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음질 기법의 달인' 황삼용 작가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김미영 국장과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수레로 195번길에 위치한 황삼용 공예작가의 공방을 찾아가는 오후 도로는 많은 정체를 거듭하며 4시 정도에 도착하였다.
황삼용 작가가 기다리고 있다 반갑게 맞이하고, 도착과 동시 기다렸다는 듯 지붕을 뚫을 듯한 소나기가 공방의 지붕에 쏟아부었다. 공방 입구를 들어서자 황 작가의 거대한 작품이 들어서는 방문객의 시선을 압도하듯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우리를 맞았다.
경남 고성이 고향인 황 장인은 17살 때 당시 26살이던 친형 황의용 공예작가의 영향을 받아 우연히 나전칠기를 접하게 됐다. 그 당시 나전칠기는 ‘자개장롱’의 인기로 공장만 열면 돈을 벌었기 때문에 전국 곳곳에 나전칠기 공장이 즐비했고, 한 공장당 7~8명씩 분업한 장인이 함께 제작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부산에서 큰 공장을 운영한 형 옆에서 1976년부터 1998년까지 자개 붙이는 노하우를 전수 받았다.
그 후 시간이 흘러 점점 나전칠기의 인기가 떨어졌음에도 이를 천직으로 삼고 서울로 올라와 본격적인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다양한 분들을 만났던 장인의 삶은 그 누구보다 다이내믹했다. 눈빛에 작업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차 한 잔으로 잠시 피로를 회복한 후 김미영 국장과 황삼용 작가의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인터뷰
Q. 김미영 국장(아트코리아방송 문화국장)
A. 황삼용 작가(아트코리아방송 선정 문화예술대상 공예부문 수상자)
Q. 네! 선생님 안녕하세요?
A.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Q. 2021년 아트코리아방송이 선정한 대한민국문화예술대상을 받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A. 감사합니다.
Q. 심사위원들이 심사숙고 끝에 결정하신 일이니까 영예스러운 상이죠.
A. 제 생각은 제가 유명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되면 책임감이 따를 수도 있잖아요.
2021년도에는 전 세계가 코로나 19로 인해서 활동을 많이 못 했잖아요?
사실은 4월달에 워커힐호텔 전시 준비과정에서 취소됐고, 또 세종문화회관에 전시 승인까지 떨어졌었거든요.
세종문화회관 같은 곳은 아무나 쉽게 잡을 수 있는 곳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 개인적으로는 참 그런 곳에 전시하면 모든 걸 떠나서 전시를 한다는 그 자체가 큰 의미가 있는거죠.
그렇게 들 떠 있었는데 코로나 19로 전부 다 철수했거든요.
안타깝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제게 가장 큰 성과는 아트코리아방송에서 올해의 작가로 선정해 준 게 그나마 위안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Q. 아트코리아방송에서 이렇게 훌륭한 작가를 발굴하고 또 이렇게 상을 드리고 세상에 이렇게 알리고 이런 일을 하게 되어 저희도 기쁘고 굉장히 축하할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A. 심사위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꼭 드리고 싶고요.
또 사실은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지 않느냐?
저는 지금도 밤 10시까지 작업을 하거든요.
토요일도 일요일도 사실 지난 추석, 설 때도 작업을 했습니다.
저는 술을 안 하기 때문에 거의 나가는 일이 많이 없어요.
거의 작업에만 몰두하다시피 하는데 이 작업을 지금 46년째 하고 있지만 이 작업실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고 밖에 나가면 모든 잡념이 생겨요.
내가 참 심혈을 기울이고 내 일정을 바쳐서 해 온 지금은 이렇게 여러 곳에서 추천을 해서 상을 주시는데 어떻게 보면 자부심도 생기고 그렇습니다.
Q. 이렇게 사십몇 년 동안 이 길을 계속 오로지 이 길 만 걸어오셨는데 작업실에서 작업에만 빠져드는 이유가 뭘까요?
A. 어느 보도자료에서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나전칠기를 위해서 자식을 포기했다는 보도가 한 번 나간 적이 있습니다.
사실은 그게 맞거든요.
집사람하고 결혼 해 가지고 집사람하고 자식을 갖냐, 안 갖냐에 갈등을 참 많이 했어요.
근데 저는 제가 자식을 가지게 되면 이 일을 반드시 떠나야 되고 이 일을 해서는 자식을 남들이 원하는 좋은 교육을 가르칠 자신이 없었어요.
제 나름대로 참 고민도 많이 했고, 마지막은 내가 희생하거나 포기를 하는 방향으로 결정했거든요.
한때는 사실 저희 공방에 화재가 두 번 났었거든요.
2000년 5월 1일 날 화제가 났고, 2007년도 1월 7일 날, 화재가 났어요.
그것도 거의 새벽 2시 반쯤 근데 제일 처음 화재가 났을 때는 누군가의 방화인데 범인을 잡지 못했어요.
그때 제 작품하고 다 태웠어요.
그때 당시에 이 일을 한 후 가장 힘든 방황을 했었어요.
모든 거 다 포기하자, 하늘에서 이 짓 하지 말라고 불이 난 거 같다.
포기하고 산에만 다녔어요.
산에만 가서 대략 5~6개월 정상에 올라가서 그냥 가부좌 틀고 앉아 있고,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환청이 들려오기 시작했어요.
자개가 선생님! 저 좀 빛나게 해 달라는 환청이 들려와서 어느새 나도 몰래 작업실에서 또 작업을 하고 있었어요.
그의 자개를 활용한 공예작업에 대한 신념과 의지는 대단한 듯하다.
황 작가의 작품 거북선이 남원 옻칠 공예관에 출품되어 그곳에 가면 그의 혼이 깃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황 작가는 남원에 출품한 작품이 거북선인데 제목이 ‘혼, 혼, 혼’이라고 했다.
왜 ‘혼, 혼, 혼’을 타이틀로 붙였냐면, 충무공은 혼으로 나라를 지켰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두 번째 혼은 왜구들이 이순신 장군 앞에서 혼쭐이 나고 솔직히 한 번도 못 이겼잖아요.
세 번째 혼은 제가 그 충무공 이순신의 혼을 조금이라도 기리는 뜻에서 제목을 ‘혼, 혼, 혼’으로 붙여서 거북선을 만들었다.’고 말하며 앞으로 재정적 여유가 생기면 거북선 10척을 더 만들 게획을 밝혔다.
황삼용 작가는 작업할 때 주로 끊음질 기법, 주름질, 타박이법을 모두 사용한다. 남해안에서 나는 전복껍질(색패)을 주로 사용하고 부분적으로 백패 야광(소라껍질) 패를 사용하는데 주로 귀패와 바닥패를 쓴다. 현재 주로 쓰는 기법은 끊음질 기법으로 이는 자개를 가늘게 잘라 이어붙이는 기법이다.
끊음질은 자개를 이용해 문양을 표현할 때 자개를 1mm 이하의 크기로 자른 후 칼로 끊어 붙이면서 문양에 따라 이어 나가는 방법으로 이 작업만은 기계화하지 못하기 때문에 황 작가의 끊음질 기법이 인정받고 있으며, 주로 조선 전기부터는 끊음질을 사용하였다. 이는 현재까지 나전 공예의 발전으로 많이 응용되고 있다.
김미영 국장의 마지막 멘트로 인터뷰가 끝이 났다.
Q. 아트코리아방송이 선정한 대한민국문화예술대상 공예부문에 수상하신 것을 정말 축하드리면서 앞으로 또 기회가 되면 황 작가님의 작품 세계를 조금 더 많은 분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바라고 원하시는 작업 앞으로 구상하시는 그 프로젝트가 훌륭하게 눈에 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면서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A.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