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

사물들에 대한 애도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

처음에는 분재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재 전시장에서 접하는 자연을 인위적으로 축소 시킨, 온갖 희한한 형태로 꾸며진 ‘예술적인 분재’의 외형을 연상시키거나 익숙한 정물화의 패턴을 따르는 이 작업은 실은 작가가 연출해 만든 상당히 낯선, 허구적인 정물 사진이다. 또한 사진이라고 했지만 그게 그렇게 단순한 사진만은 아니다. 우선 작가는 일상의 소소하고 다양한 재료들을 그러모아 서로를 연결하고 배치시켜 구축적인 덩어리로 만들었다. 일정한 토대, 좌대와 테이블과 유사한 것을 만든 후 그 위에 환영적인 꽃을 얹혀놓았다. 이 느슨하고 헐거운 조합은 비조각적인 재료들이 갖는 속성으로 인해 불가피한 부분이다. 따라서 덩어리라고 표현했지만 기존 조각처럼 단일한 속성을 지닌 물체에 의해 공간이 점유되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재료들 간의 ‘엉뚱한’ 만남과 일시적인 조우로 이루어졌고 임시적인 방편으로 설치된 물건들이 다소 기이하게 연결되어 중층적으로 쌓여있거나 직립하고 있다. 그리고 납작한 꽃 이미지를 절취해서 그 어딘가에 위치시킨 후 촬영을 했다. 실제와 허구, 사물과 사진, 물질과 이미지가 혼재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자 사진과 조각, 오브제와 아상블라주 전략이 충돌하는 작업이다. 시각과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이 혼재한다.    

[박영택 미술평론] 박미정 작가 '사물들에 대한 애도'
[박영택 미술평론] 박미정 작가 '사물들에 대한 애도'

 

 

작가는 자신의 집에서 사용하던, 소유하고 있던 비근한 일상의 사물들과 실내 일부분을 공사하면서 나온 것들을 갖고 이른바 아상블라주 작업을 하고 있거나 오브제를 이용한 조각적 작업을 우선 시도한다. 작업에 사용되는 물건들은 이미 사용 기한이 종료되거나 기능을 상실한 것들 혹은 오래 사용해서 본래의 모습을 망실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작가에 의하면 그것들은 쉽게 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곁에 놓아둔 것들로서 일종의 애착 내지 집착, 아픈 상처투성이를 간직한 사물들이자 오랜 시간 한 공간에서 자신과 함께 해온 것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작가는 질문한다. “나와 저 사물들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우리가 기거하는 공간에는 무수한 사물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분명 저마다 특정한 실용적 목적에 종사하기 위해 사들인 것들이다. 불가피하다고 여겨지는 물건들을 계속해서 사들이면서 사용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오래 사용되거나 불필요한 것들이 쌓이고 일부는 버려진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이내 버려지지 않고 오래 사용되는 물건들도 있고 더러 차마 버릴 수 없어서 그 사물의 소유주와 긴 시간을 보내며 함께 늙어가는 것들도 있다. 그럴 때 사물은 시간과 추억을 공유한 특별한 존재가 되면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역사와 추억이 깃든 사물, 심지어 자의식과 주체가 깃든 사물도 있는 법이다. 

[박영택 미술평론] 박미정 작가 '사물들에 대한 애도'
[박영택 미술평론] 박미정 작가 '사물들에 대한 애도'

 

박미정 작가는 삶의 공간에서 자신과 오랜 시간 함께 하고 있는 그 특별한 사물들의 자리를 다소 슬쓸하게 헤아린다. 자신과 우연히 일시적인 인연을 맺었다가 유한한 시간 속에서 소멸되어 가는, 덧없는 시간 속에서 본래의 모습을 망실해가는 사물들의 모습을 통해 문득 생의 부질없음과 무상함을 떠올려보게 되었다고 한다. 필요로 해서 구입하고 사용했던 모든 사물들 또한 인간의 수명처럼 저마다 유효 기간이 정해져 있다. 물론 그 기한이 획일적이거나 일률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종국에는 시간 속에서 모든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자신이 사용했던 사물 역시 자신과 동일하게 시간의 입김에 의해 슬그머니 무너져 내리는 피부를 지니고 있음을 목도한 작가의 주체는 사물들 속으로 들어간다. 순간 그 구분, 경계가 무너진다.   자신과 함께 머물렀던 모든 사물들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본래의 형태, 색감이나 질감이 마모되고 희박해지고 아울러 실용성이 다하면 버려질 것이다. 인간이란 존재도 그런 운명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작가는 ‘바니타스’ 정물화를 생각해냈다. 지상의 모든 것은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이 헛된 삶에 미련을 두지 말하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표상하던 17세기 플랑드르의 바니타스 정물화 스타일을 차용했다. 화려하지만 이내 시드는 꽃과 과일, 해골과 거울을 대신해 자신이 사용하던 물건들, 일상의 비근한 사물들을 우연에 기대 연결해서 구축하고 그렇게 조각적 작업을 한 연후에 꽃 이미지(사진)를 합성한 후 최종적으로 정물적인 장면을 완성했다. 

[박영택 미술평론] 박미정 작가 '사물들에 대한 애도'
[박영택 미술평론] 박미정 작가 '사물들에 대한 애도'

 

조각적 작업이라고 했지만 실은 사물들을 무작위로 연결하거나 우연성에 기대어 서로를 접속시켜놓았다. 예를들어 붉은색 벽돌 파편, 돌, 나무조각, 솔, 수세미, 전구, 플라스틱 햇반 용기, 전구, 작은 맥주병, 수도꼭지, 헤어롤, 달걀판 등과 비닐, 끈, 고무호스가 개입되어 이것들을 하나의 단위로 삼아 그림을 그리듯, 조각을 하듯 모종의 형태를 잡아나가고 있다. 각각의 사물들이 지닌 형태와 질감, 색채가 주는 표면의 여러 풍부한 뉘앙스, 그리고 예기치 않은 연결로 인한 흥미로운 상황성의 전개, 공간 전제로 확산되어 나가는 활력적인 운동감이 우선적으로 주목된다. 대체로 수직으로 융기하는 사물들의 집적을 유지시키거나 그 자체로 활달한 원형의 혹은 유기적인 선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내면서 회화적인 선묘 효과 또한 증폭시킨다. 그리고 이 선은 최종적으로 안착되는 꽃 이미지와 연결된다.  
  

[박영택 미술평론] 박미정 작가 '사물들에 대한 애도'
[박영택 미술평론] 박미정 작가 '사물들에 대한 애도'

 

작가는 버려진 사물들을 모아 생명을 부여하고자 했다. 해서 하찮은 것들, 비루한 것들이 모여 꽃을 피운 형국을 연출했다. 쓸모없어지거나 용도가 폐기되거나 공사 현장에서 나온 부스러기들 혹은 인간의 실용적 차원에서 배제된 것들끼리 우연히 모여 희한한 아름다움의 절정을 빛내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물의 존재의 의미는 바로 그것을 이해하려는 현존재에 종속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쳐준다. 이처럼 사물은 고정된 의미에 저당 잡힌 게 아니라 사용되는 바로 그 순간이 그 존재의 이유로 매순간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다. 한편 우리는 사물들과 함께 살고 죽는다. 아니 사물이 먼저 죽기도 하고 우리가 그들보다 먼저 죽기도 할 것이다. 옛사람들은 자신이 애장하던 물건들과 함께 묻히기를 갈망했다. 작가는 시간의 잔인함 속에서 소멸해가는 존재의 상처를 더듬으며, 자신과 함께 했던 사물들의 의미를 성찰한다. 그는 사물들을 떠나보내는, 애도하는 모종의 의식을 치르듯이 바니타스 정물화의 양식을 차용해 사물들을 조각적으로 연출하고 꽃은 그림책에서 절취하고 연결한 후 이를 촬영했다. 그 결과 일상의 사물들은 새로운 감각의 배치와 접속 아래 신선하게 환생하고 있다. 희한하고 낯설고 이질적인 생명체가 착시와 현시 사이에서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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