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피카소 열풍이 거세다. 피카소 탄생 140주년을 맞아 열린 이번 ‘피카소 탄생 140주년 회화, 조각, 판화, 도자기 피카소 예술’전을 김종근(한국미술협회 평론분과위원장) 미술평론가의 해설로 현장을 다시 취재했다.
인터뷰 해설
Q. 김한정 기자
A. 김종근 미술평론
Q. 이번 전시회에 대해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저는 지금 예술의 전당에 피카소전이 열리고 있는 현장에 와 있습니다.
이 피카소전람회에서 특히 아주 주목할 만한 것은 1950년대 한국의 전쟁을 모티브로 했던 그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뒤로 보이는 작품이 바로 피카소가 1901년도에 제작한 그러니까 거의 20살에 시작을 했던 목판에 유화 작품이고, 카페에 있는 풍경을 갔다가 옮겨놓은 작품입니다.
이미 뭐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보는 것이 불편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는데 피카소의 신화 속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합니다.
Q. 작품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 이 작품은 피카소가 30대 초반, 32살 정도에 제작한 작품인데 피카소 자체는 매우 다양한 기법과 재료들을 사용해서 작품 제작을 했습니다.
특히 이 작품들은 전나무에 종이를 붙이거나 목탄, 이런 다양한 오브제들을 붙여서 작업을 했죠.
그래서 피카소는 유화뿐만 아니라 오브제, 조각, 브론즈 이렇게 아주 다양한 형태의 실험들로 작업을 해서 자기 작품세계를 완성해 나가게 되죠.
특히 이 작품의 시기에는 약간 입체파적인 그런 느낌들이 많이 나는 그런 구성적인 형태의 작품들의 양식을 많이 보여주고 있죠.
Q. 작품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 바로 이 작품은 기타와 베이스라고 하는 모티브를 갔다가 활용한 작품인데 특히 이 시기에는 조르주 브라크와도 아주 친해서 서로 작품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동일한 패턴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죠.
Q. 작품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 프랑스의 전설적인 화상이 바로 앙브루아즈 볼라르라고 하는 사람입니다.
반고흐 이후 처음으로 전시를 했던 화상이기도 하고 프랑스의 대표적인 화상으로써 피카소같은 사람들을 발굴해낸 이 작품들은 전부 다 볼라르가 대칭이라든가 이렇게 판화로 해서 제작한 작품들입니다.
저쪽 정면에 보면은 화상 볼라르의 초상을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Q. 작품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 파블로 피카소는 20대 초반서부터 브론즈나 혹은 나무에 조각을 하기도 하고 특히 이 작품들은 전부 다 피카소의 새로운 표현양식을 보여주는 세라믹입니다.
도자기에 그림을 그린 것들인데 전부 다 피카소가 거의 70대 때 1951년도에 제작한 작품들입니다.
피카소는 이렇게 끊임없이 자기의 어떤 주제라든가 모티브나 이런 것들을 형상화하면서 다양한 재료와 기법,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어찌보면 슈퍼스타 같은 그런 정신으로 작업들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어떤 형태로든 쓰레기라던가 이런 것들도 갖다 놓고 전부 작품으로 옮겨놓을 정도로 평생 12만 8천 점이라고 하는 엄청난 양의 작품을 제작한 사람이 바로 피카소입니다.
Q. 작품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 제 뒤에 보이는 그림이 바로 피카소가 가장 사랑했던 여자 중에 한 사람인 '마리테레즈'라고 하는 사람을 모델로 한 작품입니다.
1937년도 작품인데 피카소가 많은 여자들을 사랑했는데, 특히 7명의 여자들을 사랑을 했었는데 '마리테레즈'는 '올가 코클로바' 이후에 바로 만났던 여자입니다.
피카소와 나이 차이가 무려 28년, 그러니까 마리테레즈가 15살 때 피카소를 만난거죠.
마리테레즈가 미성년이어서 피카소가 마리테레즈를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고 할 정도로 피카소가 마리테레즈를 사랑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테레즈를 만나면서 훨씬 더 그림들이 화사해지고 행복한 이런 모습들을 가장 많이 표현한 것이 바로 여자 마리테레즈의 모습입니다.
후일 피카소가 이 마리테레즈를 버리자, 마리테레즈는 결국 자살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본다면 가장 뜨거운 나이에 가장 젊은 나이에 사랑을 나눴고, 그러다 결국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여자가 바로 피카소의 연인 마리테레즈입니다.
여기서 보면 피카소가 말년에 니스에 가서 샤갈이 있는 거기에 가서 작품들을 많이 제작하고 마즈라고 하는 도자기 공장에 가서 같이 작업을 했었던 것이 바로 파블로 피카소의 여기 있는 작품들입니다.
Q. 작품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 한국인의 학살은 이 피카소전람회에서 가장 이슈가 되고 핫한 작품으로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피카소가 70세 때 작품을 제작한 것으로 한국인의 그 유교를 모델로 해서 작품을 제작한 것이죠.
보면 양민들을 학살하는 모습들이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작품의 사실 기본적인 것은 프란시스코 고야가 그린 1808년 5월 3일에 처형이라는 작품을 모델로 했었고 다시 후에 마네의 막시밀리안의 ‘황제의 처형’ 이런 두 작품들을 기본적인 모티브로 해서 '한국인 학살'을 제작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원래 1951년도 '살롱 드 메'에 출품을 하면서 전체적으로 알려졌었고, 특히 이 극동의 작은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을 피카소가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피카소가 스페인의 내전을 모델로 했던 게르니카와 더불어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우리가 이런 한국인의 학살을 아마 거의 한 70년 전 작품을 70년 만에 보는 아주 귀한 작품이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이 작품은 지금 빠리에 있는 피카소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바로 한국인의 학살은 오른쪽에 보이는 '에두아르 마네'에 맥시밀리언 황제의 처형의 작품들을 기본 모티브로 했었고, 다시 왼쪽에 있는 프란시스코 고야 1808년 5월 3일에 처형의 모델이 돼서 한국인의 학살이란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죠!
Q. 작품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 이 작품은 피카소가 1961년도 프랑스 휴양도시인 깐느의 발로리스라고 하는 지방에 체류했을 때 작품들입니다.
함석과 양철 같은 것으로 아주 간결한 인물의 형태를 묘사하고 있는데 특히 블랙과 화이트 컬러로 아주 풍부하게 잘 살린 그런 작품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Q. 작품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 이 작품은 프랑스 최고의 휴양도시인 깐느의 바닷가에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피카소와 가장 띠동갑이면서 자기의 질투를 많이 불렀던 사람이 바로 앙리 마티스인데 앙리 마티스가 말년에 깐느에서 작업을 했듯이 피카소도 이 깐느와 니스를 오가면서 작품을 했었는데 이쪽에서 보면 바닷가에 모습들, 그다음 이런 것들이 아주 블루와 화이트에 극적인 대비를 이루면서 모습들을 잘 형성하고 있습니다.
특히 바닷가에 평화롭고 아주 밝고 경쾌한 이런 모습들을 우리가 이 작품에서 발견할 수가 있죠.
미술의 역사를 바꾼 세기의 천재 화가, 그의 신화속으로 피카소(1881-1973)는 1907년 파리 몽마르트의 작업실 바토라부아르에서 〈아비뇽의 처녀들 Les Demoiselles d’Avignon〉을 제작한다. 입체주의의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이 작품은 르네상스 이래 서양미술 400년의 전통을 송두리째 무너뜨리며 회화 역사의 대혁명을 일으킨 걸작으로 기록되었다.
20세기 미술은 피카소에 의해 시작되었고, 피카소의 세기였으며 피카소를 위한 시대였다. 미술사에 족적을 남긴 수많은 대가 중에서 피카소만큼 찬란한 업적과 명성을 남긴 작가는 흔치 않다. 르네상스의 대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와 필적할 만한 재능을 가진 예술가였지만, 모더니즘의 창시자로서 한 시대를 뛰어넘어 한 세기를 지배한 작가는 피카소가 유일하다. 이 전시는 세기의 천재화가 피카소의 삶과 예술을 총체적으로 조명하는 전시로서, 불꽃같은 예술혼으로 창작의 전 분야에서 걸출한 작품을 남긴 피카소의 신화 속으로 가는 여행이다.
70년 만의 역사적인 한국 방문 〈한국에서의 학살〉
한국전쟁 발발 6개월이 지난 1951년 1월에 피카소는 작품 〈한국에서의 학살 Massacre en Coree〉을 완성한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파리에서 열린 살롱 드 메(Salon de Mai) 전에 이 작품을 공개하였다.
천재 화가 피카소가 그린 이 작품은 한국이라는 국가를 작품 제목으로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유일무이한 작품이다. 한국전쟁의 특정사건이 아닌 전쟁의 잔혹성을 예술을 통해 고발한 이 작품은 〈게르니카 Guernica〉(1937,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소장)와 〈시체구덩이 Le Charnier〉(1944-1946, 뉴욕 근대미술관소장)와 더불어 피카소의 반전예술 3대 걸작으로 일컫는 작품이다.
‘한국에서의 학살’과 관련해 일부에서는 6.25 전쟁 중의 특정 지역의 학살을 배경으로 한 것이라는 주장도 하고 있으나 피카소는 "전쟁의 모습을 표현할 때 나는 오로지 '잔혹성'만을 생각한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 군인들의 군모와 군복 같은 것들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예술에 관한 글, Paris, Gallimard, 1998, p.70에서 인용함)라고 직접 언급한 바 있다.
폭이 2m에 달하는 이 작품은 과거에 국공립미술관이 국내 반입을 여러차례 시도하였으나 실패한 작품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 작품 발표 70년 만에 한국 땅을 밟는 기념비적인 작품인 만큼 피카소가 남긴 작품을 통해 우리의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회화, 조각, 판화, 도자기 등 피카소 예술의 모든 것을 한자리에
피카소는 입체주의의 창시자이다. 입체주의를 시작으로 막을 올린 모더니즘은 피카소에 의해 시작되어 20세기를 지배한 미술사조에 대한 통칭이다. 피카소는 모더니즘의 창시자에 머물지 않고 끝없는 혁신과 창조적 재생산으로 모더니즘을 지배한 예술가였다. 서양미술사의 오랜 전통을 존중하며 전통을 교훈 삼아 창작적 진화를 도모하였고, 예술을 통해 삶을 파괴하는 악을 고발하였으며 행동하는 예술가로서 인류애를 실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예술가이다.
그의 창작은 순수미술을 넘어 창작의 모든 분야에서 방대하게 이루어졌다. 〈아비뇽의 처녀들〉로 미술사의 형태 혁명을 이룩하였으며, 〈게르니카〉를 통해 예술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피력하였다. 회화 뿐만 아니라 천부적인 데생 실력으로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집요한 창작열로 수만 점에 달하는 종이 작품을 남기었으며 조각과 도자기, 무대디자인과 장식, 사진 등 전방위 예술을 지배하였다.
이번 전시는 유화 작품 뿐만 아니라 그의 다양한 재능을 광범위하게 보여주는 전시로 조각의 걸작으로 널리 알려진 〈염소 La Chevre〉, 다양한 채색의 도자기, 그리고 7년에 걸쳐 완성 〈볼라르 연작 Suite Vollard〉과 함께 그의 창작을 총망라한 전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