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에 담긴 그리움의 화가 한국의 모란디- 고재권
야수파 화가 앙리 마티스는 그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나의 이상은 모든 사람에게 즐거움과 평안함을 주는 미적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꿈꾸는 것은 바로 균형의 예술로서 사람들에게 안락의자와 같은 평안함을 주기를 갈망했다.
이러한 신념과 작가의 태도로 사랑을 받는 화가가 고재권 작가이다.
그도 일찍이 그의 그림을 사랑하는 애호가들을 향해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면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찾았으면 좋겠다”라고 열망했다.
일찍부터 이러한 신념을 가진 배경에는 아무래도 그의 호주에서의 유학 시절로 스토리는 귀결된다.
고국을 떠나 멀리 타국에서 느끼는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 그것은 너무나 간절하고 애틋했다. 그 그리움을 한국적인 소재들을 찾아 작업하면서 위안을 받고 치유를 했다. 그 소재가 바로 흙으로 빚은 질박한 그릇들이었다.
그러면서 작가는 어릴 적 일상 속에서 보았던 옹기와 백자의 형상을 집중적으로 시리즈로 발표해 왔다. 그러한 모티브를 그린 심정을 외국 유학 생활을 해본 사람들은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그런 그에게 전설적인 사건이 하나 일어났었는데 이 에피소드는 고재권 작가를 이야기하는데 빠짐없이 등장한다.
다름 아닌 2003년, 호주에서 활동할 당시 시드니 아트페어에 출품한 그림 40여 점이 오픈 프리뷰 때 다 솔드아웃 되어 큰 화젯거리로 현지 신문과 TV에서는 ‘기적’으로 소개된 것이다.
이후 그는 미국의 바젤 마이애미와 아트 마이애미, 스페인 ARCO, 호주 시드니 아트페어 등 국제적인 미술시장에서 일약 주목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이때 고재권 작품 속의 그 모티브들이 하나같이 그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따뜻한 추억이자 기억에 사물인 전통적인 그릇들이었다.
그 그리움과 향수가 모여 한국의 전통그릇인 특히 백자와 옹기가 고국에 계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응집된 이야기며 노래였다.
어쩌면 감상자들은 화폭 속에 진하게 배어있는 그리움의 울림에 흔들려 이 그림들을 통해 그와 함께 마음의 노래에 공감한 것이다.
작가는 그렇게 이방인으로서 뼛속 깊이 가졌던 한국인의 정서를 조용하고 고요하게 쉬지 않고 담아왔다.
양식적으로 보면 그의 화폭에 그릇들은 비록 단순한 형태이지만, 그림은 보는 이들에게 많은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현란한 무늬도 없이 아무렇게나 놓여진 듯한 오히려 그림 속의 단순한 형태가 사람들의 가슴을 툭 친다. 어쩌면 그것은 백의민족의 우리 혼, 순백의 아름다움의 소박미를 강렬하게 연상시키기도 한다.
마치 어머니의 품속 같은 아늑한 정감을 그릇에서 느끼고 우리의 옛날 토속적인 분위기에 빨려들어 보면 볼수록 친근함과 정겨움이 고재권 그림의 치명적인 매력이다.
화면의 배경을 생략하고 담백한 색채로 밀려오는 그의 표현과 구성 양식은 깊은 여운과 울림으로 우리를 놓아주지 않고 붙잡는다.
고재권은 이렇게 무심한 듯 정적인 오브제를 독특한 미감으로 드러내며 사람의 마음을 주무르는 미묘한 터치와 질감을 주는 작가인 것이다.
그 흔한 화려한 장식도 문양도 접어두고 그대로 그릇 자체의 사용한 ‘순수함’으로 기교를 배제한다. 담백함이 서로 조화롭게 어우러져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자연미와 무위의 순수미 만으로 그림 속에 녹여 내는 기술을 지닌 작가이다.
세계적인 정물화가 샤르댕에게 없는 질서와 간결미로 작가는 그릇을 묘사함으로 고유의 색감으로 삼차원과 이차원의 세계를 넘나드는 시각적 경험을 유감없이 부여한다.
그리하여 고재권의 작품은 우리 삶의 흔적과 생활의 정서를 그대로 그릇에 담아 감상자들에게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리는 새로운 삶의 시간도 안겨준다.
이처럼 고재권의 형식은 짜임새 있게 늘어놓으며 독특한 공간미를 대담하게, 그 격식이 무료할 정도로 청량하고 소박하다. 특히 조화롭게 어우러져 다양한 균형감각을 주는 선반 위 그릇들의 질서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도자기, 글라스 등을 주제로 한정된 색채, 추상적 형체에 의해서 조용하고 깊이 있는 존재의 세계를 섬세하게 조율했던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모란디가 겹친다.
고재권의 그림에서 발견되는 특유의 온화한 색조와 부드러운 질감에서 편안함이 가져다주는 우리 그릇의 맛과 마술에 취하게 된다.
그는 정물화를 통해 어떻게 하면 물체를 본질 상태로 드러낼 수 있을까 하는 모란디의 고민과 어떻게 고향의 그리움과 향수를 그릇으로 드러낼 수 있을까 물었던 고재권의 고민이 절묘하게 교차한다.
현실보다 더 추상적인 것은 없다는 모란디의 결론에서 일상적인 소재를 그리며, 오직 빛과 공간과 형태의 본질적 감각에 몰두했던 영혼을 고재권 작가가 공유 한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마침내 고재권은 가시적인 세계에서 크기가 다른 화면 위에 그릇을 가로로 배열, 혹은 세로로 쌓아두거나 다양한 구성을 반복하면서 같은 소재가 반복되면 지루해질 수 있는 정물화를 단순미의 정점으로 승화시켜 놓았다.
작가는 여전히 그릇을 마치 처음 보는 사물처럼 인식하고 이리저리 그릇들을 더하거나 빼면서 자리를 옮기며 끊임없이 실험으로 공간을 분할하고 구성한다.
특히 최근작에서 보여지는 대형작품들은 새롭고 신선하다.
색채의 적극적이고 용감한 사용, 공간의 파격적인 변용, 여백과 배경 사이에 놓이는 그릇의 팽팽함이 더욱 눈길을 끌며 강조된다.
고재권은 선택한 오브제들에서 색채와 형태, 구조의 아름다운 변주를 관람객으로 하여금 지금 보고 있는 것과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다.
“현실보다 더 추상적이고 초현실적인 것은 없다”라며 정물 구상을 통해 추상의 세계로 나간 모란디처럼.
일상적인 소재에 대한 끊임없는 사색과 직관으로 기억을 그리움을 작품에 질서와 새로운 가치로 바라보는 고재권은 먼지 쌓인 빈 창고에서 방에서 아무도 보지 못했던 존재와 마주하며 그릇들을 차분하게 균형 잡힌 색조와 정제된 붓질로 완성에 도달한다.
그 그림들 위로 고요하지만 미묘한 울림을 주는 조르조 모란디의 가뿐 숨결과 영혼들이 스쳐 지나간다.
어쩌면 고재권은 한국의 조르조 모란디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