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근 (미술평론가)
천의 얼굴에 장인, 화가 민병구. 그러나 그를 화가라고만 부르기에 그는 너무나 억울하다. 그는 정말 우리 화단에서 보기 드문 입지전적인 무대미술가이며 비주류 장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를 알고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그의 과거 속으로 꼭 한번은 들어가야 한다.
민병구 작가는 학창시절 이렇다 할 미술교육을 받을 수 없는 가난하고 궁핍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언제나 가슴속 예술에 대한 뜨거운 열망은 운명처럼 버릴 수 없었고, 우연히 헌책방에서 사들인 사군자 묘법서를 보며 그림에 대한 용기를 갖고 꿈을 키웠다.
“어느 날 고모님을 따라 인사동을 갔는데, 그때 본 한국화 한 점이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사진이라 착각할 정도로 세밀한 묘사를 해낸다는 것이 신기했죠. 그 뒤로 미술에 대한 꿈을 키웠고, 고등학교 때 민전에 입선을, 그런데 기초도 없이 공모전 냈다고 건방지다며 미술 선생님께 혼이 많이 났습니다.” 그가 그림을 그리게 된 고백이다.
당시 교감 선생님은 수업을 듣지 않아도 좋으니 학교에 와 미술실에서 그림을 그리라고 했고 이것이 화가로서 출발이었다.
너무나 미술대학에 진학하고 싶어 했지만, 학교에서의 미술교육은 그가 원하는 진짜 미술과는 괴리가 있었고 동생들을 챙겨야 하는 만큼 경제적 사정도 어려웠다.
그의 인생 유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그는 타고난 예술적인 감각과 끼를 포기할 수 없어 아무런 인연도 연고도 없는 화가 선생님들을 찾아갔다.
그렇게 해서 남농 허건 선생님도 찾아뵙고, 월전 장우성 선생님도, 박노수 화백, 장욱진 선생님도 그는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정말 피나는 노력으로 모든 잡스러운 일들을 모두 거쳤다.
우선 조소하는 조각가 밑에서 흙 붙이는 작업부터 주물 뜨는 법을, 불상 만드는 데서 목각을 배우는가 하면, 용접이며, 목공이며 노가다 건설 현장까지 그는 모든 것을 섭렵했고, 할 수밖에 없었다.
동생들을 가르쳐야 하다 보니 많은 기술을 배우게 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무대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닥치는 대로 익히고 배웠으며 마흔아홉 가지의 기술을 배우는데 무려 28년을 보냈다. 한식 자격증,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목수는 기본, 전기, 기계설비 등 40개가 넘는 기술을 익혔다.
거기다 타고난 눈썰미와 그림 재주로 고향인 청주와 서울 종로구 인사동을 오가며 신문과 잡지 등에 만평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연한 계기로 방송국에 발을 들이면서 무대미술과 첫 인연을 맺게 되었고, 그것은 그의 유일한 배고픔을 벗어나기 위한 밥벌이였다.
그러던 그에게 청주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와 무대미술가 문하에서 무대미술에 입문할 기회가 찾아왔다.
청주 극단 <새벽>의 선배들의 요청으로 ‘오델로’ 무대미술에 본격적으로 참여 이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무대미술 작가로서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1989년 그렇게 무대미술에 몸을 담고 1년 동안 140여 공연의 무대를 만들 정도로 그는 빼어난 실력을 보였고 공연계에서 그의 명성은 자자 했다.
그의 예술적 업적은 ‘민병구 개인전’, ‘민병구의 로정’, ‘민병구의 무대미술 및 무대공연 자료전’ 등 6차례 개인전을 개최할 정도로 열심히 하였고, 남다른 열정으로 한 번 받기도 힘들다는 전국연극제 무대 미술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면서 명실상부한 무대 미술계에서 두각을 발하기 시작했다.
지금에야 인정받는 어엿한 무대미술가가 됐지만, 그에게도 힘든 시간은 있었다. IMF 금융위기의 여파로 청주 사창동에 있는 화실의 문을 닫고 고향인 내수읍으로 돌아가 창고 안 비닐하우스에서 그림만 그리다 건강 악화로 병원 신세를 져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런 불행한 시간 속에서 예술을 포기해야 하는가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2004년 어느 날, 연구소 작업장 환풍구에서 빌붙어 사는 부엉이 가족이 둥지를 튼 것을 발견했다.
그는 매일 밤낮으로 이 부엉이를 관찰하며 부엉이의 갖가지 표정과 행동에 매력을 느껴 그때부터 부엉이 그리기에 매달렸다.
<부엉이 방귀에 아람이 벌어지고> 같은 익살스러운 표정의 수백 점 부엉이 그림이 탄생했다.
많은 예술가가 그들의 주제를 일상적인 삶 속에서 찾았지만, 민병구 작가처럼 운명적이고 숙명적인 상황에서 그림의 주제를 받아들이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래서인지 민병구의 부엉이 그림에는 응시하는 모습, 쭈그리고 있는 부엉이, 우울한 부엉이, 슬픈 부엉이, 가족적인 부엉이, 달밤에 부엉이, 꽃을 배경으로 한 부엉이, 다정한 부엉이, 외로운 부엉이, 화난 부엉이, 눈을 찡그리고 있는 부엉이, 매화꽃에 쌓인 부엉이, 달과 태양 사이의 부엉이 등 세상의 모든 배경을 부엉이 그림이 아우르고 있었다.
우리는 부엉이가 고대 그리스에서는 지혜를 상징하고, 부엉이살림, 부엉이 곳간, 재물을 상징하며 일본에서는 행운과 복을 중국에서는 지혜와 풍년을 상징 행운을 가져다주는 것임을 잘 안다.
우리나라에도 보릿고개가 존재하던 가난했던 시절 곡식을 수확하는 가을을 누구보다 기다렸던 사람들은 부엉이가 방귀를 뀌면 가을이 온다고 믿을 정도로 부엉이를 행운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 행운이 민 작가에게도 통한 것인지, 부엉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로 그에게 모든 어려움과 막힌 일들이 모두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것이 민병구가 오로지 부엉이만 그리게 된 인연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에게 부엉이는 운명이고 숙명이다. 보통 부엉이는 바위 절벽이나 벼랑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아 새끼를 키우지만, 올빼미는 오래되고 큰 나무의 구멍에 둥지를 튼다. 그래서인지 한자로 올빼미 효(梟)는 나무 위의 새라는 뜻이다.
보통 부엉이와 올빼미는 부정적 이미지와 긍정적 이미지가 함께 하는 조류이다. 번식기 부엉이 집에는 꿩이나 토끼 같은 먹이가 가득하다. 새끼에게 먹이기 위해 잡아 둔 것인데 그래서 부엉이집은 먹을 복이 있는 집을 말하고 부엉이 굴을 찾았다는 그것은 횡재했다는 의미로도 통한다.
민병구 작가는 회화와 무대미술뿐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그릴 수 없는 그림’과 ‘새벽 2시’ ‘지친 시간들’ 등 화가와 무대미술가로 살아온 그의 삶을 담담한 문체로 녹여낸 시를 통해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역발전을 위한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오랜 세월 동안 지역 작가들과 함께 송구영신 자선 소품전을 개최하며 판매 수익금 전액을 소외계층 돕기에 기부하는 등 선행도 하고 있다.
이런 수십 가지 일을 걸치고 있는 그는 요즈음 몇 년째 회화 작업에만 몰방하고 있는데 그것이 부엉이 그림이다.
그런데 이 민병구 부엉이 작품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무엇보다 가장 두드러진 형상은 1. 다양한 표정의 부엉이 묘사에 집중해 있다는 점이다. 물론 몸짓이나 움직임 표정 등도 풍부하지만 표현 기법이 너무나 풍부하다.
예를 들면 어떤 부엉이는 만화적인 표현으로, 어떤 부엉이는 전형적인 양화 풍의 기법으로, 어떤 부엉이는 동양화 채색 풍으로, 어떤 부엉이는 수묵화 풍으로 형상화한다. 어떤 부엉이는 초현실주의풍으로 그려짐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형상의 부엉이는 어떤 사조나 흐름에 영향이 아니라 부엉이를 그리는 순간에 관한 그때 그 때의 감정에 다름이나 영감에서 비롯된 것이라 여겨진다.
수묵 풍에서는 간결함과 생략이 붓질에서 돋보이는가 하면, 구상적인 묘사의 부엉이에서는 리얼리티가, 익살스러움과 김환기를 연상시키는 조형성이 강조된 부엉이도 구성미와 조형성이 돋보이는 그림도 존재한다.
꽃이 핀 나무에 올라앉은 부엉이에서는 시적이고 서정적인 모습이, 둥근 보름달이 보이는 부엉이에는 한 폭의 고향에 관한 시를 떠올린다. 이 모두가 부엉이 자체에 대해 쏟은 절대적인 관심과 애착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그가 지루하지 않게 묘사하는 부엉이 작품에 독창성은 스타일과 양식에 있다기보다, 천의 얼굴을 누리며 살아왔던 그의 자화상 같은 인상을 내밀하게 상기시킨다..
거기다 부엉이가 가진 모든 미적이며 독특한 감각의 부엉이를 모두 예술적으로 구현하려는 작가의 지독한 신념을 발견한다.
무엇보다 민병구가 이렇게 유달리 부엉이에 대한 집중적이며 애착을 보이는 것은 마치 그 부엉이가 자신의 분신처럼 그에게 강렬하게 다가왔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된다.
이 민병구의 새로운 표현과 창조적 영감의 감정 이입의 부엉이는 그래서 모든 표현의 미술사조를 넘나드는 두 번째 특징이 된다.
어떻게 보면, 민병구는 부엉이가 지닌 천의 얼굴을 재발견하고 해석하는 차원에서 그 의미가 훨씬 주어진다.
부엉이에 관한 독자적 시형식이 아닌 잠재된 미의식의 구현으로 재창조되었을 때에 비로소 살아있는 양식이 된다.
일찍이 나는 이렇게 부엉이를 집요하게 자신의 시각적 방법으로 해석하고, 변형시켜 표현하는 작가를 본 적이 없다.
마치 운보의 부엉이처럼 세련된 그러면서도 자신을 비유한 은유에서, 부엉이 표현의 거침없음과 분방함에서 우리는 민병구의 또 다른 독창성과 가능성을 발견한다.
지혜와 부를 상징하는 부엉이, 아직도 부엉이 둥지가 있는 작업실에서 밤새워 작업하는 그의 모습은 일치율 100프로의 부엉이다.
그런 점에서도 그가 그린 엄청나게 많은 부엉이는 그의 자화상이며, 그는 세상의 모든 부엉이를 대변한다.
명실상부하게 민병구는 이 부엉이 시리즈로 전형적인 산수나 조류화가가 아니라 종합적으로 창조된 주제 화가이다. 여느 그림과 다른 인간의 감정이 투영되고 감정을 가진 저마다 다른 표정의 부엉이들.
그들이 모두 그들만의 눈매와 경계의 감정으로 부엉이들은 각각 화폭에서 다르게 숨 쉴 것이다.
운보 김기창 화백의 부엉이 그림에서 느낄 수 있는 표현의 자유, 색감의 대담성, 틀에 벗어난 구성, 이 모두를 아우른 필선처럼 민병구의 화폭에서 독자적인 해석과 기교가 더욱 살아 숨 쉬는 역동적인 작품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 부엉이를 우리는 평가 할 것이다. 무대미술가가 아닌 주목받는 부엉이 화가 민병구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