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KICHANG / 金基昶 1913-2001

 

[아트코리아방송 = 김한정 기자]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에서는 2020년 5월 22일 오후 2시부터 김달진 관장이 소개하는 With Artists15 ‘청각장애를 극복한 한국 미술계의 거목 김기창’ 화백 편에 대한 촬영이 김달진 관장의 설명으로 시작되었다.

김달진 With Artists 15-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관장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관장
김기창 모임 1942년
김기창 모임 1942년

김기창은 1913년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8세에 승동보통학교에 입학한 후 병으로 청각을 상실했고 언어장애를 얻었다. 1930년 이당 김은호의 화숙인 이묵헌에 들어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1931년 제10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해 첫 입선을 했고, 1937년부터 1940년까지 4년 연속 특선을 해 추천작가가 되었다.

김기창 복덕방 1953년
김기창 복덕방 1953년
김기창 군마도 1955년
김기창 군마도 1955년

일제강점기 김기창의 작품은 김은호의 화풍을 충실하게 수용한 채색인물화였다. 그러나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인 박래현과 함께 서양 입체주의의 영향을 보여주는 실험적인 작품을 제작했다. 1950년대에는 동양화가 추상 예술의 풍조를 따라 시대성에 발맞춰 전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김영기와 함께 ‘현대동양화’ 운동을 주창했으며 1957년 새로운 동양화 모색을 주창하며 <백양회>를 결성하였다,

김기창 성당과 수녀와 비둘기 1957년
김기창 성당과 수녀와 비둘기 1957년

1960년대 중반 이후에는 완전한 추상화 단계에 접어들었는데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한국대표로 미국과 멕시코 등을 시찰한 후 다시 작품에 변화를 보였다. 당시 그의 작품들은 강렬한 필선과 적색, 황색이 두드러졌으며 1970년대의 청록산수 연작과 바보산수, 민화풍의 화조화 등으로 이어졌다.

김기창 태고의 이미지 1965년
김기창 태고의 이미지 1965년
김기창 산사의 뜰 1975년
김기창 산사의 뜰 1975년

또한 1973년부터 세종대왕, 김정호, 을지문덕 등 역사적 위인들의 영정 제작을 담당했다. 홍익대와 수도여자사대 교수로 후진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고, 김은호 제자들의 모임인 후소회 회장직을 역임하기도 했다. 청각장애우들을 위한 활동도 활발하게 펼쳤는데 1979년 한국농아복지회를 창설해 초대회장에 취임했고, 1984년에는 서울 역삼동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복지센터인 청음회관을 설립했다.

김기창 한정 1976년
김기창 한정 1976년
김기창 일월도 1979년
김기창 일월도 1979년

운보는 한국 미술계의 거목으로 화풍은 자유롭고 활달한 필력으로 힘차고 동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여, 채색 인물화, 풍속화에서부터, 형태의 대담한 면 분할의 입체파를 거쳐  추상에 이르기까지 구상, 추상의 전 영역을 망라하는 폭넓은 작가적 역량을 구사했다. 동생이 북한으로 간 김기만이고 부인이 유명한 우향 박래현(1920-1976) 이며 1남 3녀를 두었다. 1954년 예수의 생애를 한복을 입은 성화로 보여주었다. 친일작가로 비판도 받았고 청원에 운보미술관이 운영되었지만 원만하지 못했고 운보갤러리가 운영되다 폐관되었고 제자들의 모임인 <운사회> 단체도 있다.

김기창 서상도 1984년
김기창 서상도 1984년
김기창 화백
김기창 화백

주요 개인전으로 1970년 현대화랑, 1980년 화도 50년/ 국립현대미술관, 1984년 롯데미술관, 1989년 국립현대미술관, 1993년 팔순전/ 예술의 전당, 2000년 미수전/ 조선일보미술관&갤러리현대, 2002년 바보천재 운보그림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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