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해作 비밀의 城
 박정해作 비밀의 城

                                                                           

-비밀의 城-

 

그곳에는 가위손의 이야기도 숨어 있을 것 같았다

푸른 에게해의 고성에 해가 기울어 붉은 눈물 떨어지면 무수한 사연들이 돌계단을 딛고 내려온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동화처럼 신비로운 행복감에 젖어 잠드는 아이들은

무서운 해적이 용맹을 떨쳐 높은 신분에 올라 견고한 성채를 지켜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고성을 안다

날카로운 돌기 잎들이 하늘을 찌를 듯 뻗어 나는 정원수와 햇빛에

부서지듯 출렁이는 물결은 가끔 떼 지어 다니는 고양이 무리 잔상을 새겨놓는다

성벽의 뚫린 돌 틈으로 검은 돛배가 보이고 포성의 연기와 함께 시간도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을까

집시들의 바이올린 연주가 축포처럼 울리고

망루의 정원에서 춤추며 점령지의 승리감에 도취되었던 이 모든 기억들을 고성의 문고리에 얼룩진 손자국들이 말한다 

언제부터인지 밤이면 슬픈 눈빛의 선장이 닻줄을 허리에 감고 성채의 공중정원에 내려앉는다

육지로 이어진 다리 난간에서 저녁등이 켜진 방까지의 거리를 재며 사뿐히 입실을 꿈꾼 그가 찾는 방이 있다

여인의 발소리가 들리고 아빠가 왜 돌아오지 않는지 묻고 또 묻는 아이들이 있는 방,

선장은 북구의 늙은 신처럼 허리를 구부리고 창을 기웃거린다 

날카로운 눈빛 오드아이 고양이 한 마리가 실뜨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손에 들린 털뭉치를 빼앗으려고 앞 발을 든다

 순간 오래된 창틀이 갈라지고 미세한 먼지들이 무겁게 내려앉으며

 저 노트르담 사원의 죽은 종지기 콰지모도의 뼛가루 같은 것이 달라붙더니 그의 온몸이 새하얗게 변하는 것이 아닌가

순식간에 까마귀 떼가 창에 날아들고 그 방에는 아무도 없었던 것을... 그는 왜 몰랐을까

 

  쿠샤다시 성채에서 2014
  쿠샤다시 성채에서 2014

                                                     

*터키에서 헤라여신의 고향 그리스로 가는 길목, 새의 섬 쿠사다시

오래된 성채를 들른다. 에메랄드빛 바다 반대편에 페리 선착장이 보이고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나는 비둘기를 닮은 쿠사다시성으로 걸음을 옮긴다.

BC 9세기경부터 세워졌다는 도시는 로마에 정복, 섬에는 군대가

주둔하기도 하며 투르크족이 지배하며 다시 비잔틴제국에 이어 오스만튀르크, 

터키공화국 수립 이후 휴양지로 변모된다.

성곽 꼭대기 정원에서 새끼 고양이들이 뒤를 따라오고

해가 지기 전 나도 원을 빙빙 돌며 떠오르는 단상들을 노트에 담아낸다.

그리고 그 후로 선장의 슬픈 눈도 잊고 다시는 푸른 창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

시인화가 박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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