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의 배반, 생각하는 화가 르네 마그리트
김종근 (미술평론가)
“내게 있어 세상은 상식에 대한 도전이다.”, “조그만 현실을 다르게 보아도 현실은 신비롭게 다가올 수 있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주장이다. 좀처럼 보기 드문 그의 걸작들, 적당히 잘 그려 놓은 파이프 그림 아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그림 밑에 써놓은 이 문구 이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기묘한 논리로 설명하는 마그리트의 주옥같은 작품들은 양복 입은 사내와 중절모, 그리고 파이프로 상징되는 마그리트는 1898년 벨기에의 가장 프랑스적인 지역 르시네에서 태어났다. 마그리트가 지닌 유년 시절에 대한 기억은 모두 별스러운 것들이다. 특히 환상처럼 그가 기억하는 무덤 가까이에 이상하게 서 있던 큰 나무 상자가 그것이었다.
그는 열두 살 나이에 처음으로 그림을 그린 그는 그곳에 오래도록 버려진 공동묘지에서 한 소녀와 어울렸다. 그들은 쇠로 만든 철문을 들어 올리고 지하 납골당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어느 날 마그리트는 공동묘지의 부서진 돌기둥과 낙엽 더미 사이에서 그림을 그리는 한 화가를 만났고 그날 이후 그림 그리기가 마술 행위처럼 느껴졌다고 훗날 기억했다. 그에게 닥친 첫 번째 비극은 1912년 강물에 뛰어든 어머니의 자살이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기억은 그로 하여금 "죽은 여인"의 아들로서 자신이 중요하다는 생각과 더불어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했다. 유독 고전 문학에 싫증이 난 마그리트는 1916년 브뤼셀의 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첫 번째 작품 "세 여인"은 피카소의 초기 입체파 회화를 떠올린다.
후에 마그리트는 벽지 공장에서 장미를 그리면서 일을 하면서 포스터 디자인과 광고 일을 하면서 쉬는 시간에 그림을 계속했다. 마그리트는 입체파와 미래파 작품에 관심이 있었으며 그래서 초기 그림들은 그들의 영향이 보인다. 그러나 에로티시즘과 결부된 마그리트의 작품들을 1920년대 후반 영감처럼 떠오르는 수많은 관념에 매료당하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 주고자 빠른 속도로 그림을 그려냈다. 1930년 파리를 떠나면서 마그리트의 예술적 역정은 끝나고 브뤼셀로 돌아온 마그리트의 삶은 점점 부르주아 화가로 변신했다.
그는 여행을 지극히 싫어했으며 오직 변화와 맞물린 자신의 상상력과 더불어 존재했다. 그러나 그의 그림에 나타나는 중산모를 쓴 익명의 남자는 누구도 닮지 않았다. 그런데도 세계의 많은 사람이 그의 화폭에 찬사를 보내고, 경의를 표하는 또 다른 마그리트의 마력과 환영은 무엇인가? 바로 그것은 이미지의 배반, 즉 세상 모든 상식에 대한 도전인 것이다. 마그리트는 뒤트는 풍자와 현실 세계에서 갈피를 못 잡게 하는 감각의 비이성적인 꿈의 세계를 캔버스에 펼쳐놓았다. 왜 그는 이런 초현실적인 세계를 즐겼을까?
바로 그의 초현실주의적인 통찰력이며 매혹적이고 도전적인 시각적 세계로의 불가사의한 혁명에서 출발한다. 같은 그림을 여러 번 또는 주제별로 그림을 그리면서도 그의 그림의 특징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흔하게 사용한 자동기술법(Automatism)의 거침없는 사용이다. 예를 들면 사과, 돌, 새, 담배 파이프 등 가까운 오브제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되 요소들을 화폭에 결합시켜 새로운 시각적 충격과 신비감을 주는 데페이즈망 기법이다. 이 기법은 독수리를 돌 재질처럼 변형시키거나 작은 오브제를 엄청난 크기로 확대하는 방법이다.
또한 '이미지의 중첩', 즉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사물이 한 그림에 존재하는 파라독스한 방법이다. 이번 전시에서 우리가 특별히 눈여겨 볼만한 작품들이 주목 희미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어두컴컴한 집 앞에 서 있는 가로등의 '빛의 제국'(1961)은 마그리트의 대표작이다. 왜냐하면, 밤 풍경의 컴컴한 집과 달리 배경은 푸른 하늘로 묘사되는 낮의 풍경이 밤의 모습과 함께 하는 표현은 마그리트가 반복적으로 그려 사람들에게 익숙한 그림들이다. 공중을 비둘기가 화면을 장악하는 '회귀'(1940년), 중절모 신사의 코앞에 파이프가 떠 있는 '신뢰'라는 작품도 한때 신세계백화점 외벽에 선보여 유명해진 '골콘드(겨울비)'도, 사람의 발과 구두를 결합한 대표작 '붉은 모델'도 살펴볼 만하다. 이렇게 그의 전 작품은 우리의 상식과 고정관념을 깨고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요구한다.
화가라는 이름 대신 오히려 '생각하는 사람'으로 불리길 원했던 마그리트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끊임없이 존재와 세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그림을 통해 시각적으로 재현하고자 한 초현실주의의 철학자였다. 마치 초현실주의의 목표가 인간성의 진정한 근원인 환상, 꿈, 상상 등을 열어 보이는 것처럼 그림으로 실행했다. 특히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광기, 꿈, 환상, 등을 해방함으로써 정신의 완전한 자유를 얻고자 하였다. 상식을 뒤엎으며 세계를 새로운 시선으로 보았던 유일한 철학적인 화가. 마그리트 1967년 가장 탁월한 상상력을 가진 그는 생애를 마치며 그에게 “세상은 혁명을 위해 필요한 자원이 부족하지 않은 그 이상의 존재” 이었다. 그의 상식을 뒤엎는 작품들은 소설가 김영하의 ‘빛의 제국’이나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의 원천이 되거나, 애플레코드사의 사과 모양 로고에 영향을 미치는 등 시대를 초월해 많은 사람에게 생각하는 그림으로서 영감을 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