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형적 미니멀 아트에서 내형적 삶의 의미를 복합시킨 리얼리티

남기희 작가, '유위(有爲)가 없는 무하유(無何有)의 경지'
외형적 미니멀 아트에서 내형적 삶의 의미를 복합시킨 리얼리티

박명인(미술평론가·한국미학연구소 대표)

예술가는 보다 높은 가치실현을 지향하고 변화해가는 역동적인 현상에 민감하게 대처하면서 창조적 산출활동을 추구한다. 과거에 미니멀 아트가 입체에 나타나는 현상을 최소화하고 표현의 주관성을 억제하면서 회화적으로 나타내는 요소를 압축시켜 예술은 예술이라는 토톨로지(tautoilogy)로 유럽 등에 영향을 끼쳤다. 또한 뒤샹의 기제품의 오브제, 라인하트의 모노크롬의 회화를 문제 삼아 의식적으로 미적 가치를 저감시킨 작품군을 지칭하여 미니멀 아트라고 하였다.

남기희 작가작품 '무하유지향'
남기희 작가작품 '무하유지향'

그러나 점차 일체의 낭비를 생략하여 물질이 갖는 내재적인 힘을 끌어내려고 하는 예술표현으로써 작금에 유럽을 중심으로 미니멀 아트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그것은 외형식보다는 내면의 미를 추구하면서 형태를 단순화하는 데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술사적 경향은 인상주의로부터 큐비즘으로 추상주의로 전환하는 흐름에 있어서 외적 현실묘사로부터 점차 멀어지면서 색채와 형태가 독자적인 통일을 추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회화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을 벗어나 자기자신의 리얼리티를 추구하고, 어제의 예술도 부정했지만 이 과정에서 회화는 점차 무엇인가 말하려고 했다.

남기희 작가작품 '무하유지향'
남기희 작가작품 '무하유지향'

과연 미술에 있어서 단순화란 어떠한 의미일까. 그것은 꽉 찬 비공간적 공간에는 채워 넣을 수 없다는 한계의식 때문이다. 반면 단순화하고 형체에 구애받지 않은 공간에는 여유가 있고, 무엇이든지 채워 넣을 수 있다는 긍지가 생긴다. 비웠다고 해서 니힐리즘(nihilism)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남기희의 회화는 단순화가 아니고 비운 것도 아니다. 많은 것들이 채워져 있다. 이것을 남기희는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라고 말한다.

장자(莊子)의 이 말은 소요유(逍遙遊)·응제왕(應帝王)·지북유(知北遊) 등 여러 곳에 나오는 말이다. ‘있는 곳이란 아무 것도 없는 곳이란 말로, 이른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가 행해질 때 도래하는, 생사가 없고 시비가 없으며 지식도, 마음도, 하는 것도 없는 참으로 행복한 곳 또는 마음의 상태’를 가리키고 있다. 소요유와 응제왕편에서는 광막한 들(廣莫之野), 끝없이 넓은 들(壙垠之野)로 표현되어 있고, 지북유편에서는 ‘무하유지향에 들었을 때의 상태를 당신과 함께 유위(有爲)가 없는 무하유의 경지에서 소요하고, 너와 나의 대립을 떠나 만물과 하나가 되는 도에 대해 말하면서, 고요하고 깨끗하게 만물과 조화를 이룬 채 유유자적해 사물에 집착하는 일이 없으므로 아무리 큰 지혜로 엿보아도 그 끝이 다함을 알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남기희 작가작품 '무하유지향'
남기희 작가작품 '무하유지향'

그 동안 발표해 온 무하유지향이란 명제에서 많은 사람들은 의아했을 것이다. 그러나 남기희는 이같은 동양철학에서 감회를 받고 일반인들이 속칭 미니멀 아트라고 말하는 형상화를 타파하고 내면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는 가상공간 예술(메타버스 아트)이다. 그러니까 서양에서 의미하는 단순화, 단색화 같은 형식의 아포리아(aporia)가 아니라 장자의 논리에 입각해 보았을 때 무한한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기존의 미니멀 아트는 이 같은 아포리아로 인해 단색화, 단순화 등의 제3의 다른 방법이나 관점에서 새로이 탐구하는 출발점이 되었지만, 남기희는 장자의 철학을 통해 깊은 심미의식을 발견하게 되고 진정한 동양철학의 심오한 심미를 접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형식상의 골격은 미니멀 아트로 보이지만 이것은 대중적 일반 시각이고 내용적으로는 남기희 자신의 삶의 여러 의미와 이미지가 복합적으로 표현됨으로써 미래 지향적인 리얼리티가 함축된 작품이다.

남기희 작가작품 '무하유지향'
남기희 작가작품 '무하유지향'

이를테면, 현대사회는 메타버스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메타버스란 3차원 세계로써 우주와 같은 또 다른 가상공간을 말하는데 영화, 기업광고, 사회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중차대한 현상이다. 남기희는 이러한 메타버스의 기능을 회화에 도입하여 캔버스에 무한한 가상공간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자신의 삶의 형상이나 추구하는 이상을 쏟아 넣고 있다. 이것은 창조를 위한 새로운 형성성(formation)이다. 예전에 없었던 가치를 실현하는 것, 시대적인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 것, 절대적인 가치로써 존재를 실현해 나가는 이론적 한계를 초극해 나가는 지혜이다.

미술에 있어서의 미라는 것을 내용은 무엇이고, 기교는 무엇인가로 판단하는 것은 잘못이다. 미술에 있어서 내용은 그 기교에 의해 생긴 동기이다. 그러므로 어떤 표현을 하면 무내용적이라는 시각현상에서도 내용이 있다. 그 경우는 기교에 따라서 생기는 동기가 기교 바로 그것을 가진 흥미이며, 표현된 기교에 대하여만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추상회화의 실체이다. 사실의 경우와 장식 혹은 상상의 경우에 의한 표면은 다르지만, 미술에 있어서의 내용은 미인 것에는 변함이 없다. ‘내면의 미’가 자연의 외형과 일치해서 생긴 자연의 미가 사실의 내용이며, ‘내면의 미’가 직접 구상되었거나 사물을 상상한 형을 빌려서 구상되어 생긴 미의 형은 장식 또는 상상의 내용이다. 기교란 그 미를 기록하는 방법이다. 그리려고 하는 것을 확실히 안다면 수법은 당연히 생기는 것이다.

남기희 작가작품 '무하유지향'
남기희 작가작품 '무하유지향'

메타버스는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상공간이지만, 추상회화로서의 시각적으로는 확인이 안 되지만 내면의 세계로부터 인지할 수 있는 남기희의 아우라(aura)는 신비롭게 빛나기 시작하여 보는 사람을 일종의 신비로운 가상공간으로 유혹하여 캔버스 위에서 마술적으로 매료시킨다. 이러한 신개념은 미술적 어떠한 장르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적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전통성을 초월하여 정신적·내면적으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자신의 감성에 의해서만 존재하는 모던아트 성향이다. 과학, 도덕, 예술과 같은 자율적 영역에서, 형이상학에서 표현되고 있던 자신의 생활세계의 많은 무형·유형의 궤적을 캔버스 위에 표현하기 어려웠지만 메타버스 개념을 응용해  많은 삶의 형상을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남기희 작가작품 '무하유지향'
남기희 작가작품 '무하유지향'

여기에서 첨언하고 싶은 것은 남기희의 교육활동에 대한 열정이다. 제자들로 결성된 《감성미술제》가 8회를 개최했고, 《미교전》이 4회를 가졌다. 미교전이란 전국에 회장단이 결성되어 있는 교사와 학생의 동행전이다. 매년 두 전람회를 보면서 남기희의 감성지수와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제자의 결집과 전국의 교사와 학생이 동행하는 두 전람회는 창조적 커뮤니케이션과 문화적 구조로써 공동체를 형성하고 예술과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메커니즘(mechanism)으로 그 맥이 확고해 지고 있다.

역시 미술사에서 보더라도 한 화가가 또는 한 작가가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는 프론티어정신은 철학사상가, 또는 이론가들에 의해 탄생해 왔다. 이제 남기희는 장자의 유하유지향이라는 장자의 철학과 접목하여 미니멀 아트가 아닌 무한한 공간개념으로 표출되는 또 하나의 가상공간 회화 양식을 탄생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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