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박의 새로운 산풍경 –파타고니아에서 파미르고원까지
김종근 (미술평론가)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은 성리학을 사상적 바탕으로 조선 고유색을 추구하는 진경문화를 이끌면서 우리 산수의 아름다움을 고유의 회화미로 표현하는데 성공했다. 최근 다나박의 진부령 미술관 작품속에도 그 정신이 살아난다. 그는 실경산수를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마음속에 풍경을 읽어내기 때문이다.
다나박은 다른 구상 화가들이 보여준 다양한 기법들을 거부하고 애초부터 그가 본 풍경들을 손으로 그리는 그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고유한 화풍을 선보였다.
그 풍경이나 모습이 참으로 겸재 정선을 떠올린다. 그러나 보다 진전된 테크닉과 감성으로 돌아온 다나박의 그 산풍경은 2017년 파타고니아 이후 더욱 과감히 생략되고 단순화 된 형태로 풍경들을 해석한다.
그 풍경들은 마치 필터를 낀 것처럼 전체가 푸른색 혹은 붉은 색 등 단색화 톤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기술은 마치 붓을 옆으로 뉘어 빗자루를 쓸어내리듯 묵찰법의 인상을 떠올린다. 특히 풍경이 마치 필터를 통하여 보이는 듯 그런 형상들이 화폭을 지배한다.
표현에서도 빠른 속도감 있게 그린 나무들이 또 다른 나무들을 물고 늘어지듯 안개 속에 물기가 스며든 설산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또 어떤 풍경은 마치 설산의 웅장한 모습을 비춰주기도 하고, 바람에 휘날리는 빙하의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함으로써 대상을 향한 그의 시선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자연풍경의 원천은 하늘과 산의 느낌으로 풍경 읽기가 진행된다. 그리고 그는 산 언덕, 들판등 폭풍속의 흔들리는 풍경 이미지만을 집중적으로 담아왔다. 이것은 자연을 보는 형식이 바로 마음속에 대상이 자리잡고 있음을 말해준다.
다나박은 그가 본 이 외형적인 인상을 담아 다시 풀어낸다. 그의 화폭이 보다 정제된 풍경의 표현이 가능한 이유이다. 겸재가 눈에 보이는 시각적인 차원의 풍경을 넘어 고유한 화풍을 만들어 내듯이 이제 희숙의 풍경도 스스로의 형식을 갖추는 단계로 이동되고 있는 것이다.
마음속의 풍경, 다나박은 그 풍경을 가능한 손과 가슴으로 그려내길 희망한다. 눈앞에 펼쳐진 대상을 아카데믹하거나 리얼하게 묘사하기보다는 가슴속의 진동으로 풀어내려는 자연스러운 변화와 색상들이 이들을 잘 말해준다. 처음부터 대상의 이미지나 사실성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희숙의 의지는 그럼에도 사실적인 자연의 모습에서 채집된 풍경이라는 점에서 그의 마음속 풍경읽기는 보다 폭넓은 상상력을 열어 보이고 있다.
내가 그의 첫개인 전에서 주목한 그의 <내면의 진동이나 파장처럼 미묘한 감정> <눈 덮인 설산에 순수함과 과 눈 내리는 날의 모습> < 작열하는 듯하다 핑크빛의 열정적인 꽃> <설산의 눈처럼 깎아지른 빙벽의 풍경>등에 집중하는 모습 등은 여전히 그의 감성이 부드러움과 내면의식과 닿아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과거의 핑크빛 꽃들이 화폭 전면에 봄의 멜로디처럼 들려오는가 하면 온통 봄날의 오후를 눈부시게 하는 노란개나리는 없지만 그의 역동적인 구성과 그만의 자연해석은 남아있다. 최근들어 열정적으로 작품을 발표하는 그의 의지는 무지개처럼 다양하고 풍부하여 놀랍다.
이제 그의 화풍은 내면의 추상화와 몽환적인 표현주의가 결합 되어 새로운 풍경과 욕망의 내면세계를 만들어낸다. 그 세계야 말로 희숙의 개성적인 표현이며 도달이며 완성이다. 예를들면 이제 한정적인 색채에서도 벗어나 거침없이 자유롭고 리드미컬한 선으로 내면풍경의 영역으로 모노톤 회화의 특성을 살려내면서 회화의 근원적인 표현의 밀도를 정착시켜 나가고 있음이 이것을 대변한다.희숙의 노력, 그것은 아마도 겸재 정선이 추구하고 열망했던 우리 풍경의 아름다움을 우리 고유화법으로 풀어내려는 치열한 정신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작가 소개
2017 파타고니아에서
독수리가 하늘에서 유유하다.
바람소리가 고요함을 덮는다.
환한 숲속에 가루눈처럼 햇빛들이 떨어진다.
나무가 썩어 흙이 되어 바스라지고
바위에서 부셔져 나온 자갈들이 사람들의 발길과 물길 속에서 닳아지고
바람타고 올라가는 물보라가 하늘에 흩어진다.
아무것도 없음으로 돌아가는 길이 참으로 멀다.
높이 솟아 있는 저 산의 천만년바위와 눈들이
밑으로 밑으로 내려오는 길은 얼마나 먼가
그래서 저 호수는 저리 깊은 색을 지니는가.
2019년 파미르 고원에 갔을 때 ㅡ
세상의 지붕 파미르
어디든 눈을 돌리면 보이는 끝이 보이지 않는 설산 ᆢ
그리고 6월의 야생화
그 색들과 향기ㆍ 바람
밤하늘의 은하수
푸른 하늘을 품은 크고 작은 푸른 호수들
그 푸른 호수에 온 몸을 담그고
춤을 추었다
고맙다 고맙다 ᆢ 고맙다!
세상의 처음은
우연속에서 혼돈으로 시작되지 않았을까
우연의 아주 많은 가능성
혼돈의 무한함 무한대의 지평
그린다 ㅡ는 또 다른 세상 ......
그 무한함을 믿고 간다
물감을 떨어뜨리고 흘리고 지우고 뿌리다 보면 산의 형상이 떠오른다.
내가 그리려 한다고 그려지는 것도 아니여서 그려지는대로
흐르는 대로 맡긴다
나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건 ‘맡김’이다.
그리고 내 안의 산을 보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