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경기도 수원시 권성구 세권로에 위치한 ‘담산 이순금 서예 교실’을 찾은 시간은 오후 3시가 넘어서였다.
이순금 명인 원장실 벽면에는 수많은 붓과 서예 관련 서적들이 온 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 옆 강의실에는 붓글씨를 쓸 수 있도록 탁자에 헝겊보가 깔려 있다. 명인의 제자들이 글쓰고 지도받는 연습장임을 알 수 있었다.
연습실에는 화선지가 펼쳐진 채로 탁자에는 벼루, 먹, 붓 등 서예 도구들이 놓여 있었다.
촬영이 시작되고 이순금 명인은 붓글씨를 쓰기 전 깊이 숨을 가다듬는다. 붓을 잡고 글쓰기에 몰두하는 이순금 명인의 눈빛이 진지하다.
몇 살에 서예를 시작했느냐는 질문에 아버지가 고창에서 서당을 운영하셨는데 아주 어릴 때부터 서예 하시는 아버지 옆에 앉아 늘 먹을 갈아드렸다고 한다. 붓을 만지면 야단을 맞아서 감히 붓은 제가 만질 수 없는 귀한 물건이었다고. 그러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서예를 하시던 담임 선생님이 서예를 적극적으로 권하셔서 명인도 붓을 잡았다. 대회에 나갈 때마다 상을 타면서 붓글씨 잘 쓰 는 애라고 소문이 났는데 스스로 자랑스러웠고 아버지도 대놓고 칭찬하지는 않아도 많이 기뻐하셨다고 한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시울이 촉촉해지는 이순금 명인.
명인도 글 쓰는 일을 좋아하셨냐고 묻자 ‘제가 워낙 내성적이고 말수가 없는 편인데 무엇에 한 번 몰입하면 올인하는 성격이라 서예가 저하고는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에 갈 때마다 ‘붓글씨 잘 쓰는 애’라는 수식어가 제 이름보다 더 먼저 따라다녔는데 그 자부심도 좋았다.’고 답했다.
그녀는 97년 수원에 서예 교실을 열었다. 그 당시에는 초등학교에 한자 수업 시간이 있었고, 미술 수업에 서예와 수묵화 수업이 있어 주로 초등학생들 한자와 서예를 가르치면서 서예 교실을 시작했다. 89년부터 명인은 이미 서예협회 활동을 시작하면서 서예인들과 교류를 나누고, 협회의 요직을 맡으면서 제 활동영역을 넓혀 나간 터였다. 그 뒤로 용인지부를 새로 창립하여 지부장을 맡고, 앉아서 글만 쓰던 서예인들이 활동하면서 수입도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일에 앞장을 섰다.
이순금 명인이 손에 두루마리 글씨 한 묶음을 들어보인다. 그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사주당의 태교신기인데 책 한 권을 한 두루마리 화선지에 완필해 전시회를 하자 큰 화제를 불러 모았던 작품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서예를 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자신만의 개성적인 필체를 찾는 것에 한계를 느낄 때였다고 털어 놓는다. 두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도 못하고 엄마가 필요할 때 역할을 못 해주는 것도 늘 마음에 걸린다고 말할 때는 그녀도 서예 명인이기 전에 역시 두 아이의 엄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인이 되시기 전과 된 후에 달라진 점은 주변에서 그녀를 대하는 신뢰도를 제일 먼저 꼽았다. 또한 명인이라는 칭호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스스로 더 조심하고, 더 열의를 다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서예라는 분야에 대해서 좀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 주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는 희망 사항을 내비치며 인터뷰를 마쳤다.
이순금
대한민국 서예대전 특선 3회
대한민국 현대서예문인화대전 우수상 2회
대한민국 서법대전 대상
대한민국현대미술대상전 대상
한국서예청년작가전 (예술의 전당) 외 국내전시회 다수
주독 대한민국대사관 초청 ‘아름다운 우리 한글전 사랑’ 외 해외 전시 다수
한국서예협회 경기도지회 상임부지회장
한국서예협회 용인시지부장 역임
서예대전(월간서예)명필 5체장 및 심사위원
한국예술문화명인 전승아카데미 원장
한국예술문화명인진흥회 경기지회장
대한민국 서예대전 심사위원 등 심사, 강의 다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