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몸이 안 좋아서 병원을 다니고 있다는 송 화백은 몇 번의 전화 시도 끝에 몸 상태가 괜찮은 오늘에 맞춰 돈화문로에 위치한 송 화백의 사무실을 찾았다. 송규태 작가는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아트코리아방송 촬영팀을 반가이 맞아주었다.
송규태 화백이 한창 국보급 서화의 보수와 재현 분야에서 독보적인 명성을 쌓아갈 때는 ‘현대 민화’라는 말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지금은 수만을 헤아리고도 남을 민화 인구가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 민화는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시작되었다.
민화가 이렇게 짧은 기간에 눈부신 발전을 이루기까지는 수많은 사람 중에서도 이론의 여지 없이 가장 앞자리에서 논의되어야 할 인물이 바로 송규태 화백이다.
그러나 송규태 화백은 삼양동 판자촌에 살며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던 당시 같은 동네에 살았던 운정 정완섭 화백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림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운정은 이당 김은호 화백의 제자로, 수묵 산수화와 채색화에 두루 능한 중견 한국화가였다.
일찌감치 화려하고 섬세한 필력을 갖추게 된 송규태 화백은 1950년대 후반부터 고서화 보수 작업으로 명성을 드날리게 되는데 민화의 선각자 대갈 조자용 선생이 민화를 중심으로 한 에밀레박물관을 개관하면서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민화의 보수 수리를 그에게 맡겼다. 송 화백이 우리 민화와 의도치 않게 만나게 되면서 안료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섬세하고 화려한 그의 필력은 옛 고서화의 모사에서 특히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었다.
이후 1970년대에 이르면 환자가 명의를 찾듯 파인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수많은 그림들이 줄지어 그를 찾아 들어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이나 호암미술관, 리움미술관 등 국내 유명 국공립·사립 미술관의 그림 치고 그의 손길을 거쳐 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송규태 화백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고미술품 복원으로 그는 50여 년간 1만 여 점의 고미술품을 복원해냈다. 고려대 박물관에 걸린 ‘동궐도(東闕圖)’도 그중에 하나다.
경북 군위 출신인 송규태는 50년 경력을 쌓으면서 한국 민화의 최고수가 되었다. 그의 대표작인 '서궐도(西闕圖)'는 지금은 사라져버린 인왕산 자락 경희궁(慶熙宮)의 장중한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해 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이 분야에서 얼마나 뛰어난지 알려주는 전설 같은 일화는 무수히 많다. 그가 보수 작업한 그림에서는 어느 부분이 원래의 것이고 어느 부분이 보수된 부분인지를 분간하기조차 어렵다고 한다. 채색이 얼마나 완벽한지 길게는 수백 년 전에 그려진 원래 그림의 색채와 전혀 따로 놀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이다.
이병철 회장이 좋아하던 민화 작가는 송규태(宋圭台·1934~) 작가였다. 대갈 조자용 선생은 일찍이 미국에 가서 하버드대에서 건축학 석사를 마치고 1950년대 중반에 귀국해 민화(民畵)와 민학(民學)에 관심을 집중하였다. 미국에 가서 한국의 원형(原型)문화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가를 깨닫고 건축가에서 민화 전문가로 공간 이동을 한 것이다. 이름 모를 길거리 작가들이 그린 민화를 알아보고 이를 학문적으로 정립한 인물이 조자용이었다. 조자용이 1967년도에 민화를 전시하기 위한 에밀레 박물관을 세우면서 낡고 해어진 민화의 수리는 전적으로 송규태에게 맡겼다. 조자용의 추천으로 한옥으로 지어진 미국 대사관저에도 송규태가 그린 민화 '해전도(海戰圖)' 병풍이 들어가게 되었다.
이렇게 민화가 지금처럼 대중화가 될 수 있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고미술품 복원을 계기로 꾸준히 민화를 그려온 파인 송규태 화백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 화백은 수많은 장생도(長生圖), 책거리, 화조도(花鳥圖), 연화도(蓮花圖), 산신도(山神圖) 등을 그려왔으며, 우리 민화의 특징으로 각각의 의미를 담은 기능적 측면을 꼽을 수 있다.
송 화백은 문득 ‘서궐도’ 복원에 대해서 ‘동궐도’의 경우엔 원본을 참고하면서 잘 복원할 수 있는 반면 서궐도의 경우엔 남아있는 자료가 경희궁 내 전각 배치의 개략적 위치 개요가 흑백 먹선으로만 기록된 ‘서궐도안(西闕圖案)’ 밖에 없어서 다행히 원본이 존재했던 동궐도를 복원했던 경험을 살려 색채나 모양들을 참고하면서 복원했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스케치만 있는 것에 살을 입혀 복원했다는 것이다.
송규태 화백이 민화의 대중화를 위해 2000년도에 설립한 파인민화연구소는 그의 호인 파인을 따서 만든, 민화에 대한 각종 자료와 함께 후진들을 양성하는 민화전문기관으로 지금도 제자들을 위해 편치 않은 몸으로 민화의 혼을 사르고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정부 차원에서 우리 민화에 대한 정부차원에서의 관심과 지원이 이뤄지길 바랄 뿐이며 민화를 가르치는 많은 분들이 아교를 사용하지 않고 사용하기 편한 화학 풀을 사용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방법으로 제자들을 가르켜 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파인 송규태(芭人 宋圭台)
작품소장
1973년 호암미술관 십장생
1974년 한국민속촌 10폭병풍
1976년 주한미대사관저 해전도8폭 병풍
1983년 김포국제공항 귀빈실 십장생
1988년 서울 롯데월드 박물관 경기감영도
1989년 총무처 (의전용) 십장생 (10폭)
1991년 청와대 춘추관 화조 4점
1992년 청와대 백악실 (연화도, 천도도)
1992년 주한미 부대사관저 (책거리 병풍)
1997년 국가정보원 (십장생 병풍, 연화도 병풍)
1998년 경기도 박물관 화성 능행도 (8폭 병풍)
1999년 서울 중구청 (십장생 병풍)
2002년 서울 역사박물관 (창덕궁 인정전 일월오약도 재현)
2004년 고려대학교박물관 동궐도 모사복원
2004년 모로코 모하메드 6세 왕궁 (십장생 병풍)
2004년 튀니지나 공화국 대통령궁 (모란도 병풍)
2004년 알제리 대통령궁 (책거리 병풍)
2005년 캘리포니아 어바인시청 (십장생)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디자인 교육원 강사/가회박물관 민화아카데미 소장/한국 민화 작가회 고문/파인민화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