 1981
파리 한국문화원, 파리, 프랑스 1982
삼일 갤러리, 로스앤젤레스, 미국 1985
윌셔 미국 장로교회, 로스앤젤레스, 미국 1985
North Avenue 장로교회, 애틀란타, 미국 1990
윌셔 미국 장로교회, 로스앤젤레, 미국 2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