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2021년 12월 23일 오후 이원희 작가를 인터뷰 하기 위해 강익모 전시평론가와 이원희 작가의 화실을 찾았다.
1층~2층 복층을 쓰고 있는 이원희 작가의 화실은 이 작가의 작품들로 가득하다. 강익모 전시평론가의 질문으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먼저 본인 소개를 요구하는 강익모 전시평론가의 질문에 이원희 작가는 "강익모 전시평론가가 교수님이라고 하시는데 사실은 저는 전직 교수입니다. 정년 퇴임 5년을 앞두고 그림에 매진하는게 좋겠다 싶어서 내년 2월이 공식적으로 정년 퇴임일인데 5년 먼저 퇴직을 했는데, 저는 20여 년을 모교에서 학교 다니면서 가장 갈구했던 세계를 학생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러시아, 유럽, 중국으로 같이 많이 다녔다."고 말했다.
이어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교육 상황에서는 체험하지 못한 실기를 체험케 했으며, 현재 실기 교육이 많이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클래식을 제대로 맛보게 해주기 위해 그런 프로그램으로 교육을 20여 년 하면서 본인도 많이 배웠다."고 털어 놓았다.
이원희 작가는 ‘현대판 진경 산수화의 대가’이면서 초상화 작업을 한 지도 30여 년이 지났다. 1989년 대학원 시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선 후기 문인 ‘서직수의 초상’(보물 제1487호)을 보고 백색 도포를 입고 선 선비의 형형한 눈빛에 압도당해 초상화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강익모 전시평론가가 선생님의 작품이 초기 작품과 지금의 작품이 변화된 이유에 대해서 묻자, 이원희 작가는 "1986년도에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그때 작품이 저기 걸려 있는 그림인데 저 그림을 시작으로 알려지기 시작해서 이원희표 황토빛 풍경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 그림의 단초입니다. 에피소드로, 저 그림의 팜프렛를 보고 파리의 화상이 저 그림을 사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해 왔어요.
저 그림이 제 손에 없을 때라 팔렸다고 했더니 다시 그려달라고 하길래 젊은 혈기에 '나는 한 번 그린 그림은 다시 안그린다.'고 했더니 다른 그림이라도 그려달라고 해서 파리 세느강변의 모습을 그려 주었더니 파리의 흔한 풍경이 아닌 당신의 나라의 풍경을 원한다고 말해서 한국에 돌아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의 좋은 풍경을 두고 외국을 다녔나 싶어 그때부터 대한민국의 풍경을 찾아 본격적으로 스케치를 다니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원희 작가는 조선 후기 어진(왕의 초상화)의 대가 이명기가 얼굴을 그리고, 풍속화가 김홍도가 신체를 사생한 수묵 초상화의 뛰어난 사실성과 정신성 표현은 서양화를 공부하던 그에게 당시 한국의 유화 작품은 왜 이 수준에 미치지 못할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강익모 전시평론가가 초기 작품과 현재의 작품 사이에 초상화를 그리게 되셨는데 중간에 초상화를 그리게 된 이유를 묻자, 이 작가는 "제가 그린 풍경들이 인기를 얻기 시작할 무렵, 우연히 럭키 금성의 구본무 부회장님이 자기 방에 걸 초상화를 그릴 화가를 저의 그림(낙동감 그림)을 보이면서 실무자에게 저를 불러오라 했다기에 가서 그 분의 초상화를 그려 드리고 굉장히 큰 돈을 받게 되었어요. 너무 큰 돈을 받아서 그 보답으로 그 당시 국전에서 인물로 상을 받았었는데 그 분의 초상화를 다시 그려 드렸더니 그 그림을 구본무 회장이 캐비넷에 넣어 버렸어요."
"약간 속이 상해서 '제 그림을 왜 캐비넷에 숨기세요.'하고 물었더니 우리 아버지 초상화부터 걸고나서 내 것을 걸어야 되지 않겠나? 말해서 구자경 회장님 초상화를 그려 드렸더니 너무 좋아하면서 대작으로 전신 사진을 그려 달라고 하셨어요. 그때 그 대작을 그려 드렸다면 엄청난 돈을 받았을 텐데 제 스스로 역량이 딸린다고 생각해서 결국 못그려 드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원희 작가는 이어 "그 당시 풍경화에 약간 식상해 가던 사회 흐름에 초상화를 그리면 안정된 생활을 꿈꿀 수 있겠다 싶었던 때가 있었을 때 화랑 관장에게 초상화에 대한 주문을 의뢰하게 되었는데 그게 인연이 되어 국회에 본인의 초상화 그림이 걸리면서 알려지게 되어 반기문 사무총장을 비롯한 국회의원, 대통령 두 분, 기업 회장님들이 연결되면서 30년 동안 그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계속해 강익모 전시평론가의 반기문 사무총장의 초상화를 그리게 된 동기부터 시작하여 초상화를 그리면 얼마의 기간이 필요한가?, 오래된 엔틱 액자의 소재지, 가격, 대형작품에 대한 설명 등 다양한 이원희 작가의 살아오고 그가 가진 미술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실제로 이 화백은 전통 규범에 얽매이지 않고 인물의 자세를 자유롭게 표현하면서도 개성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인물화가로 삶의 흔적과 정신이 지문처럼 남은 그의 초상화는 각계 유명 인사들의 잇단 ‘러브콜’을 받았다. 1997년에 김영삼 당시 대통령 초상화를 그려 주목받았고, 노태우 박근혜 등 전·현직 대통령과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 이병철 삼성그룹 명예회장, 윤관·이용훈 전 대법원장, 김재순·이만섭·김수한·박관용·임채정 문희상 전 국회의장 등 수많은 명사의 초상화가 그의 손끝에서 완성됐다.
이 화백의 인물화 특징 중 하나는 깊고 풍부한 색감으로 그윽한 삶의 향기를 품고 있는 얼굴들을 에너지라는 감흥의 고리로 풀어낸다. 화면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심리적 상황까지 세세히 잡아낼 수 있을 정도다. 입체화법이나 바닥처리의 투시도법은 물론 카메라 옵스쿠라 기법까지 활용했다. 그에게 서양화 기법의 사실적 인물에 문기(文氣)와 문향(聞香)을 넣는 방법으로 겸재 정선의 진경 정신을 구현하는 돌파구가 초상화인 셈이다.
이원희 작가
출생 1956 경상북도 하양
분야 회화/판화/평면
소속 회전계명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학과 교수
수상
1986년 신라미술대전 우수상
1986년 미술데잔 우수싱
1985년 대구미술대전 대상
1994년 대구광역시미술대전 입선,특선,대상
전시이력 38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