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적인 삶과 종교적인 신념을 이상화한 인물

자연적인 삶과 종교적인 신념을 이상화한 인물
글 신항섭(미술평론가)

연주회
연주회

모든 예술은 형식과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형식은 눈으로 인지되는 형태적인 면 즉 조형성을 뜻하고, 내용은 형식 속에 담긴 사상 철학 이념 따위를 말한다. 예술에는 이 두 가지가 동전의 양면처럼 존재하는 것이다. 형식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내용이 빈약하면 예술적인 가치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또한 내용이 풍부하더라도 독자적인 형식미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보잘 것 없게 된다. 이상적인 것은 두 가지 예술적인 가치가 등가를 이루는 지점이다. 김왕현의 조각도 이와 같은 요구에 예외 일 수 없다. 10회(신세계갤러리) 및 11회(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개인전에서 보여준 그의 작품에서는 일단 개별적인 형식미를 완성하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최근에 도달한 그의 인체해석은 확실히 이전보다 한층 성숙되고 세련되어 보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쩌면 개별적인 형식미를 지척에 두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른다. 몇 가지 새로운 시각의 조형언어 및 어법을 구사하면서 좀 더 명료한 형태적인 특징 즉 형식미를 추출해내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가족나들이
가족나들이

최근 작업실에서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인물의 형태해석은 확실히 그만의 시각이 담겨있다. 어떤 특징의 이미지를 반복하여 보여주는 것은 숙련도와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기술적인 문제인 셈인데 이는 동시에 개별적인 형식의 완성을 향한 당연한 절차이자 과정이다. 다시 말해 미술애호가들에게 새로운 형식미에 대해 익숙해 질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제공하는 일이다. 전시회를 통해 스스로의 조형세계를 확인하고 검증받는다는 것은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인 셈이다. 그가 오랜 모색과 연구를 통해 산출해낸 독특한 형태의 인체해석은 곡선과 직선과 곡면과 평면이 조합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함께 가는 삶-동반자
함께 가는 삶-동반자

여기에다 요철이라는 조형어법을 도입함으로써 어느 방향에서 보더라도 풍부한 양감 형태의 다양성이 요구된다. 이러한 요구에 충실하지 못하면 시각적인 결핍이 나타나게 된다. 따라서 형태를 단순화하거나 생략하고, 변형 왜곡하는 경우 환조가 요구하는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그의 인체조각은 환조로써의 조형적 특징을 적절히 안배함으로써 시각적인 이미지가 풍부하다.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조형어법은 인체조각으로써의 아름다움을 위해 기능 한다. 아무리 새로운 조형언어 및 어법을 구사할지라도 아름답지 않으면 그 의미는 반감하고 만다. 설령 비정형의 형태일지라도 그 전체적인 비례 및 균제, 조화, 통일이라는 조형적인 요소를 외면할 수 없다.

함께 가는 삶
함께 가는 삶

그의 인체 해석은 부분적으로 과장되거나 왜곡되고 있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비례가 깨지는 일 없이 안정적이고 아름답다. 인체를 왜곡 변형시키면서 아름다운 비례를 산출하는 것은 생각처럼 간단한 일은 아니다. 아무리 특이한 조형어법을 구사할지라도 비례가 깨지면 어색하고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의 인체 작업은 형태를 변형 왜곡시키는데도 사실적인 힘이 느껴진다. 형태를 파기하거나 해체하고 재해석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지 않는 것이다. 이는 정연한 논리적인 사고에 의한 안정된 비례감각과 무관하지 않다. 그가 강구해낸 조형어법은 순전히 개별적인 미적 감각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인 형태의 단순화 및 생략 그리고 평면 및 요철에 의한 곡면 처리는 현대조각에서는 이미 보편적인 기법이다. 물론 이러한 기법적인 특징 및 형태해석은 모더니즘 또는 큐비즘의 산물이지만 그 이론적인 바탕은 이 시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다시 말해 그의 작품이 모더니즘이나 큐비즘의 영향에 있다고 해도 현재 우리들의 미적 감각에 전혀 위화감을 일으키지 않는다.

성가정상
성가정상

구태의연하다는 느낌이 없는 것이다. 그의 조형적인 언어 및 어법이 현대성에 충실히 대응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이는 아마도 팔등신에다 깡마른 현대인의 이상적인 형태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날렵하게 보이는 인물의 전체적인 형태는 팔등신의 비례를 가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두상을 동양적이기 보다는 서양적이다 아니 동서양인의 신체적인 특징을 드러낸다기보다는 그 특징을 지움으로써 도달하는 보편적인 인간상을 구현하고 있다고 본다. 얼굴은 팔등신의 비례에 어긋나지 않게 길쭉하고 얼굴 폭은 좁고 뒷머리는 길다 그런가하면 광대뼈는 튀어나오고 콧잔등은 들어갔으며 턱은 뾰쪽하다. 이러한 두상의 특징만을 놓고 보더라도 동양인과 서양인을 한데 뭉뚱그려 놓은 듯싶다. 이는 그가 보편적인 인간상을 지향한다는 사실을 뒷받침 한다. 이처럼 그는 개별적인 형식미를 갖추기 위한 몇 가지 특별한 조형언어를 만들어내 이를 적절히 조합하여 지금과 같은 인물상을 실현할 수 있었다. 이제 그와 같은 조형적인 특징을 구비한 그의 작품을 보면 언제 어디서나 '김왕현'을 떠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더구나 순수한 인체가 아닌 일상적인 모습을 표현한 인물 작품 또 는 독특한 조형언어를 보여준다. 치마폭을 연상케 하는 역삼각 형태의 평면적인 구조가 그것이다. 의상의 이미지를 함축하여 표현한 평면적인 형태의 구조는 환조인 인체와 결합하여 '부조화의 조화' 라는 미묘한 시각적인 인상을 준다. 치마를 납작하게 만들어 옆으로 펼친 듯싶은 평면적인 구조는 강렬한 시각적인 인상으로 다가온다. 단순한 역삼각형 구조가 그처럼 강력한 시각적인 인상을 결정짓는다는 것은 역시 조형의 묘미이다. 이 역삼각형의 구조는 의상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군상에서 인물과 인물을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그의 작품에서 군상은 대체로 가족이기 십상이다. 가족은 혈연관계로써 이루어진다. 이러한 긴밀한 관계를 평면적인 구조로 이어놓음으로써 연대감을 강조한다. 치마폭과 같은 이미지의 평면적인 구조는 필연적인 관계로써의 친숙성 또는 혈연관계로써의 밀착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가족 연주회
가족 연주회

그의 작품은 초상으로써의 인물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어느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그러기에 동세감이 강하다. 관념의 세계가 아닌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작품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도 현실적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가족이 자리한다. 사회생활의 기본 단위인 가족의 형상을 통해 인간 삶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언제나 미래지향적이고 희망적이다. 종교적인 신념에 의한 이상적인 세계관이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음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구원의 상징인 종교야말로 이상적인 삶의 형태임을 주시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작품은 성상으로써의 의미에 필적하는 것이다.

남도의 소리
남도의 소리

또한 그 자신의 고향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지기도 한다. 섬마을 사람들의 강인한 삶의 정신 및 건강한 육체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형상화 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고향에 대한 애정의 차원을 넘어서는 인간의 본성, 즉 자연과 일체가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순수성에 대한 관심이자 애정의 표현이다 자연에 동화되는 삶이야말로이상적인 세계에 가장 근접하는 태도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아무튼 그는 종교적인 인식과 자연과 일체를 이루는 삶이라는 두 가지 형태의 인간형상을 통해 이상적인 조형세계에 도달하고자 한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은 조형적인 측면에서 개별적인 형식미와 작품 속에 내포된 의미 내용을 일치시키고 있다. 조형적인 형식미는 역시 아름다움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내용은 자연으로의 회귀를 꿈꾸는 인간의 순수성과 이상세계를 지향하는 종교관이 인물의 형상 속에 녹아들고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아트코리아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