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로부터 해방된 무욕(無慾)의 순간

의지로부터 해방된 무욕(無慾)의 순간
소훈(蘇勳)의 작품세계 -
신현식/철학박사/미학미술사

우리의 모든 사유와 행위가 전통이나 그 시대의 흐름에 맞닿아 있을 때에 우리는 우리 삶의 정체성(正體性)이 보장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액면 그대로의 복귀나 정체(停滯)가 아니라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변화와 더불어 사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삶의 태도가 안정감과 평온함을 보장해 주며 예측 가능한 연속성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소훈작_5월에 만난 사랑 33.4×19.0cm Oil on Canvas 2016

그러나 예술가는 편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에게 변화는 곧 생명이다. 예술가는 결국 일상이라는 단순성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이고, 일상 속에 포함되어 있는 각종 모순들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대중이 일상을 통해 정의된다면, 작가는 그 일상에 대한 비판을 통해 규정된다. 그런 점에서 예술가라는 직업은 고독하다. 예술이든 철학이든 일상의 차원을 넘어 다른 차원을 추구해 들어가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다.

소훈_늦게 핀 사랑·40.9×27.3 cm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소훈은 더욱 철저하게 고독한 화가이다. 그는 변화를 추구하며 고독해하는 예술가들의 흐름에서 벗어나 홀로 고독하다. 그는 현대미술가들의 ‘새로운’ 매체주의나 소재주의만을 추구하는 경향은 창작의 본질에 맞닿아 있지 않다고 과감하게 말한다. 변화를 지상명제(至上命題)로 여기는 그들의 태도가 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소훈은 진솔한 체험이 결여된 채 선정적인 외관만을 중시하는 것은 표피적이고 인위적일 뿐 진정한 작가정신이 결여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아직 소화되지 풍경, 인물, 정물, 크로키 등 거의 모든 회화 장르에 걸쳐 완숙한 경지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를 두루 섭렵하게 된 것은 전통적으로 화가라면 모름지기 재료와 기법을 막론하고 모든 장르를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우리 근대화단의 오랜 관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리라.

소훈작_4P-가을속으로

소훈은 전라북도 익산에서 화가로 활동하였던 부친의 영향 아래 자연스럽게 화가로서의 꿈을 키워왔다. 그의 형이 화가요, 아내도 화가인 데다가 아들과 조카까지도 미술공부를 하고 있어서 가히 미술가 집안인 셈이다. 이러한 집안의 분위기는 그가 화가로서의 입지를 세우고 예술가적 태도와 예술적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소훈의 그림들은 전혀 어렵지 않다. 사시사철 변해가는 자연의 다양한 양태들을 그저 담담하고 진솔하게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는 자연을 대상으로 할뿐 우리가 살아가는 번잡한 도시의 모습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인위성으로 가득 찬 도시의 모습보다는 순수한 자연의 숨결 속에서 자신의 내면적 성찰을 투영하고자 하는 의도 때문이다. 그의 풍경화에서는 어떤 초월적 존재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소훈작_6F-그날의 기억-수채화

작가적 조형의식을 투영하여 대상을 단순화시키거나 기하학적으로 추상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그가 자연을 감각적으로 보이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만도 아니다. 그의 풍경들은 자연 속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제거해버린다. 그리하여 화면에 등장하는 물상들은 고즈넉하며 심지어 단순 명료하기조차 하다. 화면에는 단순한 몇 가지 물상들만 존재한다. 하늘과 들판, 그리고 나무 한두 그루, 혹은 배 한 척. 그리하여 소훈의 풍경화들은 어딘지 황량해 보이거나 스산한 정감을 드러내 준다. 그것은 그가 자연이미지에 작가의 내면풍경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름으로 변화무쌍한 하늘과 풍요롭기 보다는 어딘지 쓸쓸해 보이는 대지, 그리고 한두 그루의 나무나 배 한 척은 고독한 예술가의 메타포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것은 작가의 말대로 “예술은 우리의 일상일 뿐이며,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슬픔, 기쁨, 고독 등을 캔버스에 투영하는 것이 화가”라는 그의 언급과도 상통한다.

소훈작_25.5-18

이러한 정감의 이미지를 잘 드러내기 위하여 소훈은 화면의 구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는 주로 P형이나 M형 캔버스를 가로로 길게 뉘어서 대지의 넓은 수평성을 강조한다. 기나긴 지평선을 화면의 1/4이나 혹은 4/5정도로 배치하여 변화무쌍한 하늘의 구름을 강조하거나 혹은 대지의 헐벗음을 강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풍요로운 계절의 화려함을 피해 주로 늦가을이나 겨울 혹은 이른 봄까지를 주로 묘사하는 그의 작품들에서는 스산함이 더해진다.

소훈작_7473

이에 더하여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붓놀림을 구사한다. 그의 스트로크는 화면 전체에 공평하게 배분되지 않는 편이다. 자신이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에는 날카롭게 명도대비 효과를 사용하거나 선적(線的) 특성을 강하게 드러내어 윤곽을 강조한다면, 나머지 부분은 재빠른 붓질로써 회화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중심화면에 감상자의 시선을 끌어들인다. 이와 같은 조형적 안배를 통해서 그는 전체적으로 미학적인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이러한 구성적 요소는 특히 풍경수채화에서 현저하게 나타나는데 물과 안료의 적절한 배합으로 응축시키는 부분과, 충분한 수분을 가미하여 선염의 효과를 부여함으로써 확산시키는 방식 등 한국화적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화가로서 소훈의 예술과 삶에 관한 태도는 쇼펜하우어적 사유에 상당 부분 다가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이성에 따라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정신적인 존재이기에 앞서 감성에 따라 충동적으로 살아가는 육체적 존재로 이해한다. 신체의 의지가 지배하는 욕망이 인간적 삶의 본질적 모습이며, 따라서 그 일시적 충족은 가능하나 영원한 충족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맹목적 의지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란 필연적으로 고통과 고뇌의 연속일 뿐이다. 그러나 대상에 몰입하여 아름다움을 직관하는 화가는 스스로 개체임을 잊고 의지로부터 해방된 무욕(無慾)의 순간을 체험한다.
그에게 자연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은 우연적이고 순간적이어서 자신의 작품 속에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으로 붙잡아 둔다. 이 순간이야말로, 의지와 인식과의 자기
분열로부터 초래하는 욕망과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순간인 것이다.

소훈작_홀로 본 풍경 26,0x18.0cm 2016

화가는 일반인들이 잘 보지 못하는 존재의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준다. 우리는 화가의 눈을 통해 존재의 색다른 면모를 발견하고 그것을 새로운 범주로 충실하게 수용한다. 화가는 우는 바람과 부는 바람의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바람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 차이는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바람이라는 이미지를, 범주를 깨버리는 그런 질적 창조라는 근본적인 의미에서의 차이이다. 그것은 스피노자적 의미에서 세계의 새로운 얼굴을 만나는 것이다.

소훈은 굳고 곧은 예술 세계를 흔들림 없이 걸어온 화가이다. 화가로서 소훈에게 아주 존경할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술을 향한 그의 진솔한 애정이다. 예술론을 펼칠 때면 그는 늘 열정어린 어투로 비관주의와 낙관주의를 넘어선 숭고한 사랑의 길을 말한다. 예술의 길을 걸으면서 서로가 잘했느니 못했느니 비아냥거리고 투덜대는 그런 판단은 언제나 헛된 일이며, 또 진정한 화가의 길은 언제나 어떤 결과보다는 끊임없이 매진하는 그 과정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그런 사랑을 말이다. 어떤 대상을 값없이 사랑하는 만큼 자신도 똑같은 사랑을 돌려받는 법이라고 소훈에게 말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허허롭게 웃으며 계면쩍은 얼굴을 할 것이다. 꾀부리지 않는 정직한 농부처럼, 그는 오늘도 긴 고랑을 따라 묵묵히 쟁기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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