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국립미술관에서 첫 대규모 개인전 개최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덴마크 국립미술관SMK, The National Gallery of Denmark, 코펜하겐에서는 2022년 3월 5일 - 7월 31일까지 양혜규 작가의 덴마크 국립미술관에서 첫 대규모 개인전이 개최된다.

덴마크 국립미술관 양혜규 개인전 《양혜규: 이중 영혼》 포스터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덴마크 국립미술관 양혜규 개인전 《양혜규: 이중 영혼》 포스터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작가의 덴마크 첫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그간 작업의 기반이 되어온 초기작과 대표작 그리고 신작에 이르기까지, 1994년부터 2022년까지 제작된 총 50여 점 넘는 작품들을 전시한다. 설치, 조각, 텍스트 및 소리 등 공감각적 매체를 아우르는 《양혜규: 이중 영혼》 전시는 빛, 향기, 움직임 등 다중감각을 일깨우며 덴마크를 비롯한 북유럽 전반에 양혜규의 폭넓은 작품 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양혜규: 이중 영혼》 전시전경, 덴마크 국립미술관, 코펜하겐, 덴마크, 2022사진: Jan Søndergaard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양혜규: 이중 영혼》 전시전경, 덴마크 국립미술관, 코펜하겐, 덴마크, 2022사진: Jan Søndergaard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양혜규의 강렬한 작품을 선보이게 된 덴마크 국립미술관의 선임연구자이자 본 전시의 기획자인 마리안느 토프Marianne Torpe는 “양혜규는 이번 전시를 위해 덴마크의 선구적 미술가들을 참조한 두 점의 신작을 제작함은 물론 전시의 전 과정에 깊이 참여했다”고 전하며 “이번 《양혜규: 이중 영혼》 전시를 방문하는 관람객 또한 이러한 작가의 헌신을 감지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양혜규(b.1971)〈열망 멜랑콜리 적색Yearning Melancholy Red〉2008/2019《비대칭적 평등》 전시전경, 레드캣 아트센터, 로스앤젤레스, 미국, 2008사진: Scott Groller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양혜규(b.1971)〈열망 멜랑콜리 적색Yearning Melancholy Red〉2008/2019《비대칭적 평등》 전시전경, 레드캣 아트센터, 로스앤젤레스, 미국, 2008사진: Scott Groller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특히 이번 전시에는 2020년 서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작가의 개인전을 통해 한국 관람객에게도 친숙한 〈침묵의 저장고 – 클릭된 속심〉(2017)도 포함되었다. 이 작품은 덴마크 국립미술관 구관과 신관 사이의 공간을 유리 지붕으로 연결한 ‘조각거리Sculpture Street’라는 이름의 거대한 전시 공간에 설치되어 관람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관람객은 높이 16미터에 달하는 이중의 원통형 겹으로 이루어진 블라인드 작품의 내부로 걸어 들어갈 수 있다. 수직으로 뻗은 두 겹의 블라인드 형상인 〈침묵의 저장고 – 클릭된 속심〉은 고정된 검은색 블라인드 외피와 소리 없이 회전하는 코발트블루의 속심이 겹쳐져 물결무늬 효과(무아레 현상)가 나타났다 사라짐을 반복하면서 고유한 역동적 공간을 구성한다.

양혜규(b.1971)〈상자에 가둔 발레Boxing Ballet〉2013/2015《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 전시전경, 삼성미술관 리움, 서울, 한국, 2015사진: 양혜규 스튜디오ⓒ Leeum, Samsung Museum of Art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양혜규(b.1971)〈상자에 가둔 발레Boxing Ballet〉2013/2015《코끼리를 쏘다 象 코끼리를 생각하다》 전시전경, 삼성미술관 리움, 서울, 한국, 2015사진: 양혜규 스튜디오ⓒ Leeum, Samsung Museum of Art이미지 제공: 국제갤러리

반사상反射像과 그림자

 전시 제목인 《양혜규: 이중 영혼》은 이중의 가치들을 배가하고 짝짓는 행위雙對性에 대한 작가의 오랜 관심에서 기인한다. 양혜규는 전통과 현대문화, 대량생산과 수공예, 사실과 허구, 일상과 비일상 등 상이한 가치陰陽性 간의 접점에 집착적으로 탐구해왔다. 이러한 이원성二元性은 대한민국과 독일의 대학에서 수학한 후 현재까지도 서울과 베를린을 오가며 생활하는 양혜규의 삶에서도 발견된다. 양혜규는 작품 속에서 이원성, 다중성, 비非소속 및 고립과 공동체 등의 주제어를 다루며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자신만의 경험을 작품에 반영한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내가 ‘이중성’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전체와 관련을 가지면서도 어떠한 기원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모든 나머지를 지시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중’이라는 단어 뒤에는 너무나 다양한 많은 겹이 숨어 있다. ‘이중’은 2개로 한정되기보다는 다수로 증폭되는 미지의 숫자를 가리킨다. 즉 남겨진 모든 것과 겹쳐진 모든 것이 그 한 단어에 내포된다. 그 이중의 쌍은 또한 우리가 되고자 열망하지만 끝내 그림자 속에 남겨져 있는 것이기도 하다.”

《양혜규: 손잡이》 전시전경, 뉴욕 현대미술관, 뉴욕, 미국, 2019Commissioned for the Marron Atrium by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사진: Denis Doorly
《양혜규: 손잡이》 전시전경, 뉴욕 현대미술관, 뉴욕, 미국, 2019Commissioned for the Marron Atrium by 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사진: Denis Doorly

양혜규는 《양혜규: 이중 영혼》의 중심축이 되는 한 쌍의 조각, 즉 조각 듀오를 새로 기획하고 제작했다. 〈소리 나는 중간 유형 – 이중 영혼Sonic Intermediates – Double Soul〉이라 명명된 이 조각은 그린랜드계 덴마크 작가인 피아 아르케Pia Arke(1958-2007)와 프랑스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낸 덴마크 조각가 소냐 펠로브 만코바Sonja Ferlov Mancoba(1911-1984)를 참조한다. 양혜규는 이 조각을 통해 그들의 예술적 영혼을 기리고 오늘날에도 선연한 영향력을 그림으로써 두 작가의 삶의 궤적을 추적한다. SMK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는 이 두 작가의 작품은 전시 기간 동안 상설 전시장에서 선보일 예정이라, 선구자적 작가들과 양혜규가 작품을 통해 서로 대화를 나누며 상호 간의 담론을 형성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피아 아르케와 소냐 펠로브 만코바는 각각의 방식으로 양혜규의 복합적 예술 행위 및 접근법과 공명한다. 양혜규와 마찬가지로 이 두 예술가 모두 단일문화적이거나 국가적인 틀에 갇히기를 거부했다. 그가 새로 선보이는 이 한 쌍의 작품 중 하나는 펠로브 만코바의 다리가 여러 개 달린 조각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반면, 다른 하나는 그린랜드를 향한 덴마크의 식민주의적 정책에 비판적이었던 아르케의 작품세계로부터 기인한다.

양혜규(b.1971)〈행성계 신호진 – 황홀망恍惚網 #31 Planetary Chain Signal Formation – Mesmerizing Mesh #31〉2021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양혜규(b.1971)〈행성계 신호진 – 황홀망恍惚網 #31 Planetary Chain Signal Formation – Mesmerizing Mesh #31〉2021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소냐 펠로브 만코바는 덴마크 왕립미술학교와 파리 에콜 데 보자르에서 수학하고, 코브라CoBrA 그룹과 선Linien 그룹의 활동에도 관여했다. 아프리카 최초의 흑인 미술가로 알려진 어네스트 만코바Ernest Mancoba(1904-2002,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생)와 1942년 결혼한 소냐는 그러나, 그의 남편과 역시 미술가로 활동한 아들 웡가 만코바Wonga Mancoba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미술사에서 주목받은 정도에 비해 매우 늦게 고국인 덴마크에서 재조명되었다.
한편 알래스카주, 그린란드, 캐나다 북부, 시베리아 극동 등지에 사는 원주민을 의미하는 이누이트 족의 운명은 비교적 덜 알려진 식민적인 ‘근대 잔혹사’로 꼽힌다.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피아 아르케는 북극해와 극지방 주변 원주민의 이민, 이주, 탄압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작가로 여겨진다. 극지방이라는 공동체의 매우 탈국가적인 문화적 특징에 매료된 양혜규는 고국과 타국을 오가며 비타협적, 독립적 활동을 해온 피아 아르케의 행보에 경의를 표하고 그로부터 받은 격려와 교감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관계를 이해하는 데 단서를 제공하는 복잡한 디테일과 다양한 레퍼런스 그리고 그에 대한 주관적 해석이 조화를 이루는 이 한 쌍의 조각은 양혜규 특유의 정교한 조각적 언어를 그대로 반영한다. 〈소리 나는 중간 유형 – 이중 영혼〉은 칼스버그 재단의 후원으로 전시 개시 전에 덴마크 국립미술관이 소장하기로 결정했다.

《양혜규: 이중 영혼》전은 덴마크 국립미술관 내 크게 4개의 공간에서 다채롭게 펼쳐진다. ‘웨스트홀’이라 불리는 고전적인 전시장, 미술관의 구관과 신관 사이 ‘조각거리’라 불리는 거대한 전시 공간, 90년대 중반 초기작이 자리한 비교적 아담한 소규모 전시장, 그리고 사운드, 텍스트로만 구성된 미술관 구관의 로비 공간 등이 있다. 이곳에서 블라인드, 무빙라이트, 2가지 향의 다중적 조합으로 구성된 설치작 〈치명적인 사랑〉 외에도 빨래건조대 조각 〈비非-접힐 수 없는 것들, 누드〉, 그리고 〈래커 회화〉 등의 다수의 주요작들이 전시된다. 또한 테이트 미술관에서 절반만 선보였던 쿠션작업 〈세상 방석 – 푹신한 X〉과 〈삶 방석 – 푹신한 S〉 2점 모두 이번 전시를 통해 공개된다. 그리고 미술관 직원에 의해 정기적으로 ‘활성화’ 되는 신작 〈소리 나는 천상 동아줄〉도 관람객을 만난다.

양혜규 작가사진: Cheongjin Keem
양혜규 작가사진: Cheongjin Keem

전시 오프닝에 앞서 양혜규는 코펜하겐에 소재한 덴마크 왕립미술학교에서 강연을 가지며, 5월 11일에는 작가와 전시 큐레이터인 마리안느 토프의 대담이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3월 9일부터 6월 15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콘서트, 워크샵, 강연 등 전시 맥락을 심도 깊게 탐구하는 연계 행사들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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